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이민 온지 겨우 1년여 만에 덜컥 신문 발행을 시작했으니, 돌아보면 정말 ‘용감 무쌍’했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 기자생활을 해왔다는 것 외에는, 이민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무모하게 덤벼들었으니 논바닥에서 헤엄치겠다고 뛰어든 것과 뭐가 달랐던가.
앞서 최악의 경우는 피해 볼 심산으로 기존의 신문사를 넘겨받아 운영해 보자고 시도한 일은 있었다. 하지만 잠시 ‘밀당’을 할 때 그쪽이 제공한 자료로 경영상황을 스치듯 곁눈질 했던 기억이 전부인지라, 눈곱 만큼이나마 참고가 되었을지.
수업료 낸 셈 치자며 변호사비를 ‘날리고’는 한국을 다녀오며 결심이 섰었다.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숙명인가 보다,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가슴과 뇌리에 차오른 것이다. “발걸음은 하나님이 인도하신다고 그러셨지!”, 그렇게 직접 도전에 나서 서둘러 체제를 갖추고 ‘시사 한겨레’를 발행하기 시작한 것이 2006년 1월5일이다.
의욕적으로 편집과 전산, 광고영업 등 직원들을 배치해 제법 규모있게 출발했다. 하지만, 역시나 시련은 빨리 다가왔다. 당장 맞닥뜨린 것은 광고 수주였다. 무료배포 신문의 밥줄이 광고 아니던가. 그런데 지면을 아무리 수준있게 만든다 해도, 갓 나온 무명 신문에 선뜻 광고를 줄 기업인이 몇이나 되겠나. 수입은 시원찮은데 직원들 급여에, 제작비 경상비 감당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줄이고 또 줄이고… 결국 최소 필요인력과 ‘생존 마지노선’의 전략으로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 출범 후 1년여 만이다. 그리고 매회, 매월, 늘어나는 흰머리와 함께 한 해, 또 한 해 버티고, “천직아니냐” 자문하면서 견디다 보니, 바로 엊그제 같은 20년이 흘러 버렸다.
현직 기자시절에 좋아하던 은퇴 선배들이 들려주던 이야기 가운데 “유능한 기자는 실제론 무능해서 퇴직 후 고생한다”는 자조섞인 넋두리가 있었다. “아니 선배, 유능한 기자가 무능하다니 ‘형용모순’ 아닌가요!”하고 따지면 “돈벌이에 무능하다는 말”이라며 나중 그만두면 알게 될 거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선배들 말이 실감나게 다가온 것은, 역시 신문사를 그만 두었을 때 이후 직접 신문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일상적인 고된 현실이 되살려냈다.
그런데 그렇게 ‘산전수전’을 겪으며 악전고투하는 사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겁없이 이 바닥에 뛰어들어 잊을만 하면 새 신문과 정보지들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밖에서 보기엔 돈벌이가 될듯 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러더니 얼마안가 문을 닫는 일 또한 속출했다. 어쩌면 신문을 비교적 쉬운 비즈니스로 착각했는지 모른다. 이민사회의 좁은 바닥에서 한인들의 경제력에도 한계가 있는데 유료신문도 힘든 상황에서 광고만으로 버틴다는 것이 보통 벅찬 일인가.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반복되는 발행 때마다 컨텐츠 확보와 만만찮은 제작비용까지, 도저히 경쟁이 안되는 것이다. 더구나 신문의 속성과 제작기법, 특히 역할과 책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신문흉내’로 승부를 보려 했다가는 설상가상의 낭패를 맛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민언론의 생태적 한계인 것이다.
사실 언론, 특히 신문은 돈 되는 사업이 아니다. 매회 생돈 나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저 명맥을 유지한다면 성공이라는 게 반세기 경험칙의 결론이다.
그렇게 비 바람을 헤쳐나온 세월이 어느새 20개 성상에 이르렀으니, 실속없고 민망하지만 ‘성공’이라고 자위해야 할지…오직 독자들 성원과 발걸음을 인도하신 하늘의 가호에 감사와 은공(恩功)을 돌릴 뿐이다.
돌아보면 수지개선 못지않게 당황스러웠던 것은 이념적 갈등이다. 강고한 보수적 성향의 동포사회에 뿌려지는 진보적 색채의 논조가 마뜩잖았던 것인지, 과격 언사의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시사 한겨레는 한인언론이며 한국인의 정체성과 민족자존을 소신으로 하기에, 모국 동향에 관심과 영향이 큰 동포사회를 위해 민족사 전진의 관점에서 선별된 정정(政情) 뉴스를 적극 전한다. 그런데 “좌파”여서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어떤 기사가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틀렸고 오류인지를 물으면 얼버무리며 끊곤 했다.
요즘엔 많이 나아졌다지만, 옳고 그름을 떠난 무조건적 아집과 적대감정에 매몰된 ‘수구적 익명인’들을 접하는 착잡함이란…그들은 ‘우파’라고도 할 수 없는 정말 아쉽고 답답한 외골수들이었다. 선입견과 확증편향으로 고착된 상처가 세월이 흘러도, 바다를 건넌 땅에서도 어김없이 도져 아픈 그림자를 드리우는 한국적 현실의 일단이고, 그 첫째 원흉은 민족분단일 터이니 우리의 숙원인 통일이 비로소 치유의 시작점이 될지, 안타깝다.
진보적 의제를 막무가내 비난과 적대시하는 극우적 시각을 접하면서, 진보의 확장과 보수의 건강성이라는 지역적 이념지형의 변화 과제는 우리의 꾸준한 관심사였다. 보수와 진보의 균형, 곧 ‘보혁(保革) 양날개론’은 어디든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경청할 사회비전이다. 이민사회 역시 건강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가 공존할 때 저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시사 한겨레의 그런 소망과 노력이 얼마나 반향을 불렀는지는 가늠할 수 없다. 다만 60년 동포사의 3분의1을 동행한 20년의 생존사 기록과 체감에서 적잖은 변화를 감지하는 보람, 그리고 희망을 본다. 근래 재외선거에서 보혁의 비율이 4대6 정도인 개표결과도 간접적인 하나의 징표는 되지않을까.
되짚어보면 이런 저런 곡절에도 진보언론 시사 한겨레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언론의 본령(本領)에 대한 나름의 고민에 있었지 않을까 싶다. 여건은 녹록치 않지만 언론의 존재이 유, 소명의 헌신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강박을 안고 몸부림쳐 씨름할 때, 가상히 여겨 다독여준 독자와 동포들, “이만한 신문 하나는 있어야지”라는 격려 덕분이었음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언론은 결코 개인의 소유물에 그치지 않는 공적 자산이다. 아무리 영향력이 미약해도 한 줄의 글이 때론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기사 한 줄, 칼럼 한 편을 쓰면서도 허투루 쓸 수 없었던 이유다.
항상 가슴과 손 끝을 맴돈 것은 ‘성실한 보도 따뜻한 신문, 동포의 번영 겨레의 미래’라는 사시(社是)와 ‘겨레의 창 정보의 샘’이라는 기치의 시사 한겨레 창간정신이다. 창언정론(昌言正論), 춘추직필(春秋直筆)과 정론직필(正論直筆)·파사현정(破邪顯正) 등의 경구 또한 직업의식의 각성제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총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금언을 자부가 아닌 책임과 경고로 새기며, 역량의 한계 속에서도 기사를 쓰고, 편집과 신문제작에 성심을 다해왔다고 감히 고백한다.
이제 20년의 고개를 넘어서지만, 앞날이 불투명해서 걱정이다. 종이신문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온통 AI-온라인 세상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인터넷과 유튜브 등에 범람하는 저질 가짜들의 인간 황폐화 해악이 극에 달할 때 다시 인쇄언론에 눈을 돌릴지, 역시 발걸음은 그 분이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윤석열의 12.3 내란이 국내외 한인동포들을 충격에 빠뜨린지 1년을 넘겨서 비로소 내란특검의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윤석열을 비롯한 친위쿠데타 주모자 등 27명을 재판에 넘기고, 반대세력 제거와 독재권력을 꿈꾸며 반헌법적 폭거를 저지른 것이라는 배경분석까지, 특검이 나름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무려 70%에 달하는 내란청산 국민여망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2차 특검이 필요하다는 비판과 불만도 터져나온다. 내란특검은 6명의 특검보와 검사 60명, 특별수사관 100명, 파견공무원 100명 등 규모로 무려 2백명이 넘는 역대 최대규모의 인적자원을 투입해 6개월 동안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늑대무리를 잡으라고 했더니 족제비 몇 마리 잡고 ‘사냥’을 끝냈다는 혹평도 쏟아진다. “사초(史草)를 쓰는 심정으로” 특검수사를 하겠다는 당찬 각오를 밝혔던 조은석 특검이 사초, 즉 혼신을 다해 역사기록의 초본을 써낸 것이 아니라, 기대만 부풀렸다는 실망과 함께, 내란 좀비들을 매장해야 할 무덤을 맴돌며 풀을 다듬는데 그쳤다는 ‘사초(莎草) 작업’에 비유하여 힐난하기도 한다. 특검 안에서 태업과 방해 의혹마저 부른 일부 친윤 정치검사들 탓이라는 시각에서 “특검 검사들을 특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특검 수사의 허점은, 우선 윤석열을 둘러싼 내란의 모의와 기획자들을 정확히 규명해 징벌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상의 ‘V1이고 상왕’이었다는 김건희 연관과 대통령실 측근 참모와 장차관들의 역할이나 책임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오히려 면죄부를 주었다.
마찬가지 내란동조 혹은 처벌방해 의혹이 큰 조희대와 지귀연 법원에도 불기소라는 선물을 안겨 사법개혁의 동력을 약화시켰다.
내란에 가담한 국군의 조직과 기관별 방대한 준비와 수행상황, 국가안보에 치명적 위기를 초래할 대북 전쟁유도 공작의 전말까지 완벽히 규명하지 못했다.
국정원 등 정보기관과 검찰의 내란 참여와 불법적 실행 진상도 명확히 밝혀 처벌하지 못했다.
주모자들과 내통 혹은 부화뇌동하여 계엄해제를 훼방하고, 내란을 적극 선동한 국힘당의 앞잡이 세력에도, 본분을 망각한 종교인들의 내란선동과 위법적 언동에도 사실상 면책의 결말에 머물렀다.
반헌법 반민주적 내란 쿠데타세력을 철저히 색출해 단죄해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뿌리뽑힐 때까지 추적해 응징해야 한다는 추상같은 국민적 요구와 2차 3차 특검론이 들끓는 것도, 실제 보고 듣고 겪은 민족 수난의 역사적 경험과 우려 때문이며, 생존의 지혜요 민주 의지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럭저럭 덮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면, 언제든 재범, 재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가 입증해 주었다.
박정희 유신독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전두환의 정권 찬탈과 5.18 학살이 벌어졌다. 전두환 반란세력을 척결하지 못하고 선처하는 바람에 다시 12.3 쿠데타 악몽이 도졌고, 내란무리가 거리낌없이 설쳐댈 자신감의 기초가 되었다. 멀리는 매국 친일세력 청산이 무위에 그치면서 오늘의 수구 적폐세력이 발호하는 토양이 만들어졌다.
방대한 기득권 카르텔로 독버섯처럼 깊고 넓게 뿌리박은 세력을 박멸하는 일이 어찌 수월하겠는가. 저항과 반동은 예견된 일이다. ‘내란청산’을 “내란몰이”라고 비트는 무리들이 그걸 말해준다. 내란을 내란이라 말하지 않고, 법을 아는 자들이 위법 불법이라 지적하지 않는 현실은, 실패한 과거청산의 후유증이고 부산물임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류문명이 도전과 응전의 산물이라고 설파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의 말은 적확하다. 도전을 받고 이에 응전하면서 역사가 발전해왔다는 사실. 혹독한 외부환경과 싸우고 적응하면서 생존할 수 있었고, 생명의 위기를 겪으며 자위수단을 개발했고, 외침과 약탈에 시달린 끝에 방어와 무력증강의 대안을 강구했던 것이다.
우리 민족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진보하고 발전해왔다. 일제 수탈을 겪으며 민족자존과 독립을 갈망했고, 수많은 무고한 자들이 학살당하면서 이념전쟁의 잔혹성과 분단의 아픔을 절감했다. 독재권력의 교만과 폭압에 고통당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12.3 친위 쿠데타 망동은 우리 민주주의의 여전한 취약성을 일깨웠고, 합법적 내란이 가능한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냈다. 법원 검찰 법비들의 오만과 폐해, 사회 구석구석 또아리를 틀고있는 이기적 권력부패와 극우 분열 세력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이제 수면 위 곳곳에 떠올라 고개를 쳐든 저들을 일망타진 할 수만 있다만,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 잘 고치는’ 유익한 시행착오로 반전시킬 역사적 호기일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 일당의 내란은 우리에게 응전을 요구한 또다른 도전이다. 잘 대처하고 지혜롭게 극복하면 역사와 민주주의가 한걸음 더 발전할 도약의 기회인 것이다. 내란세력 발본색원과 확실한 청산- 종식이 중요하고 절실한 당면 과제로 다시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역설적이지만, 12.3 내란은 우리 민족에게 축복의 도전일 수 있다. 누란의 위기와 환란을 딛고 오늘까지 온 것처럼, 깨어 행동하는 민초들이 눈을 부릅뜨고 정의가 승리하는 그 날을 벼른다면-. < 김종천 편집인 >
국내외 동포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던 12·3 내란이 벌써 1년을 맞았다. 깨시민들의 응원봉 위력으로 친위쿠데타를 제압한 환희의 기억들은 생생한데, 마치 영화속 이야기처럼 박제되어 가는 착각이 들어 답답해진다. 내란척결의 준엄한 여망과 달리 적반하장으로 버티고 반격을 꾀하는 내란무리의 저항에 불안과 불만으로 잠 못이룬 날들이 많아서다. 이제 갓 시작된 주모자들의 재판은 언제 끝날지, 과연 중형처벌로 귀결될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많다. 내란일당이 아직도 “계엄이 왜 내란이냐 불법이 아니다”고 억지를 부리며 법정 안팎에서 선동을 계속하고, 재판에서 끝내 반전시키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계엄의 발동요건은 헌법(77조)에 명확히 규정돼 있다. 비상계엄·경비계엄 모두 전시나 사변 혹은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는 상황적 전제조건과, 군 병력을 동원해야만 사회의 안녕과 질서유지가 가능한 때로 필요조건을 한정하고 있다. 또한 계엄 발동시는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고, 국회가 해제결의를 하면 반드시 따르도록 명시하고 있다.
윤석열 내란일당은 12.3을 전후해 전쟁이나 소요상황이 아님에도 계엄을 선포했다. 전두환 이후 45년 만의 위헌적 불법폭거다. 국회에 통고하지도 않았고, 의사당 점거와 국회의원 체포를 시도하며 시설을 부수고 부상자를 냈다. 국회가 여야 결의로 즉각 해제를 요구한 이후에도 병력 철수를 미루며 2차 계엄을 시도하다가, ‘중과부적’으로 패색이 짙자 3시간 반이 지난 뒤에야 해제를 선포했다. 발령에서 해제까지 6시간이 불법으로 점철된 일장춘몽이었다.
나라 안팎에서 내란의 불법적인 실상을 현장영상으로 지켜보았다. 헌재는 불법조치였음을 명백히 하며 만장일치로 윤석열의 탄핵을 인용했다. 이후 수사에서 반헌법적 권력 오남용이었다는 사실과, 윤건희 일가비리를 뭉개고 권력연장을 노린 셀프쿠데타 였음이 밝혀졌다. 심지어 북한 자극을 반복한 위기일발의 전쟁망동도 드러났다. 반대그룹을 북한동조 세력이라며 “헌정질서를 짓밟는 국가기관 교란과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 세력”이라 매도하고 “국회가 범죄집단의 소굴이 됐다“는 궤변으로 합리화하려 했다.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자가 선관위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믿고 주장하는 인지부조화도 내란의 이유가 됐다.
하나같이 국가와 국민과 헌법을 무시한 불법투성이였다. 나라가 무너지든 말든, 전쟁 참화가 일든 말든, 눈엣가시 반대자들을 ‘수거’해 처치하고 자기들만의 권력과 이권을 누리며 기름지게 살겠다는 미몽이 아니라면 ‘대통령의 합법적 비상대권’운운 궁색한 궤변을 읊조릴 이유가 없다.
양파겁질 비리와 부패, 권력남용으로 나라를 망치고 국민 삶을 피폐하게 만든 중범일진대, 당장 엄벌에 처해 세상과 단절시키는 것이 마땅하련만, 재판은 하세월 질질 끌며 구속기한 만료(내년 1월18일)를 앞두고 있다. 수괴와 공범들이 또 다시 풀려나 개선 장군처럼 설치는 것은 아닌지, 다들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내란일당과 국힘당 등 그 비호세력이 불법내란이 아니라고 우기며 반전을 노리는 지연책도 문제지만, 국민 대다수는 법원이 내란범을 옹호하며 신속한 단죄를 가로막는다고 의심하고 있다. 윤석열에 의해 임명된 대법원장 조희대는 대선 직전 본인이 직접 나서 대통령 후보 이재명의 무죄사건을 전례없는 속도로 유죄취지 파기환송해 후보직을 박탈하려 했다. 그가 임명한 4명의 영장전담 판사들은 한덕수와 박성재 등 특검이 청구한 내란핵심들의 영장을 줄줄이 기각해 수사의 맥을 자르며 대놓고 막았다. 내란사건을 엉뚱하게 보건전담이던 지귀연 재판부에 보내 시간계산 구속취소 법왜곡으로 수괴석방의 충격을 주고, 법정중계를 본 국민들을 분노케 한 시간끌기 놀이방 잡범재판으로 전락시켰다. 국민들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믿으며 사법부를 존중했다. 그러나 내란사태로 그 허상이 낱낱이 드러나며 신뢰도 급락에 손가락질과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재판이 진실되고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함은 인권보호와 법치실현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법 정의 구현의지가 없는 사법부는 불의와 부정과 부패가 득실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정글사회를 초래할 뿐이다. 성경을 보면 재판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는 것이라 했고 재판장은 거룩한 사명자라고 지칭했다. 솔로몬의 재판 예화도 진실과 사회정의 추구가 재판의 본령임 을 강조해준다.
공정재판의 전설적 사례 가운데 페르시아 제국의 부패판사 시삼네스 이야기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화로 회자된다. 당시 캄비세스 왕은 뇌물판결이 밝혀지자 시삼네스를 산채로 살가죽을 벗겨 죽이라고 했다. 벗겨낸 살가죽으로 의자를 만들고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를 후임판사로 임명해 그 의자에 앉아서 항상 부친을 잊지않고 고민하며 판결하라고 엄명했다는 것이다. 잔혹한 만큼 불편부당한 재판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강조해준다.
국가와 민주주의를 타격한 헌정파괴 내란범 재판이 난장판이 되고 판결마저 엉터리일 경우, 어떤 혼란을 부를지, 사명감 없는 무개념 판사 몇 명의 손에 국가정의가 뒤틀리는 것을 방관해선 안된다. < 김종천 편집인 >
요즘 모임에서 흔히 듣는 말 가운데 하나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하지말라”는 것이다. 간극이 커서 얼굴 붉히기 일쑤인데 공연히 ‘지뢰밭’에 들어가지 말자는 것이다. 종교의 정치화도 문제이지만, 심화된 정치 양극화 시대의 씁쓸한 사회상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의도적인 회피’(Intentional Evasion)이고 ‘작위적 무관심’(Artificial Indifference)인데, 본질은 민주적 대화법의 부재 탓이다. 모처럼 만난 친우 간에 감정싸움과 의가 상하는 일을 미연에 막겠다는 뜻이긴 하나, 무언가 목에 걸린 듯 답답하고 개운치 않은 뒷맛은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무관심하려 해도, 캐나다의 이민정책과 트럼프의 좌충우돌 논란은 모두의 화제이고 관심사다. 지난 1년 고국의 정변과 윤건희 망동에 귀막고 살았다면 산속 수도승과 다름없다.
정치이야기여서 곤란하다면, 고국의 안위와 흥망, 그리고 체통이 걸린 민족적 문제부터, 일상에서 매일 맞닥뜨리는 정치사회 현안 이슈들 가운데 우리네 삶의 영역에 직결되지 않는 것이 과연 몇이나 되나?. 유학과 교육, 일자리, 먹거리, 복지, 금융, 의료, 주거, 종교, 문화, 여행…. 더구나 세금 꼬박꼬박 내고, 연금 받고, 투표권도 가진 주권자들 아닌가.
인간은 원래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공동체의 다양한 정치적 작동원리의 영향 하에 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다. 당연히, 또한 매일 직면하는 문제들이 정치적-사회적 연계 속에 이뤄져, 나와 가족의 삶이 영위되고 있음이 명백할 진대, 억지로 모른 척, 무관심한 척 제쳐두고 “좋은 게 좋아”라며 소소한 신변잡담으로 서로 비위 맞추며 시간을 넘기자는 것이니, 스스로 우민화(愚民化) 하는 일이요, 어쩌면 비겁하고 따져보면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참여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징벌 중의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깨우친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나, “정치에 무관심한 자는 자기 일에만 신경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게 아니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멸칭한 페리클레스와 같은 고대 선각자들의 가르침은 현대사회라고 다를 바가 없다.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것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Edmund Burke) 혹은 “나쁜 관료는 투표하지 않는 좋은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다.”(George Jean Nathan)는 교훈으로 경종을 울리고 있어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쓸모없는 사람’을 ‘아무 것도 하지않는 선한 사람’과 ‘투표하지 않는 좋은 시민’으로 순화적 대비법 표현을 써서 강조한 사실이다.
그처럼 동서고금 정치가 우리 삶에서 떨쳐버릴 수 없는 불변·불금(不禁)의 명제라면, 정치이야기를 많이 해야 도움이 되겠는가, 위선적인 공론금지가 합당한가. 차라리 활발한 토론의 광장에 맡기되, 건전한 대화와 설득의 논전을 통해 삶에 유익을 줄 정치로 만들어 가는 게 현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어려서부터 민주시민 교육에 정성을 기울여 좌우불문 건전한 토론문화가 정착된 정치선진국 독일의 사례는 그래서 본받을 만한 타산지석이다.
정치이야기를 쉬쉬하면 정치는 어둠속에 오염되고 부패하고 퇴보한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정치를 광장에 펼쳐야 한다, 정치인의 자격을 엄격히 묻고, 논리도 실력도 품격도 가려 함량미달은 매섭게 심판해 퇴출하는 집단지성의 저력을 키워야 한다. 냉정한 판단과 분별의 힘, 행동하는 민주역량을 발휘해야 정치가 투명하게 발전하고 기능한다.
정치는 말로 한다. 정치판은 말의 유희와 성찬으로 유권자를 미혹한다. 첨예한 이슈 마다 자화자찬, 아전인수, 책임전가, 물타기와 적반하장의 궤변, 심지어 마타도어까지, 모든 화법과 술수를 동원하는 저질 정치인의 자극적 언사에 넋을 뺏기면 판단력이 마비되고 마약처럼 중독된다. 입맛에 맞는 컨텐츠만을 제공해 편견을 고착시키는 유튜브 알고리즘과 똑같은 구조다.
진정성과 논리를 찬찬히 따지고 분별해, 시시비비와 정의-불의,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지 못하면 언제까지고 그들의 정치모략에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
평온 중의 계엄이 합법인지, 매국적 뉴라이트 문제가 뭔지, 정치검찰과 사법개혁 등의 시비곡직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솔로몬의 지혜를 빌릴 것도 없다. ‘이견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라는 건전한 민주적 토론문화라면 쉽게 결론 날 쟁점들이다.
유권자들이 지혜롭게 분별했다면 윤석열류가 등장했을 리 없다. 나라를 이권과 치부의 수단으로 망가뜨린 패악질이 양파 껍질처럼 드러나는데도 회개없는 궤변과 거짓의 합리화에 발버둥치는 것은, 그렇거나 말거나 ‘윤어게인’을 외치는 무지막지에 솔깃해서다.
더우기 그런 인물을 지도자로 만든 원죄를 뭉개면서 토해내는 야당의 파렴치한 언설에 2할이 넘는 국민이 포획된 현실 또한 무분별 편집증의 산물이요 시대의 수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질서를 뒤흔들고 미국을 혼란에 빠트린 트럼프를 방관했다가 ‘No King’을 외치는 미국인들, 그중에도 한인동포를 비롯한 이민자들의 고통에서 우리는 플라톤과 버크의 경고를 되새긴다. 누구를 위해 어떤 언동을 하는지, 정치지도자 분별과 선택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광장에서 정치를 활발히 논하자. 민주주의와 정치문화 발전, 함께 어울려 잘사는 상생과 포용의 공동선 구현을 위해서도 정치를 더 많이, 생산적으로 토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