[편집인 칼럼] 이란계 애국적 결집의 파워

● 칼럼 2026. 2. 21. 13:1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이란계 애국적 결집의 파워

 

 

우리 민족과 동포들의 애국심과 애족 정신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일제치하 해외로 이주한 동포들은 고난과 신음 속에서도 쌈짓돈을 모아 독립운동에 보태면서 조국의 자주독립을 애타게 간구했다. 독재 정권하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성원하며 국제사회 동조에 힘을 쏟았다. 5.18 민주항쟁의 피해자와 가족을 위해 토론토 동포들도 성금을 전달하고 학살정권 규탄대열에 나섰다. 부패 무능한 지도자를 끌어내리는 촛불광장에도 많은 동포들이 합류해 궐기했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 각지 민주투쟁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주제가로 불린다. 트럼프의 이민정책과 폭주에 항의하는 미국시민들도 한국의 응원봉 평화시위를 흉내낸다는 뉴스를 듣는다.

 

그렇게 우리 한인들의 애국 애족정신과 정의감과 ‘행동하는 양심’은 ‘타의 추종을 불러올’ 만큼 대단하고, 그 열정과 참여도에 있어서는 절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오늘의 민주주의를 일궈낸 초석이 되었다고 자부하며 자긍심을 갖는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그런 자부와 자만은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적 평가일 뿐이요 자화자찬이 아니었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우물안 개구리 같은 자신감의 발로였다는 민망함과 의구심이 한 순간에 밀려든 때문이다.

 

 

바로 지난 2월14일 토요일 낮 토론토 노스욕의 영 스트리트를 가득 메운 이란계 시민들의 시위를 접하면서다. 같은 시각 설날 대잔치로 2백여 동포가 한인회관에서 흥겨운 축제를 즐기고 있을 때 들려 온 도심의 성난 파도(怒濤)같은 이란군중 소식은 마치 뒤통수를 친 것 같은 대비로 다가왔다.

 

한인 설잔치에 메시지만 보낸 더그 포드 온주 수상도 동참했다는 시위는 무엇보다 참여 규모와 결집력에서 놀라움을 주었다. 경찰 집계로도 무려 35만명이 모였다니 실제론 더 모였을 것이다. 앞서 2월초 다운타운에서 열린 시위에도 이란인들은 15만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열흘 남짓 간격으로 열린 두 차례 집회에 연인원 45만명 이상이 운집한 것이다.

 

이란계 사람들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올해 초 반정부 유혈사태로 수천명이 피살당한 충격에서 비롯된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동족애와 분노로 모여 캐나다 대로를 장악하고 모국의 살상 만행과 실정을 한마음으로 규탄하며 독재퇴진과 정권교체를 쩌렁쩌렁 외친 것이다.

 

온타리오 지역에 거주하는 이란계 이주민은 한국계보다 대략 1.5~2배 정도인 18만명에서 20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캐나다 전체 거주자 30만명 내외의 6할 정도가 토론토를 중심으로 캐나다 동부에 몰려 산다고 한다.

 

이날 이란정부 규탄 ‘세계 행동의 날’ 집회는 전세계 각지에서 동시 다발로 열렸다. 망명상태에서 규탄행동을 제창한 레자 팔라비 왕세자 측은 특히 뮌헨(독일), 로스앤젤레스와 함께 캐나다 토론토가 세계 3대 핵심거점이라며 대규모 시위를 예고해, 타지 원정참여와 타민족 응원참여도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쳐도 현지 거주자 수를 2배 가까이 훨씬 뛰어넘는 35만여 명이나 집회에 모였다는 사실은 무얼 말해주는가. 한인사회에서는 한가위축제 수만 명을 제외하고는 ‘상상’조차 어려운 인원이다. 그들의 모국 사랑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결집과 행동의 파워, 그리고 강한 정의실현 욕구의 발로 외에 달리 설명할 말이 있을까.

 

 

해외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모국이 잘 되어야 해외에서도 가슴을 펴고 당당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해외동포들은 모국의 동향과 정정에 민감하다. 모국의 정변 때마다 함께 규탄하고 항의집회를 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그 참여 강도와 열의와 투지가, 과연 이란인들에 비해 우리가 낫다고 내세울만 한가.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유혈진압으로 약화될 때, “한국이면 어땠을까” “한국은 5.18 정신과 키세스 군단의 저력으로 결판냈을 텐데” 라는, 자못 우월적인 동정심을 느낀 적이 있다. 참으로 오만하고 주제넘은 착각이 아니었나, 민망할 뿐이다.

 

10년 전 박근혜 국정농단 탄핵촉구 토론토 집회 때나, 최근 12.3 내란으로 나라가 요동칠 때 멜라스먼 광장 규탄집회 역시, 전세계 연대집회로 열렸지만 1백명이 채 안되는 동포들이 참여했을 뿐이다.

 

물론 한국과 이란의 정변사태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지정학적·역사적 맥락이 다르고, 사안의 성격과 국제사회 역학관계도 판이하다. 피해와 규탄 인원이 많고 적음으로 사안의 본질과 경중을 가린다는 것도 논리적이지는 않다.

 

이란의 경우 수천명에 달하는 억울한 죽음은 국경을 초월한 연민과 분노를 샀다. 캐나다 주류 정치인들이 항의시위에 동참한 것처럼 사태의 국제화 또한 수십만 운집을 촉발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해도 모국의 국체(國體) 위기와 국제적 파장을 부른 윤석열 내란 규탄마저 남의 일처럼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한인사회와는 너무나 큰 편차에 자괴감이 없지않다.

 

위대한 소수의 저력이 오늘의 한민족사를 일궜다는 자부와 위안에도 불구하고, 이란인들의 놀라운 결집과 연대의 파급력, 참여의 힘은 너무나 부러운 타산지석이다. 100명의 사색가(Thinkers)는 1명의 행동가(Doer)를 당해낼 수 없다는 금언을 절실하게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