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탐욕자들이 부르는 동물적 재앙

● 칼럼 2024. 10. 4. 13:3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한마당]  동물적 탐욕의 재앙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런트(1885~1981)는 그의 방대한 저서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에서 인류역사에 기록된 3,421년 중 전쟁이 없었던 해는 268년 뿐으로, 7.8%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1945년부터 1990년까지를 취합해 총 2,340주 동안 지구촌에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단 3주일 뿐이었다고 전했다. 인류가 사실상 전쟁과 함께 살아왔음을 알게 해준다.  

그런데 옥스퍼드 대학의 맥스 로저 경제학 교수는 지난 600년 동안의 전쟁을 통한 사망률을 분석해 보니 요즘 우리는 특별한 평화의 시기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마다 전쟁으로 인한 사망률은 일정수준을 이뤘고,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해 그 최대값과 최소값이 20세기에 나왔지만, 전쟁 이후 급격한 감소세로 돌아서 요사이는 평균 산출된 전쟁사망자가 0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평화시대’라는 말을 실감하는가.  전혀 아닌 것 같다. 
3년째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이스라엘은 최고의 우방인 미국 마저 ‘패싱’하며 무차별 살상전으로 하마스와 헤즈볼라 초토화 작전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정부군과 반군 대결 등 사상자 숫자가 제대로 집계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크고 작은 전투와 전쟁이 각처에서 날마다 벌어진다.

성경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자신이 지은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축복의 명령을 말씀한다. 그런데 금단의 열매를 먹고 사악해진 인간은 창조주가 강조한 축복의 언약에서 유독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대목에 마음이 꽂혀 용렬해졌는지 모른다. 유사이래 정복하여 지배하려는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남의 것을 빼앗고, 죽이고, 짓밟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습성을 지속해 오고 있다. 

동물의 세계에는 그래도 균형이 이뤄진다. 동물의 왕 사자는 약한 동물들을 무자비하게 사냥 하지만, 배가 부르면 눈앞에 멋잇감이 있어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계 스스로 공생 공존하는 섭리다. 허나 사람은 다르다. 배가 부르고 곳간이 넘쳐도 사냥감을 발견하면 또 다시 잔인하게 죽이고 탈취해 기어이 지배욕을 채우는 무한의 탐심을 발동한다. 

물론 사람의 인성이 다 같지는 않다. 아무리 상대가 허약해도 존중해주며 상생의 대상으로 삼는 선하고 자비로운 감성과 이성을 지닌 이들이 더 많다. 그들은 침탈이 아닌 화해와 평화를 추구한다. 그런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은 인간사와 국제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돼, 선악의 판단보다 강자의 논리와 힘의 논리가 우선하고 횡행한다. 어쩌면 갈수록 심화되어 피아 갈라치기로 분열과 적대를 넘어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독존적 행태와 사악하고 뻔뻔한 자들의 논리로 ‘확장 진화’하는 세상이다. 

이스라엘을 전쟁의 불구덩이로 몰아넣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 같은 인물들이 바로 그런 무모하고 독선적인 극단적 탐욕자들이다.막무가내 네타냐후는 전쟁을 멈추면 총리직이 위태롭다고 한다. 총리를 그만두면 곧바로 형사소추를 당할 부패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개인의 안위에 눈이 멀어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가 수많은 인명살상을 부르는 그야말로 비열하고 잔인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탄핵여론이 비등한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과 부인의 비리와 부정부패 의혹을 뭉개고 덮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검찰은 물론 국가 주요 권력기관들이 내로남불의 방패막이가 되어 국민을 위한 국정은 내팽개친지 오래다. 국정 최고 의결기구인 국무회의 마저 특검법안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 보조기구로 전락한 상태다. 국가기관이 오로지 대통령 일가 범죄의혹 방어에 악용되면서 총체적 국정 난맥을 초래하고 있는 불행하고 몰상식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계엄 준비설까지 나도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무리한 혈세를 쏟아부어 탱크와 전투기까지 동원한 시가지 군사퍼레이드를 곱잖게 보는 국민의 눈총과 불안은 그들 안중에 있을 리가 없다. 와중에 전쟁불사의 대 북한 적대발언을 수시로 내뱉는 것에서 동물적 충동공격의 위험성을 본다.

비루한 탐욕자들이 평화를 깨고 비참한 전쟁을 부를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불의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호벽은 아니다.  아무리 법과 제도와 윤리를 강조해도 탐욕의 리더십은 이를 교활하게 회피하고 무력화한다.  국민의 판단과 선택의 중요성을 백번 강조해도 모자라는 이유다. 다수결 승자독식 구조에서 순간의 착각과 오판이 불러오는 미래는 불행과 퇴행과 저주의 동물세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뒤늦게 후회하다 보면 주권자 자신의 탐욕이 결국 탐욕자를 만들어 낸 것임을 깨닫지만, 이미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는 남는다. 

한달 남짓 남은 대선에서 미국인의 선택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 인류의 장래에 자칫 눈물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해리스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트럼프는 거짓선동과 적대정치를 만연케 하고, 기후협약 탈퇴로 지구촌의 기후위기를 가속화 시킨 장본인이다. 

한때 김정은과 협상을 벌였기에 한반도 통일에 도움을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트럼프든 해리스든 공통점은 그들의 최우선이 정복과 지배에 능한 미국익(美國益) 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인이 명심할 일은 우수한 지도자를 택해서 한국익(韓國益) 최우선의 길을 열어가는 것 만이 정복과 지배를 떨치고 번영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김종천 편집인 >

[목회칼럼] 테바(תֵּבָה) 를 타고 온 토론토

● 칼럼 2024. 10. 4. 13:30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테바(תֵּבָה) 를 타고 온 토론토

 

차재화 목사 < 토론토 동산장로교회 담임 >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어 주면 아이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성경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희집 경우에는, 큰 아이는 모세 이야기를 좋아하고, 작은 아이는 노아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고등학생인 큰 아이는 모세가 아기였을 때 갈대상자에 숨겨져 극적으로 살아 나는 장면을 좋아 하고, 초등학생 둘째는 노아의 방주 안에서 노아와 가족들이 동물들과 살아가는 모습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이 두 가지 성경의 이야기들은 기독교 문화 뿐 아니라 비기독인들에게도 친숙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와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전체 관람가로 극장 상영도 하였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들이 좀 더 많이 만들어져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이 세상 가운데 역사하심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런데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갈대상자에는 영화와 에니메이션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 원어의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테바(תֵּבָה)’라는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두 번 사용 되었는데, 바로 ‘방주’와 ‘갈대상자’입니다. 히브리어 테바(תֵּבָה)는 상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을 때, 노아를 통해 방주라는 거대한 상자를 만들어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셨고, 요게벳을 통해 갈대상자를 만들어 아기 모세를 살릴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 해주신 테바(תֵּבָה)에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운전대와 동력이 없습니다. 바람이 불어야 움직이고, 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상자가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멈추신 때에 비로소 노아의 가족들과 아기 모세는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방향과 속도 그리고 목적지까지 하나님께 철저히 맡겨진 삶이 바로 테바(תֵּבָה)가 주는 교훈입니다. 


저는 10년 전, 한국을 떠나 토론토에 왔습니다. 당시 5살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경유행 비행기를 타고 늦은 밤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도착한 날을 잊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 저희 가족은 타고 온 비행기가 테바(תֵּבָ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테바(תֵּבָה) 를 타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누리며, 우리의 생각과 계획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보내시고 또 멈추라고 하신 곳에 테바(תֵּבָה) 통해 인도해 주시는 구원의 은혜가 있습니다.

대붕괴 시대를 만들고 있는 대통령과 간신들

● 칼럼 2024. 9. 18. 13:1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김종대 칼럼]  의료·교육·군대까지 국가기반 붕괴

지금은 의료 공백 아닌 국민 안전 비상사태
자기도취 대통령과 우글거리는 사리사욕 간신들
여야는 파국 막기 위한 대화 긴급히 도모해야

 

김종대 전 국회의원

 

2003년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발생한 물류 대란은 신생 노무현 정부에 큰 충격이었다. 그 여파로 2004년 3월에 제정된 재난안전법(이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으로 개정)은 사회적 위기가 닥쳤을 때 국민의 안전과 정부의 기능이 유지되도록 제반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2007년에 개정된 이 법에서는 에너지, 정보통신, 교통수송, 보건의료 등 “경제, 국민의 안전·건강 및 정부의 핵심 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설, 정보기술시스템 및 자산”을 ‘국가 핵심 기반’이라고 정의한다. 2024년 현재 11개 주관기관, 144개 관리기관, 363개의 시설이 국가 핵심 기반으로 지정되어 있다.

28개 의료기관은 전쟁 때에도 기능 유지해야 할 국가 핵심 기반

이 시설에 대해 행정안전부는 안전정책조정위원회를 운영하여 국가 핵심 기반 보호계획 수립지침을 관리기관에 통보하고 관리 실태를 점검하며 재난관리를 평가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관리기관과 주관기관은 핵심 기반에 대해 보호 계획을 수립하고 핵심 기반의 기능이 연속성을 유지하도록 의무를 부과한다. 평소에 안전점검과 정밀진단을 시행하되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고 위기관리 메뉴얼을 유지하며 비상 상황을 관리하도록 한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를 보면 국립중앙의료원과 8개 대학병원(서울대, 경북대, 전남대, 충남대, 충북대, 경상대, 분당서울대, 양산부산대), 20개 혈액원이 핵심 기반으로 지정되어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이 28개 의료 기관에 대해서는 전쟁이나 사회재난, 자연재해 등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반드시 그 기능을 유지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의료 기관은 원전, 석유 시설, 철도, 공항, 정보통신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국가 생존의 기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올해 2월에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한 의료 개혁안을 발표하고 그 직후부터 전공의가 속속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8월부터 직격탄을 맞은 충북대 병원의 일부 셧다운 사태에 대한 첫 보도가 나왔다. 이후 9월까지 충남과 부산에서도 유사한 응급실 마비 현상이 나타났다. 응급실과 배후진료 마비 사태는 재난 및 안전관리법에서 규정한 국가 핵심 기반으로 지정된 의료 기관에서 먼저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국가 핵심 기반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는 어떤 의견이나 비상조치를 건의한 적이 없고, 당연히 위기관리 메뉴얼도 작동하지 않았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전국 병원 곳곳이 응급실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 중환자실 앞에서 내원객들이 기다리고 있다. 2024. 09.10 [연합]
 

국가 안전 비상사태에 손놓은 정부, 흔들리는 항상성

주관 기관인 보건복지부와 관리기관인 시·도는 응급실과 진료 정상화를 위해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재난 및 안전관리법을 위반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의 의료 공백 사태를 업무 복귀명령에 응하지 않은 전공의 탓으로 돌리는 것 말고, 국민 안전의 비상사태에 대비한 법령 체계와 행정 기능은 완전히 고장났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으며, 책임을 질 생각조차 없다.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재난 및 안전관리법은 사실상 파산 상태로 치달을 수 있다.

처음에는 이 상황이 의료 개혁 문제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국민 안전 사태라고 보아야 한다. 지금의 의료 붕괴는 경부선 축을 따라 충청권과 대구, 부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돌발적인 응급상황에서 100km를 이동하여 수도권 병원으로 몰려드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문제는 치료 가능 환자가 의료 공백으로 얼마나 사망하였는지를 알려주는 ‘초과 사망률’에 대해서는 통계조차 나오지 않고 간헐적으로 벌어지는 안타까운 사망 사례만 언론에 보도될 뿐이다. 정부의 책임 있는 설명이 없고 알 권리를 충족하지 못한 국민의 심리적 불안은 실제 의료 공백보다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전쟁 상황에서도 유지되어야 할 정부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개혁이라도 국가 생존의 기반을 위협하면서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우리가 국방개혁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개혁을 핑계로 휴전선 경계마저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어떤 개혁이라 하더라도 국가를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이 침해될 수는 없다.

 

의대 증원 갈등 언제까지. [연합]
 

의대 증원을 위해 법까지 위반한 정권의 과시욕과 대학의 탐욕

우리나라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수험생이 입시를 안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끔 전국 4년제 대학의 학사, 재정, 시설 등 주요 관심사에 대하여 의견을 모아 정부에 건의하여 정책에 반영하게 하는 대학교육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대교협 등 ‘학교 협의체’는 입학연도 개시 1년 10개월 전까지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공표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래서 대입전형 시행계획은 입시생이 고2가 되는 해의 4월 말까지 예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유독 2025학년도 모집 요강은 ‘대학 구조개혁을 위한 학과 개편 및 정원 조정 시한’에서 2024년 4월 말까지 신청하고 5월 말까지 심의·조정을 완료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의 의대 정원이 여기에 해당된다. 올해 의대 정원 조정안이 법원에 집행정지 소송이 제기됨에 따라 각 대학은 재판 결과를 지켜보느라고 5월까지 정원 증원에 따른 학칙 개정을 미루다가 판결 이후 부랴부랴 학칙 개정을 완료했다. 이는 명백히 고등교육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임에도 교육부와 대학이 이를 방치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이런 교육제도의 문란함은 현실을 무시하고 정원을 늘리려는 대학 당국의 탐욕과 정권의 과시욕이 결합된 결과다. 이런 한탕주의식의 입시 제도에 현혹된 수험생들이 대규모로 의대를 지원하면서 한바탕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다. 8월 말에 “의대 증원 문제는 6개월이면 끝난다”고 공언한 정부 고위 관료들은 바로 이 점을 노렸을 것이다. 내년 3월 입학식만 무사히 치르면 의대 증원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니 시간은 자기네 편이라고 믿는 것이다.

자기 과시욕 충족 위해 의대 교육 현장에 재앙 부르는 윤 대통령

이후 교육 과부하로 인해 의대 교육 현장에서 벌어질 혼란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더 큰 망상이 따라온다. 나중에 의대 시설 투자에 2조 원을 투입하겠다며 일단 정원부터 늘리고 보라는 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도제식 교육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의대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의학을 연구하는 전문 직업집단으로서 의대 교수를 깔보고 무시하는 우월감이 도사리고 있다. 서울의 일부 의과 대학의 경우 1~2학년 남자 재학생의 63%가 군대를 가겠다며 휴학을 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앞으로 닥칠 대규모 유급 사태는 물론이고 일시에 복학하는 학생이 늘어난 정원과 합쳐질 경우 지금의 2배인 7000~8000명이 일시에 교육을 받는 2026년 이후 상황은 거의 재앙이다.

지금의 의료 대란은 국민 안전 비상사태인 동시에 정치화된 교육과 입시 제도가 파산으로 가고 있는 명백한 징후다. 설령 의료 개혁이 국민이 지지를 받는 선한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 방법이 권위주의와 불투명, 무엇보다도 윤석열 대통령의 자기 과시욕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됨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형국이다. 이런 폭주는 추석 명절 직전에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을 20%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런 국정 파행은 대통령실과 여당 간에도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파국을 계속 감내할 것인지, 아니면 여야가 협력하여 윤 대통령의 폭주를 멈추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 08.29 [연합]
 

의료 대란 다음의 재앙은 국가 안보 초석인 군대

만일 윤 대통령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면 의료 대란에 이어 나타날 다음의 재앙도 각오해야 한다. 작년에 윤 대통령의 대규모 연구개발 예산 삭감은 한국이 과학 인재의 순유출국으로 더욱 곤두박질치게 했다. 다음의 재앙은 국가 안보의 초석인 군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에서 한 때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던 대학 학군단이 미달 사태로 돌변하였고 초급 간부가 정원에 비해 지원이 미달되어 군대 조직의 허리가 붕괴될 조짐이다. 원래 의료 취약 지대에 있는 군 의료체계는 군의관 지원의 급격한 감소로 그 수명이 몇 년 남지 않은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개혁은 진정한 개혁의 본질에 집중하는 체계적이고 신뢰성 있는 방식이 아니라 개혁을 빙자하여 자기도취를 충족시키는 방식이다. 자존감이 약한 측근과 관료들이 직언을 하지 못하고 면종복배하는 예스맨으로 전락하게 되는데, 이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밝힌 간신의 6단계 중 2번 째, 즉 군주의 말에 무조건 영합하며 아첨하는 신하인 유신(諛臣)에 해당된다. 이런 예스맨들은 윤 대통령이 현실과 동떨어진 국정 브리핑을 하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과 정치를 분리시키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3번째 단계, 즉 간신(奸臣)으로 진화한다. 국민 안전과 교육의 비상사태를 초래했고 앞으로 국방을 무너뜨릴 자들이다. 지금이 바로 그들의 전성시대다. 여야는 정치적 견해를 초월하여 지금의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편집인 칼럼] 폭정과 기억상실의 병

● 칼럼 2024. 9. 8. 10:5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 한마당]  폭정과 기억상실의 병

 

 

중국 역사 5천년에 명멸한 제왕이 509명 인데, 그중에 손꼽히는 10대 폭군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으로 기억에 남는 수나라의 양제(569~618)는 중국사의 대표적인 포악 군주였다. 후대에 ‘방탕 악랄하며 여색에 빠졌고 천륜을 거역하며 백성을 착취했다’는 뜻의 ‘煬(양)’을 써서 ‘양제’라 칭했다는 그는 부왕과 형을 죽이고 제왕이 되어 온갖 패악질을 일삼다 반란군에 목졸려 최후를 맞았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절대 권력의 군왕인지라, 아무리 어진 군주라 해도 폭압적 요소야 있었겠지만, 당대와 후세의 역사는 유별난 독선과 학정, 포악한 살상과 공포정치로 이름을 떨친 자들을 특기해 모멸과 오욕을 안겼다.

서양사에도 무수한 폭군들이 등장했다. 로마의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등부터 영국의 리차드 3세와 헨리 8세, 프랑스의 루이14세, 나폴레옹 1세…그리고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에 이르기 까지 악명을 떨친자들이 허다하다.

한국사에서 ‘폭군’하면 조선의 연산군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폭군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는 불운의 군주 연산 외에 사가들은 고구려의 모본왕, 백제의 개로왕, 고려의 의종과 공민왕, 그리고 조선의 광해군을 포함해 ‘6대 폭군’으로 선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공통점은 “편집과 아집, 이기심에 가득 차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무모하게 전쟁을 벌이고 쓸데없는 겉치레에 신경을 썼다. 자만과 독선이 백성들을 굶주림과 고통에 몰아넣었고, 신하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들의 결말은 외부 침략자의 손에 죽임을 당하거나 신하들의 반정을 통해 왕위에서 쫓겨났다.”고 했다.(폭군의 몰락: 이한, 2013)

토론토대학 출신으로 예일대 정치과학 박사인 월러 뉴웰 (Waller R. Newell) 교수는 ‘폭군 이야기’(Tyrants: 2017)에서 “역사는 진보한다는 장밋빛 믿음은 매우 위험하다. 바로 그 믿음 때문에 많은 현대인들이 폭정을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면서 안심하게 됐고, 진보의 과정 속에서 ‘필요악’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일부라고 여기게 됐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과거와 같은 폭압과 학살은 어렵지만,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의 전부는 아니다.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고 교묘한 방식으로 대중을 호도하면서 참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제반 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폭정이다”라고 ‘합법을 가장한 폭정’의 위험을 지적했다.

한국의 근현대에도 폭군의 역사는 명맥을 잇는다. 이승만은 친일 고등경찰을 고용해 독립투사들을 고문했고, 암살을 사주했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20만명 안팎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4.19 학생혁명으로 물러나 망명지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잘 알려진 바다. 18년 집권한 독재자 박정희는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절명했다. 정권찬탈과 광주학살의 주역 전두환은 김대중의 시혜로 요행히 천수를 누렸으나, 두고두고 ‘학살자’ 오명은 벗지 못하게 됐다.

전두환이 ‘위장 항복’한 6.10 항쟁 이후 이른바 87체제로 민주화가 이행된지 37년, 그리고 박근혜가 국내외 2천만 촛불로 쫓겨난지 7년여가 지난 요즘, 기억하기도 싫은 ‘폭군과 독재’의 이야기가 되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뉴웰 교수의 풀이대로 최근 한국의 권력자가 바로 그 과거퇴행과 막무가내 역주행을 감행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설마’가 실제가 되어 수십년 전의 고통을 되살리는 윤석열 정권의 막가파식 행태가 심상치 않다.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고, 오직 가족과 검찰, 학연과 극우 카르텔에 의존해 독선적이고 특권적인 권력행사에 몰두하는 것을 본다. 국리민복이 아닌 일가와 조직의 이익을 우선하고, 애국보다 왜국을 중시하는 듯한 징표들… 이제는 ‘계엄’까지 우려할 정도로 뚜렷한 반헌법과 반민주 반민족적인 폭정의 흑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앞서의 뉴웰 교수 진단은 마치 지금의 한국상황을 보고 분석한 것처럼 들린다. 그는 이렇게 깨우쳤다. “이른바 민주화 운동을 통해 독재자를 끌어 내린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대중이 폭정에 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화면 그렇게 또 ‘기억상실’이라는 병 때문에 같은 일이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쉽게 걸리는 기억상실의 병, 불의를 기억하지 못하면 훗날 그 것이 정의로 바뀐다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런 경험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무늬만 민주주의인 사회에 살면서도 그 것이 폭정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거기에서 폭정행위를 떼어내 인지할 수 있고, 적어도 ‘최악의 민주주의가 최선의 폭정보다 낫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더 엉망인 정권이 들어서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역사 철학 문학 등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이성을 무장하고 ‘공공의 이익을 향한 열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뉴웰의 경고에 동의한 예일대의 스티븐 스미스 교수도 우리에게 경각심과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여전히 민주주의 가면을 쓴 채 불의한 억압과 폭력을 자행하는 정치지도자들이 많다. 인간에게 권력욕이 있는 한 폭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저항해야 한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