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사순절에 시도한 헌혈
김덕원 목사 <열린교회 담임목사>
작년 이맘때 쯤, 그러니까 사순절 어느 날, 나는 헌혈 부스에 누워 도우미의 만족해 하는 얼굴을 올려보고 있었다.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쉽게 헌혈 팩이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사실은 접수하고 헌혈 적합성 검사를 할 때부터 모처럼 튼실한 헌혈자를 발견했다는 듯 미소를 머금은 직원들을 보면서 괜히 어깨가 으쓱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느다란 호스가 터지기라도 할 듯 내 심장은 힘차게 펌프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교회는 해마다 되풀이 되는 습관처럼 지나가는 사순절이기 보다는, 뭔가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헌혈 캠페인을 시작했다. 헌혈차를 부를까, 헌혈하는 곳을 다같이 방문할까, 다양한 생각들을 해 보았지만, 캐나다의 행정 특성상 각자 가까운 장소를 선정하여 예약하고, 헌혈한 다음에 사진을 올려 서로 격려하기로 결정을 했다.
오래 전 한국에 있을 때, 헌혈차를 도로에 세워두고, 행인들을 억지로 끌고 가던 때와는 달리, 예약도 쉽지 않았고, 시간 맞추기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예약된 날짜에 현장에 와 보니, 수많은 민족이 모여 사는 도시답게, 각양 각색의 서로 다른 인종들이 같은 목적으로 팔을 걷어 붙이는 것을 보는 것은 참 가슴이 벅차 오르고, 행복한 일이었다. 겉 모습은 그렇게도 다른데, 그 안에는 서로 주고 받고 할 수 있는, 그러니까 공유할 수 있는 같은 종류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니……
옆 부스에 미리 채혈을 시작한 동양계 한 아가씨는 팔을 주무르기까지 하면서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 듯 했고, 또 저 쪽에 있는 중년의 한 남자도, 손에 든 공을 연신 주무르며, 가뭄에 깊은 샘 두레박질이라도 하는 듯 열심을 내고 있다. 감사하게도, 늦게 들어왔지만, 누구보다도 빠르게 헌혈 팩을 채운 나는 도우미의 칭찬과 박수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내 것을 나눠 주면서 이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있을까?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 헌혈을 관리하는 기관으로부터 일곱 장이나 되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설하고, 편지의 요지는 “성의 있게 헌혈에 참여한 것은 고맙지만, 다음에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예방접종을 통해서 항체가 생기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증세가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피에 그 흔적이 남기 때문에 안전상 피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올 해도 여전히 같은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지만, 나는 참여할 수가 없다. 단 한 사람을 위해서조차 피를 공유할 수 없는 부족한 나를 보며, 이천 년이 넘도록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에게, 더 새로운 새 생명을 나눠주시는 주님의 피의 효력이 그저 놀라운 사실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을 뿐….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 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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