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한겨레 창간 20주년 - 지난 발걸음을 돌아보며  [편집인 칼럼]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이민 온지 겨우 1년여 만에 덜컥 신문 발행을 시작했으니, 돌아보면 정말 ‘용감 무쌍’했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 기자생활을 해왔다는 것 외에는, 이민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무모하게 덤벼들었으니 논바닥에서 헤엄치겠다고 뛰어든 것과 뭐가 달랐던가.

 

앞서 최악의 경우는 피해 볼 심산으로 기존의 신문사를 넘겨받아 운영해 보자고 시도한 일은 있었다. 하지만 잠시 ‘밀당’을 할 때 그쪽이 제공한 자료로 경영상황을 스치듯 곁눈질 했던 기억이 전부인지라, 눈곱 만큼이나마 참고가 되었을지.

 

수업료 낸 셈 치자며 변호사비를 ‘날리고’는 한국을 다녀오며 결심이 섰었다.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숙명인가 보다,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가슴과 뇌리에 차오른 것이다. “발걸음은 하나님이 인도하신다고 그러셨지!”, 그렇게 직접 도전에 나서 서둘러 체제를 갖추고  ‘시사 한겨레’를 발행하기 시작한 것이 2006년 1월5일이다.

 

 

의욕적으로 편집과 전산, 광고영업 등 직원들을 배치해 제법 규모있게 출발했다. 하지만, 역시나 시련은 빨리 다가왔다. 당장 맞닥뜨린 것은 광고 수주였다. 무료배포 신문의 밥줄이 광고 아니던가. 그런데 지면을 아무리 수준있게 만든다 해도, 갓 나온 무명 신문에 선뜻 광고를 줄 기업인이 몇이나 되겠나. 수입은 시원찮은데 직원들 급여에, 제작비 경상비 감당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줄이고 또 줄이고… 결국 최소 필요인력과 ‘생존 마지노선’의 전략으로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 출범 후 1년여 만이다. 그리고 매회, 매월, 늘어나는 흰머리와 함께 한 해, 또 한 해 버티고, “천직아니냐” 자문하면서 견디다 보니, 바로 엊그제 같은 20년이 흘러 버렸다.

 

현직 기자시절에 좋아하던 은퇴 선배들이 들려주던 이야기 가운데 “유능한 기자는 실제론 무능해서 퇴직 후 고생한다”는 자조섞인 넋두리가 있었다. “아니 선배, 유능한 기자가 무능하다니 ‘형용모순’ 아닌가요!”하고 따지면 “돈벌이에 무능하다는 말”이라며 나중 그만두면 알게 될 거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선배들 말이 실감나게 다가온 것은, 역시 신문사를 그만 두었을 때 이후 직접 신문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일상적인 고된 현실이 되살려냈다.

 

그런데 그렇게 ‘산전수전’을 겪으며 악전고투하는 사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겁없이 이 바닥에 뛰어들어 잊을만 하면 새 신문과 정보지들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밖에서 보기엔 돈벌이가 될듯 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러더니 얼마안가 문을 닫는 일 또한 속출했다. 어쩌면 신문을 비교적 쉬운 비즈니스로 착각했는지 모른다. 이민사회의 좁은 바닥에서 한인들의 경제력에도 한계가 있는데 유료신문도 힘든 상황에서 광고만으로 버틴다는 것이 보통 벅찬 일인가.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반복되는 발행 때마다 컨텐츠 확보와 만만찮은 제작비용까지, 도저히 경쟁이 안되는 것이다. 더구나 신문의 속성과 제작기법, 특히 역할과 책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신문흉내’로 승부를 보려 했다가는 설상가상의 낭패를 맛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민언론의 생태적 한계인 것이다.

 

사실 언론, 특히 신문은 돈 되는 사업이 아니다. 매회 생돈 나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저 명맥을 유지한다면 성공이라는 게 반세기 경험칙의 결론이다.

 

그렇게 비 바람을 헤쳐나온 세월이 어느새 20개 성상에 이르렀으니, 실속없고 민망하지만 ‘성공’이라고 자위해야 할지…오직 독자들 성원과 발걸음을 인도하신 하늘의 가호에 감사와 은공(恩功)을 돌릴 뿐이다.

 

 

돌아보면 수지개선 못지않게 당황스러웠던 것은 이념적 갈등이다. 강고한 보수적 성향의 동포사회에 뿌려지는 진보적 색채의 논조가 마뜩잖았던 것인지, 과격 언사의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시사 한겨레는 한인언론이며 한국인의 정체성과 민족자존을 소신으로 하기에, 모국 동향에 관심과 영향이 큰 동포사회를 위해 민족사 전진의 관점에서 선별된 정정(政情) 뉴스를 적극 전한다. 그런데 “좌파”여서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어떤 기사가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틀렸고 오류인지를 물으면 얼버무리며 끊곤 했다.

 

요즘엔 많이 나아졌다지만, 옳고 그름을 떠난 무조건적 아집과 적대감정에 매몰된 ‘수구적 익명인’들을 접하는 착잡함이란…그들은 ‘우파’라고도 할 수 없는 정말 아쉽고 답답한 외골수들이었다. 선입견과 확증편향으로 고착된 상처가 세월이 흘러도, 바다를 건넌 땅에서도 어김없이 도져 아픈 그림자를 드리우는 한국적 현실의 일단이고, 그 첫째 원흉은 민족분단일 터이니 우리의 숙원인 통일이 비로소 치유의 시작점이 될지, 안타깝다.

 

진보적 의제를 막무가내 비난과 적대시하는 극우적 시각을 접하면서, 진보의 확장과 보수의 건강성이라는 지역적 이념지형의 변화 과제는 우리의 꾸준한 관심사였다. 보수와 진보의 균형, 곧 ‘보혁(保革) 양날개론’은 어디든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경청할 사회비전이다. 이민사회 역시 건강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가 공존할 때 저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시사 한겨레의 그런 소망과 노력이 얼마나 반향을 불렀는지는 가늠할 수 없다. 다만 60년 동포사의 3분의1을 동행한 20년의 생존사 기록과 체감에서 적잖은 변화를 감지하는 보람, 그리고 희망을 본다. 근래 재외선거에서 보혁의 비율이 4대6 정도인 개표결과도 간접적인 하나의 징표는 되지않을까.

 

되짚어보면 이런 저런 곡절에도 진보언론 시사 한겨레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언론의 본령(本領)에 대한 나름의 고민에 있었지 않을까 싶다. 여건은 녹록치 않지만 언론의 존재이 유, 소명의 헌신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강박을 안고 몸부림쳐 씨름할 때, 가상히 여겨 다독여준 독자와 동포들, “이만한 신문 하나는 있어야지”라는 격려 덕분이었음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언론은 결코 개인의 소유물에 그치지 않는 공적 자산이다. 아무리 영향력이 미약해도 한 줄의 글이 때론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기사 한 줄, 칼럼 한 편을 쓰면서도 허투루 쓸 수 없었던 이유다.

 

항상 가슴과 손 끝을 맴돈 것은 ‘성실한 보도 따뜻한 신문, 동포의 번영 겨레의 미래’라는 사시(社是)와 ‘겨레의 창 정보의 샘’이라는 기치의 시사 한겨레 창간정신이다. 창언정론(昌言正論), 춘추직필(春秋直筆)과 정론직필(正論直筆)·파사현정(破邪顯正) 등의 경구 또한 직업의식의 각성제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총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금언을 자부가 아닌 책임과 경고로 새기며, 역량의 한계 속에서도 기사를 쓰고, 편집과 신문제작에 성심을 다해왔다고 감히 고백한다.

 

이제 20년의 고개를 넘어서지만, 앞날이 불투명해서 걱정이다. 종이신문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온통 AI-온라인 세상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인터넷과 유튜브 등에 범람하는 저질 가짜들의 인간 황폐화 해악이 극에 달할 때 다시 인쇄언론에 눈을 돌릴지, 역시 발걸음은 그 분이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 김종천 발행인 겸 편집인:   26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