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붕괴 시대를 만들고 있는 대통령과 간신들

● 칼럼 2024. 9. 18. 13:1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김종대 칼럼]  의료·교육·군대까지 국가기반 붕괴

지금은 의료 공백 아닌 국민 안전 비상사태
자기도취 대통령과 우글거리는 사리사욕 간신들
여야는 파국 막기 위한 대화 긴급히 도모해야

 

김종대 전 국회의원

 

2003년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발생한 물류 대란은 신생 노무현 정부에 큰 충격이었다. 그 여파로 2004년 3월에 제정된 재난안전법(이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으로 개정)은 사회적 위기가 닥쳤을 때 국민의 안전과 정부의 기능이 유지되도록 제반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2007년에 개정된 이 법에서는 에너지, 정보통신, 교통수송, 보건의료 등 “경제, 국민의 안전·건강 및 정부의 핵심 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설, 정보기술시스템 및 자산”을 ‘국가 핵심 기반’이라고 정의한다. 2024년 현재 11개 주관기관, 144개 관리기관, 363개의 시설이 국가 핵심 기반으로 지정되어 있다.

28개 의료기관은 전쟁 때에도 기능 유지해야 할 국가 핵심 기반

이 시설에 대해 행정안전부는 안전정책조정위원회를 운영하여 국가 핵심 기반 보호계획 수립지침을 관리기관에 통보하고 관리 실태를 점검하며 재난관리를 평가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관리기관과 주관기관은 핵심 기반에 대해 보호 계획을 수립하고 핵심 기반의 기능이 연속성을 유지하도록 의무를 부과한다. 평소에 안전점검과 정밀진단을 시행하되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고 위기관리 메뉴얼을 유지하며 비상 상황을 관리하도록 한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를 보면 국립중앙의료원과 8개 대학병원(서울대, 경북대, 전남대, 충남대, 충북대, 경상대, 분당서울대, 양산부산대), 20개 혈액원이 핵심 기반으로 지정되어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이 28개 의료 기관에 대해서는 전쟁이나 사회재난, 자연재해 등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반드시 그 기능을 유지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의료 기관은 원전, 석유 시설, 철도, 공항, 정보통신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국가 생존의 기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올해 2월에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한 의료 개혁안을 발표하고 그 직후부터 전공의가 속속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8월부터 직격탄을 맞은 충북대 병원의 일부 셧다운 사태에 대한 첫 보도가 나왔다. 이후 9월까지 충남과 부산에서도 유사한 응급실 마비 현상이 나타났다. 응급실과 배후진료 마비 사태는 재난 및 안전관리법에서 규정한 국가 핵심 기반으로 지정된 의료 기관에서 먼저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국가 핵심 기반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는 어떤 의견이나 비상조치를 건의한 적이 없고, 당연히 위기관리 메뉴얼도 작동하지 않았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전국 병원 곳곳이 응급실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 중환자실 앞에서 내원객들이 기다리고 있다. 2024. 09.10 [연합]
 

국가 안전 비상사태에 손놓은 정부, 흔들리는 항상성

주관 기관인 보건복지부와 관리기관인 시·도는 응급실과 진료 정상화를 위해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재난 및 안전관리법을 위반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의 의료 공백 사태를 업무 복귀명령에 응하지 않은 전공의 탓으로 돌리는 것 말고, 국민 안전의 비상사태에 대비한 법령 체계와 행정 기능은 완전히 고장났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으며, 책임을 질 생각조차 없다.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재난 및 안전관리법은 사실상 파산 상태로 치달을 수 있다.

처음에는 이 상황이 의료 개혁 문제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국민 안전 사태라고 보아야 한다. 지금의 의료 붕괴는 경부선 축을 따라 충청권과 대구, 부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돌발적인 응급상황에서 100km를 이동하여 수도권 병원으로 몰려드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문제는 치료 가능 환자가 의료 공백으로 얼마나 사망하였는지를 알려주는 ‘초과 사망률’에 대해서는 통계조차 나오지 않고 간헐적으로 벌어지는 안타까운 사망 사례만 언론에 보도될 뿐이다. 정부의 책임 있는 설명이 없고 알 권리를 충족하지 못한 국민의 심리적 불안은 실제 의료 공백보다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전쟁 상황에서도 유지되어야 할 정부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개혁이라도 국가 생존의 기반을 위협하면서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우리가 국방개혁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개혁을 핑계로 휴전선 경계마저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어떤 개혁이라 하더라도 국가를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이 침해될 수는 없다.

 

의대 증원 갈등 언제까지. [연합]
 

의대 증원을 위해 법까지 위반한 정권의 과시욕과 대학의 탐욕

우리나라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수험생이 입시를 안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끔 전국 4년제 대학의 학사, 재정, 시설 등 주요 관심사에 대하여 의견을 모아 정부에 건의하여 정책에 반영하게 하는 대학교육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대교협 등 ‘학교 협의체’는 입학연도 개시 1년 10개월 전까지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공표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래서 대입전형 시행계획은 입시생이 고2가 되는 해의 4월 말까지 예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유독 2025학년도 모집 요강은 ‘대학 구조개혁을 위한 학과 개편 및 정원 조정 시한’에서 2024년 4월 말까지 신청하고 5월 말까지 심의·조정을 완료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의 의대 정원이 여기에 해당된다. 올해 의대 정원 조정안이 법원에 집행정지 소송이 제기됨에 따라 각 대학은 재판 결과를 지켜보느라고 5월까지 정원 증원에 따른 학칙 개정을 미루다가 판결 이후 부랴부랴 학칙 개정을 완료했다. 이는 명백히 고등교육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임에도 교육부와 대학이 이를 방치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이런 교육제도의 문란함은 현실을 무시하고 정원을 늘리려는 대학 당국의 탐욕과 정권의 과시욕이 결합된 결과다. 이런 한탕주의식의 입시 제도에 현혹된 수험생들이 대규모로 의대를 지원하면서 한바탕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다. 8월 말에 “의대 증원 문제는 6개월이면 끝난다”고 공언한 정부 고위 관료들은 바로 이 점을 노렸을 것이다. 내년 3월 입학식만 무사히 치르면 의대 증원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니 시간은 자기네 편이라고 믿는 것이다.

자기 과시욕 충족 위해 의대 교육 현장에 재앙 부르는 윤 대통령

이후 교육 과부하로 인해 의대 교육 현장에서 벌어질 혼란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더 큰 망상이 따라온다. 나중에 의대 시설 투자에 2조 원을 투입하겠다며 일단 정원부터 늘리고 보라는 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도제식 교육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의대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의학을 연구하는 전문 직업집단으로서 의대 교수를 깔보고 무시하는 우월감이 도사리고 있다. 서울의 일부 의과 대학의 경우 1~2학년 남자 재학생의 63%가 군대를 가겠다며 휴학을 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앞으로 닥칠 대규모 유급 사태는 물론이고 일시에 복학하는 학생이 늘어난 정원과 합쳐질 경우 지금의 2배인 7000~8000명이 일시에 교육을 받는 2026년 이후 상황은 거의 재앙이다.

지금의 의료 대란은 국민 안전 비상사태인 동시에 정치화된 교육과 입시 제도가 파산으로 가고 있는 명백한 징후다. 설령 의료 개혁이 국민이 지지를 받는 선한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 방법이 권위주의와 불투명, 무엇보다도 윤석열 대통령의 자기 과시욕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됨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형국이다. 이런 폭주는 추석 명절 직전에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을 20%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런 국정 파행은 대통령실과 여당 간에도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파국을 계속 감내할 것인지, 아니면 여야가 협력하여 윤 대통령의 폭주를 멈추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 08.29 [연합]
 

의료 대란 다음의 재앙은 국가 안보 초석인 군대

만일 윤 대통령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면 의료 대란에 이어 나타날 다음의 재앙도 각오해야 한다. 작년에 윤 대통령의 대규모 연구개발 예산 삭감은 한국이 과학 인재의 순유출국으로 더욱 곤두박질치게 했다. 다음의 재앙은 국가 안보의 초석인 군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에서 한 때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던 대학 학군단이 미달 사태로 돌변하였고 초급 간부가 정원에 비해 지원이 미달되어 군대 조직의 허리가 붕괴될 조짐이다. 원래 의료 취약 지대에 있는 군 의료체계는 군의관 지원의 급격한 감소로 그 수명이 몇 년 남지 않은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개혁은 진정한 개혁의 본질에 집중하는 체계적이고 신뢰성 있는 방식이 아니라 개혁을 빙자하여 자기도취를 충족시키는 방식이다. 자존감이 약한 측근과 관료들이 직언을 하지 못하고 면종복배하는 예스맨으로 전락하게 되는데, 이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밝힌 간신의 6단계 중 2번 째, 즉 군주의 말에 무조건 영합하며 아첨하는 신하인 유신(諛臣)에 해당된다. 이런 예스맨들은 윤 대통령이 현실과 동떨어진 국정 브리핑을 하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과 정치를 분리시키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3번째 단계, 즉 간신(奸臣)으로 진화한다. 국민 안전과 교육의 비상사태를 초래했고 앞으로 국방을 무너뜨릴 자들이다. 지금이 바로 그들의 전성시대다. 여야는 정치적 견해를 초월하여 지금의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편집인 칼럼] 폭정과 기억상실의 병

● 칼럼 2024. 9. 8. 10:5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 한마당]  폭정과 기억상실의 병

 

 

중국 역사 5천년에 명멸한 제왕이 509명 인데, 그중에 손꼽히는 10대 폭군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으로 기억에 남는 수나라의 양제(569~618)는 중국사의 대표적인 포악 군주였다. 후대에 ‘방탕 악랄하며 여색에 빠졌고 천륜을 거역하며 백성을 착취했다’는 뜻의 ‘煬(양)’을 써서 ‘양제’라 칭했다는 그는 부왕과 형을 죽이고 제왕이 되어 온갖 패악질을 일삼다 반란군에 목졸려 최후를 맞았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절대 권력의 군왕인지라, 아무리 어진 군주라 해도 폭압적 요소야 있었겠지만, 당대와 후세의 역사는 유별난 독선과 학정, 포악한 살상과 공포정치로 이름을 떨친 자들을 특기해 모멸과 오욕을 안겼다.

서양사에도 무수한 폭군들이 등장했다. 로마의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등부터 영국의 리차드 3세와 헨리 8세, 프랑스의 루이14세, 나폴레옹 1세…그리고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에 이르기 까지 악명을 떨친자들이 허다하다.

한국사에서 ‘폭군’하면 조선의 연산군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폭군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는 불운의 군주 연산 외에 사가들은 고구려의 모본왕, 백제의 개로왕, 고려의 의종과 공민왕, 그리고 조선의 광해군을 포함해 ‘6대 폭군’으로 선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공통점은 “편집과 아집, 이기심에 가득 차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무모하게 전쟁을 벌이고 쓸데없는 겉치레에 신경을 썼다. 자만과 독선이 백성들을 굶주림과 고통에 몰아넣었고, 신하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들의 결말은 외부 침략자의 손에 죽임을 당하거나 신하들의 반정을 통해 왕위에서 쫓겨났다.”고 했다.(폭군의 몰락: 이한, 2013)

토론토대학 출신으로 예일대 정치과학 박사인 월러 뉴웰 (Waller R. Newell) 교수는 ‘폭군 이야기’(Tyrants: 2017)에서 “역사는 진보한다는 장밋빛 믿음은 매우 위험하다. 바로 그 믿음 때문에 많은 현대인들이 폭정을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면서 안심하게 됐고, 진보의 과정 속에서 ‘필요악’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일부라고 여기게 됐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과거와 같은 폭압과 학살은 어렵지만,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의 전부는 아니다.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고 교묘한 방식으로 대중을 호도하면서 참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제반 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폭정이다”라고 ‘합법을 가장한 폭정’의 위험을 지적했다.

한국의 근현대에도 폭군의 역사는 명맥을 잇는다. 이승만은 친일 고등경찰을 고용해 독립투사들을 고문했고, 암살을 사주했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20만명 안팎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4.19 학생혁명으로 물러나 망명지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잘 알려진 바다. 18년 집권한 독재자 박정희는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절명했다. 정권찬탈과 광주학살의 주역 전두환은 김대중의 시혜로 요행히 천수를 누렸으나, 두고두고 ‘학살자’ 오명은 벗지 못하게 됐다.

전두환이 ‘위장 항복’한 6.10 항쟁 이후 이른바 87체제로 민주화가 이행된지 37년, 그리고 박근혜가 국내외 2천만 촛불로 쫓겨난지 7년여가 지난 요즘, 기억하기도 싫은 ‘폭군과 독재’의 이야기가 되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뉴웰 교수의 풀이대로 최근 한국의 권력자가 바로 그 과거퇴행과 막무가내 역주행을 감행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설마’가 실제가 되어 수십년 전의 고통을 되살리는 윤석열 정권의 막가파식 행태가 심상치 않다.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고, 오직 가족과 검찰, 학연과 극우 카르텔에 의존해 독선적이고 특권적인 권력행사에 몰두하는 것을 본다. 국리민복이 아닌 일가와 조직의 이익을 우선하고, 애국보다 왜국을 중시하는 듯한 징표들… 이제는 ‘계엄’까지 우려할 정도로 뚜렷한 반헌법과 반민주 반민족적인 폭정의 흑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앞서의 뉴웰 교수 진단은 마치 지금의 한국상황을 보고 분석한 것처럼 들린다. 그는 이렇게 깨우쳤다. “이른바 민주화 운동을 통해 독재자를 끌어 내린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대중이 폭정에 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화면 그렇게 또 ‘기억상실’이라는 병 때문에 같은 일이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쉽게 걸리는 기억상실의 병, 불의를 기억하지 못하면 훗날 그 것이 정의로 바뀐다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런 경험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무늬만 민주주의인 사회에 살면서도 그 것이 폭정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거기에서 폭정행위를 떼어내 인지할 수 있고, 적어도 ‘최악의 민주주의가 최선의 폭정보다 낫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더 엉망인 정권이 들어서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역사 철학 문학 등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이성을 무장하고 ‘공공의 이익을 향한 열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뉴웰의 경고에 동의한 예일대의 스티븐 스미스 교수도 우리에게 경각심과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여전히 민주주의 가면을 쓴 채 불의한 억압과 폭력을 자행하는 정치지도자들이 많다. 인간에게 권력욕이 있는 한 폭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저항해야 한다.” 

< 김종천 편집인 >

[목회칼럼] 우리의 에밀들

● 칼럼 2024. 9. 8. 10:3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우리의 에밀들

 

전상규 목사 (생명나무 교회)

 

「에밀, 집에 가자!」라는 어린이 동화가 있습니다.

알프스 산 중턱에 사는 마르타 할머니는 에밀이라는 아기 돼지를 기릅니다. 이 할머니는 매우 가난해서 늘 음식도 부족합니다. 그나마 여름에는 텃밭을 가꾸어서 채소를 얻고, 가끔 목장의 우유도 몰래 먹을 수도 있지만,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고픈 채 잠을 잘 때가 많았습니다. 이런 마르타 할머니가 아기 돼지 에밀을 기르는 이유는 배고픈 겨울을 나기 위해서입니다. 할머니는 에밀과 음식을 나누지만, 사실은 에밀이 어서 살이 통통해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자 마르타 할머니는 에밀을 데리고 도살장으로 향했습니다. 아기 돼지 에밀은 그것도 모르고 도살장으로 가는 길의 도시를 구경하면서 신나합니다. 그러나 도살장의 참혹한 실상을 직접 목격한 마르타 할머니는 아기 돼지 에밀을 도살장에 넘겨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기 돼지에게 말합니다.

“에밀, 집에 가자!”

어느 새 할머니에게 에밀은 음식이 아니라 가족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희노애락의 감정을 나누며 그만큼 가까워진 것입니다. 마르타 할머니와 아기 돼지 에밀이 함께 집에 돌아오는 오후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마르타 할머니는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먹을 것이 아니라 따스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오히려 함께하며 생겨난 그 사랑이 한 겨울의 배고픔마저 이길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넘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각자도생, 먹고사니즘이 점점 우리의 머리를 갉아먹고 가슴을 굳어지게 합니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햇빛에 더위를 먹은 것처럼, 우리의 살갗에서 삶의 치열함의 열기가 잘 식어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필요하고 늘 부족하기만 합니다.

심지어 저만치 떨어져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언젠가 나의 삶의 필요를 채워줄 존재들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기다렸다가 도살장으로 데리고 가서 ‘겨울나기’를 준비해야 할 대상으로 보입니다. 내가 좀 더 높이 올라가야 할 디딤돌로, 나의 즐거움을 위한 쾌락의 도구들로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쌀쌀해지고 찬바람이 돌 때 같이 배고픔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가족들입니다. 그들과 더 가까이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허기진 겨울을 이길 수 있는 진정한 힘입니다. 아니 실제로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약간의 더 풍족함보다 이 따스한 사랑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에밀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것들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가슴에 그들을 더 많이 담아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더 어려워지는 시간들을 이겨낼 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국치일에 나온 "침범 걱정은 일본이 해야" 칼럼

경제·군사력 한국이 앞서니 자위대 들여도 된다?
일, 전쟁범죄 부정·역사왜곡에 독도영유권 도발

국민 반일 감정 조롱하는 친일 매국 신문 아닌가

 

8월 29일은 국치일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에 못 이겨 대한제국이 망하고 국권을 빼앗긴 날이다. 국호도 일제 뜻대로 조선으로 칭하게 되었다. 조선일보라는 이름이 달리 보인다. 국치일을 기억해야 까닭은 다시는 그런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독립투사를 기억하며 민족적 자부심을 가질 만한 삼일 혁명일이나 광복절조차도 못난 조상을 떠올리며 치욕스러운 과거를 곱씹어야 하는 괴기스러운 날이 되고 말았다. 우리 민족에게 갖은 만행과 수탈을 일삼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꾸짖기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지 못하는 좀팽이 자신을 탓하는 행태를 강요받았다. 암약하던 뉴라이트 세력의 발호가 한창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이 8월 29일에 “침범 걱정은 우리 아닌 일본이 해야”라는 장문의 칼럼을 올리셨다.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기발한 발상이다. 역시 천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실력으로 어쩌지 못하는 경우라도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묘책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1등 민족정론지 조선일보의 주필이 되셨구나 싶다. 

 

 

요약한 내용을 보면 “많은 측면에서 일본을 추월 중인 한국” “군사력은 이미 앞서 군사력 앞선 나라 정치인들이 약한 나라가 쳐들어온다고 겁주고 속이기 그만해야”로 되어 있다. 일본을 과소평가해선 안 되지만 과대평가할 이유도 없단다. 지당한 말씀이나 여전히 일본 제국주의에 쇠말뚝인 조선일보의 꿍꿍이가 궁금하다.

하필 조기를 달아야 하는 국치일에 이런 글 나부랭이를 만나니 만감이 교차한다. 글을 쓰거나 말할 때는 대상을 생각하게 된다. 이 글은 과연 누구를 생각하고 쓴 것일까? ‘겁주고 속이기’를 그만해야 한다는 말의 주어가 군사력이 앞선 한국 정치인들이니 한국 사람이 읽겠다고 생각한 글임이 틀림없다.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이 이 글을 읽고 동의하게 될까’라는 허튼 질문을 해본다.

사실 양상훈 종업원에게 중요한 것은 한국 사람의 마음이 아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 즉 ‘중일마’의 시대에 한가운데 있음을 절감한다. 조선일보가 한글로 된 일본 신문이란 말이 더욱 사무친다.

자신들이 박아놓은 쇠말뚝 관리를 소홀히 할 일본 극우 세력이 아니다. 그들이 일본은 한국이 침범하지 않을지 걱정해야 한다는 기사를 읽으며 어떤 표정을 지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양 종업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일본은 자나 깨나 윤석열 정권의 눈치를 보아야 할 처지다. 그렇다면 윤 정권의 잇따른 대일 굴종 외교 자세는 고도로 계산된 강자의 교만이라도 된다는 말일까?

기초 기술과 국제적인 평판도, 호감도 등을 제외하고 이미 일본보다 우월하게 된 나라의 대통령으로 자세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물론 일본이 앞섰다고 말한 양 종업원의 기준은 지극히 악의적이다. 평판도 나쁘고 호감도 받지 못하는 군사 강국 국민은 조금도 기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음양사들(여우)이 과거 세키가하라 전투와 조선침략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베어 죽여 신이 된 일본 무사 귀신의 미라에 쇠말뚝을 넣고 이것으로 한반도(범)의 허리 부분에 그 귀신을 박아넣아 한반도를 영원히 지배하려고 했다는 내용의 영화 '파묘'의 메인 포스터.
 

양 종업원의 장황한 일본 군사력에 대한 분석이 사실인지는 그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일본의 자위대 체제가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장교 중심이고 전시에는 언제라도 병을 충원하기에 잠재적인 군사력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군사적으로 약한 나라가 침략 전쟁을 부인한 평화헌법을 고쳐 이른바 정상 국가로 가려는 군사적인 야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한국으로부터 침범당할 걱정을 해야 하는 일본이 우리 고유한 영토인 독도에 대해 끊임없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행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최근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전쟁 범죄를 부정하며 역사 왜곡을 일삼는 행태 역시 양 종업원이 걱정해 주는 나라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군사력이 뒤진 나라라면 전쟁 범죄를 철저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양 종업원은 섬세하게 국제 사회가 외면하지 않고 귀를 기울일 반일(反日)을 훈수한다. 합리적이고 사실에 부합하게 반일을 하란다. 조선일보가 바람을 잡으면 으레 생각 없이 뒤를 따르는 윤석열 정권의 허수아비 짓을 지켜볼 일이다.

조선일보 지면에 이어지는 ‘울분 사회’라는 김민철 논설위원 종업원의 글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한국인은 타인과 비교가 일상화되고, 경쟁이 심한 사회인 탓일까’라며 병 주고 약은 주지 않는 짓거리를 멈추지 않는다. 조선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국정원 직원과 추악한 성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참으로 해괴한 집단이다. 매국 세력들이 침묵하는 국치일에 조선일보 폐간만이 국민과 국가를 살리는 길이라는 다짐을 굳게 새긴다.      < 이득우 언소주 정책위원(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 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