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한마당]   호르무즈 파병론, 실망스럽고 불안하며 어리석은 일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고히 구축하겠다는 국민주권정부가

 국제적 · 외교적 파장과 국가의 안위, 

 국민적 자존심과 명분을 걸만한 대상이라고 판단하는가"

 

시민사회단체들의 주한 미국 대사관 앞 호르무즈 파병반대 시위(연합]

 

한국 이재명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못이겨 전쟁중인 호르무스 해협에 국군파병을 적극 검토해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불안하고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고히 구축하겠다는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아닌가.

이례적으로 우방인 이스라엘의 만행을 해적행위라고 비난하는 결기를 보여 선진외교라는 평가도 받았던 이재명 정부가 설마 그런 위험한 결정을 내리겠느냐는 의구심이 자꾸만 커져 불신감으로 변하는 것은, 청와대와 국방부의 모호한 태도 때문이다. 

보도가 사실일 개연성이 뚜렷해지고 있어서다.

 

호르무즈 파병의 예민함과 위험성을 모를 리 없는 이재명 정부가 긍정적 검토로 돌아선 데는 ‘동맹협력’을 강압하는 미국측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얼마나 집요하고 전방위적이며 위협적인지를 암시한다.  최근의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합 군사훈련을 트럼프 대통령이 축소-중단 시키자 당황한 데서도 압박강도의 일단이 감지된다. 역대 민주정부가 남북대화를 위해 중단하자고 제안하곤 했던 훈련이었는 데도 말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국가이익과 국민생명을 지켜야할 책임과 의무(責務)가 지상명제이며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다. 거센 외압에 시달려 고육책을 찾는 고충은 이해못할 바 아니나, 미국의 압력이 국민과 국가에 대한 책무에 우선할 수는 없다.

코앞에 닥친 정권의 득실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국가의 안위가 최우선임을 명심하여, 결코 시류에 영합하거나 줏대없는 결정으로 후회나 후유증을 자초하지 않을 거시적이고 강단있는 리더십과 대처가 절실한 시점이다.

벌써 시민사회가 파병 강력 반대를 들고나오는 것은 국민과 국가의 자존과 안위에 심각한 불안요소라고 판단한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왜 호르무즈 파병이 실망스럽고 불안하며 현명하지 못한 실책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지, 파병을 반대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국군 파병의 득실을 따져보면 그 불합리와 비현실적 근거가 명확해진다.

한국정부가 파병 검토의 명분으로 거론하는 것은 통상 · 안보 · 대북현안 등의 한미공조와 한반도 대비태세, 핵심적 원유 공급루트 확보에 기여 등으로, 혈맹인 미국의 요구에 불응할 경우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파병으로 이런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고 국익으로 돌아올 것인가.

 

먼저, 미국 트럼프의 압박에 한미공조 악영향 등 외교적 손실을 피하기 위해 국군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설득논리다.  쉽게 풀어 말하면 트럼프 강압에 순종해 전쟁에 동참하면 특별동맹 예우를 받게되어 통상압력이 누그러지고, 전작권 쉽게 넘겨주며, 우라늄 농축이나 핵잠 건조 순탄해지고, 북미대화에 한국을 주역으로 참여시켜 주지 않겠느냐는 등의 판단이고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일방적이고 순진한 희망이고 기대일 뿐이다. 전혀 언질도 보장도 없는 추정이고 트럼프를 과신(過信) 내지는 과대평가한 맹종외교의 실책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트럼프는 개별 현안에 철저한 자국위주 시나리오와 득실에 따라 대응한다. 설령 밀약을 통해 트럼프가 약속했다손 치더라도, 확실한 이행을 확신, 담보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에, 과연 그런 위태로운 거래에 국제적·외교적 파장과 국가의 안위, 국민적 자존심과 명분을 걸만한 대상이냐는 것이 외교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협박에 굴복해 군대를 보내면 좌충우돌 트럼프가 대만족한 나머지 잠시 상찬(賞讚)의 말을 떠벌일지는 모른다. 허나 그는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근성으로 끝없이 깔아뭉개며 무시하고 벗겨먹는 조폭적 스타일이 그간의 행적에서 증명된 바 있다.

‘독불광인’(獨不狂人)으로 지탄받는 트럼프의 잠시 쾌감 외에 거시적인 외교적 이득은 희망고문으로 남을 뿐, 오히려 장기적으로 엄청난 부담과 후유증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지닌다.

한-미 간에 잠시 허니문은 있을지 모르나, 한국은 아무리 비전투 영역일지라도 병력과 함정파견을 하게 되면 이란이 규정하는 전쟁 당사자이고 적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참전의 여파가 일시적인 득(得)보다 국내외-국제적 악영향과 불이익과 위험스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명약관화, 허다하다.

명백한 침략전쟁으로 약소국을 두들겨 팼다가 궁지에 빠진 미국과 트럼프를 위해 방패막이 뒷처리에 한국이 소모되고 말려들어 국군 젊은 장병들이 자칫 개죽음 당할 이유를 무엇으로 변명할 수 있겠는가.

 

왜 서방의 미국 동맹국들은 트럼프의 협박과 요청을 모두 묵살하는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캐나다, 호주 등 유럽과 서방 각국은 한국보다 미국이 더 중시하는 동맹들이다. 그들도 득실을 따져 전혀 득이 되지 않기에 외면하고 소극적인 것이다.

역시 미국이 한국보다 중시하는 동맹인 일본은 민망할 정도로 미국을 적극 추종하는 나라다. 평화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격무기까지 수출하겠다고 팔을 걷어부치면서도,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요구에 헌법적 제약을 들먹이며 단호히 거절했다.

우리보다 한 단계 위 동맹국들이 대부분 안면몰수하는 형국인데, 어찌 한국만 마치 최고의 동맹노릇을 혼자 다하듯이 짝사랑이고 새가슴인가 말이다. 여전히 탈피하지 못하는 한국외교의 대미종속 악폐요, 후진적 사대외교 철학에서 비롯된 숭미(崇美)와 종미(從美)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트럼프가 연속 한국만을 겨냥해 때리는 것은 그 ‘약한 가슴’을 간파한 술책이라고 봐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압력에 굴복한다는 것은 ‘굴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 주권국가 한국이 미국에 굴종해 불의한 전쟁에 뛰어들어야 하는가. 정권에 말못할 약점이 있고 트럼프에게 책잡힐 만한 구린데가 있다거나, 전작권 조차 맡겨놓은 종속국이니 원래 그런 수준의 나라라는 국제사회의 냉소와 멸시를 자초하고 국민적 자존심이 망가질 것을 감내할 작정이라면 혹시 모른다.

 

트럼프가 한국을 진정한 동맹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호구로 볼 뿐인가도 생각해 보자.

조변석개(朝變夕改)의 인물인 트럼트의 그간 언동을 보면, 자기가 필요할 때, 큰 득을 봤을 때만 진정한 동맹이라고 떠벌일 뿐, 전혀 참 동맹이나 전통 혈맹으로 생각하고 예우한다는 정황은 찾기가 힘들다.

FTA 일방 파기하고 관세 공갈로 3500억 달러를 뜯어냈다. 공장 지어주러 간 한국인 300명을 범죄자 취급해 감금했다. 반도체 미국공장 지으라 압박이 끈질기다. 마가(MAGA)를 이용해 선거부정과 반정부를 외치는 극우 뒷배노릇을 계속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상 처음 무궁화 대훈장을 주고 신라금관 선물을 안기자 파안대소하며 가장 친한 척했고, 한국의 거액투자에 기뻐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관세전쟁에, 주한미군 방위비 압박, 남북대화, 어느 것 하나 ‘혈맹’의 예우를 보인 적이 없다. 오히려 이재명에 실망감을 표하며 “김정은이 가장 좋아하는 지도자”라는 이율배반의 언급을 반복하고 있지 않는가.

다시 말하지만 그는 약자와 약소국을 짓밟아 약탈하고 덤터기 씌울 대상으로 보는 냉혹한 조폭 권력적 사업가다. 이란전쟁도 그렇지만, 최근의 베네수엘라, 그리고 캐나다와 관계를 보라.  국제 외교무대에서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 끝에 쇠락한 영국의 블레어 정권도 타산지석이다.

이재명 정권이 ‘트럼프의 푸들’이 되어 파병하면 미국이 특별동맹으로 예우하며 한미현안을 특별히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는 한마디로 헛된 꿈에 그칠 것이라는 이야기다. 트럼프는 절대 그럴 위인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종속국 이미지만 강화할 뿐더러, 국내 분란은 물론 국민적 자존심이 엉망진창이 되어 정권 반감만 커질 악재임에 틀림없다.

 

전혀 명분도 없는 일이다.

이란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제법을 무시한 주권국 침략과 무차별 폭격, 비인도적 살상으로 발발했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래서 국제사회가 비난하고 서방동맹도 협조를 꺼린다. 그런데 헌법에도 명백히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대한민국이, 더구나 셀프 쿠데타를 제압하고 빛의 혁명으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가 반헌법적 침략전쟁을 거들고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의 위헌적 모순이며 낯뜨거운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분별없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끼어드는 바람에 러시아를 적으로 만들어 기업과 경제, 국제외교에, 특히 남북관계에 얼마나 큰 후유증이 지속되는지를 모를 바도 아니다.

한국이 이란을 적대하고 중동분쟁에 개입해 한쪽 편을 들 때, 원유수급을 비롯한 경제-무역파장과 국제적 곤경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정권 지지기반에 이상기류가 경종을 발하고 있는데, 명분도 실리도 없는 파병문제로 갈라지고 대립할 국내정치와 민심의 분열을 자초하며 기름 붓고 부채질하겠다는 것인지, 무엇보다 청년층의 이반이 심각한 상황에, 젊은 장병들을 사지로 내몰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을 어찌 그리 쉽게 ‘긍정 검토’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우리가 국민주권정부에 바라는 것은, 설령 현 정권내에 다 오를 수 없는 높은 산을 향한 작은 발걸음에 불과할 지라도, ‘한국 패싱’을 걱정하는 대미 굴종과 숭미일변도 눈치외교 구태에서 탈피할 용기있는 첫걸음을 내딛으라는 것이다.

대국 의존과 예속적인 사대의식을 제발 떨쳐버리고, 스스로 국제사회 중심적, 다자적인 위상을 높여 ‘한국 퍼스트’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전력투구하라는 국민적 여망이고 독려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반만년 배달겨레의 홍익인간’ 민족혼을 되새겨 온세상에 웅비하고 펼쳐나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재명 정부는 민족 자존과 역동적인 국민저력을 바탕으로, 근래 언필칭 자랑하고 자부하는 국력과 국민의 수준에 걸맞게 대범한 자존 자주외교에 진력해 나갈 시대적 사명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습과 구태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대한민국이 진정한 자주독립국이요 평화를 사랑하는 선진 문화대국임을 만방에 각인시키도록 노심초사, 매진해 나가기를 기대하며 거듭 당부하고자 한다. 

정부가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한다면, 국내외 동포들은 든든한 자부심과 함께 언제든 뜨거운 응원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잊지말기 바란다.                         < 편집인 >

 

 

[시국 논단- 한마당 칼럼] 

 

"배부른 민주진보의 고질병, 민주당 내분이 위험하다"

 

 

12.3 내란청산이 미결상태로 체한 가슴처럼 답답한 가운데 6.3 선거를 전후한 민주당내 자중지란이 선거 후, 그리고 당권 전초전이 격화하면서 위험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정당이 비판도 잡음도 없이 고요하고 일사불란하길 기대하는 건 아니다. 당권잡기 권력투쟁도 당연히 열풍에 휩싸일 수 있다.

그러나 정책과 민생, 개혁 논쟁이 아닌 감정과 모욕의 막가파식 쟁투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더구나 외부를 향한 것이 아닌 내부, 집안 식구끼리 반대세력을 죽여 매장해야 할 적군처럼 언동의 총검을 마구 휘두르는 것은, 금도를 넘어선 파시스트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결국은 제 발등 찍는 짓이고 모두가 깊은 내상을 입을 게 뻔한데도, 첨예한 당내 분란에 대리격인 안팎의 갈라치기 세력들까지 끼어들어 준동하면서 상태가 중증으로 치닫고 있다. “문조털래유”니 “한강새똥돼주길” 운운, 결코 진영내에서는 입에 담지 말았어야 할 천박한 모멸과 배제의 조어까지 만들어 너도나도 부추기며 막무가내 내부총질로 서로의 상처를 들쑤시는 모양새다.

 

급기야 당도 대통령도 지지율이 폭락하고 내란당에도 역전됐다는 소식이 지지자들에게 충격과 실망을 더해준다.

 

그런데 갈수록 태산이다. 우려와 질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리전과 음모설, 공작설까지 나돌며 진영내전으로 확산될 조짐이라는 것이다.

 

소위 신-구와 주류-비주류의 권력 다툼, 중도보수와 개혁그룹의 주도권 싸움, 민주본류와 영입통합파의 갈등 등이 일거에 분출하며 이합집산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특이한 것은 이른바 ‘문파’ 비판과 배제 움직임이 이제는 유시민을 고리로 노무현까지 제물로 삼으려는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분석에, 검찰과 사법카르텔에 포획된 개혁저항 세력의 은밀한 뒷배 암약이라는 지적도 들린다.

단순히 당권 쟁탈의 힘겨루기를 넘어선 권력과 개혁의 승패를 건 대결이라는 시각까지 있다.

 

내란 시국과 돌아온 권력 앞에 너도나도 집결했던 자들이 차츰 이기적 욕망과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승자의 저주요 권력에 취한 진보의 분열폭망 고질병이다.

 

민주와 진보의 오래고 소중한 인적자산들을 하루 아침에 경원하고 척결대상으로 짓밟는 자칭 민주진보 세력이 정상인가?

자당 출신 대통령들과 민주인사, 진보의 역군들을 모욕 배척하는 정당이 민주당 사람들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풍찬노숙 동고동락하던 동지들을 배부르자 쫓아내고 외면하는 자들이니, 제정신도 도리도 아니다.

이념적·화학적 결집과 정체성을 경시한 정략적 통합과 확장의 부작용은 아니겠는가.

 

모처럼 다수여당으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의 분열과 망조가 가시화, 가속화 하는 것 같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피땀과 눈물도 자부도, 고유의 색깔도 비전도 잃고, 내란의 추억을 뒤로한 채 그저 권력의 진흙탕을 헤매는 중이다.

 

내분격화에 부화뇌동 세력까지 이전투구의 뒤 끝에, 금세 다가 올 총선과 대선, 빼앗길 정권의 말로도 예고하고 있어 민주 시민들은 화가 치밀 뿐이다.

민주진보 세력은 다시 횃불을 들고 삭풍을 향해 나아가야 하나?.               < 편집인 >

[시국 논단]

선관위가 기름을 부으며 매국 적폐들의 ‘불길한’ 불길이 확산의 조짐

독재망령 젖어 민주주의 파괴하고 자주평화 훼방의 노림수 암적존재

 

민주진보 내홍과 분열에 빠져 자중지란의 내부총질에 정신 팔 때 인지

무뎌진 칼 갈아 발본쇄신 사회대개혁 명운 걸어야, 전망도 시간도 없다

 

 

민주주의의 축제인 선거판을 반민주, 반헌법 세력의 부활축제로 만든 6.3 선거 오염의 ‘원흉’들 가운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면 과녁으로 등극했다. 축제를 원만하게 운영해 깔끔히 마무리해야 할 본분을 망각하고 되레 재를 뿌려 민주주의를 위협한 때문이다.

 

사상 유례없는 투표지 부족 사태는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국민 참정권을 침해하여 반헌법적 행위를 한 것이니, 탄핵에 준하는 징벌은 불가피 하다. 의도적인 선거 망치기 공작은 아니었는지, 내란세력과의 연계설 등 불거진 의혹과 진상을 명명백백히 규명해 책임을 묻고, 엄정한 시정조치를 단행해 절대 재발이 없게 단도리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선거가 불씨를 살리고, 선관위가 기름을 부으며 매국 적폐들의 ‘불길한’ 불길이 확산의 조짐을 보이는 점이다. 6.3 선거를 통해 되살아난 수구 적폐 극우 좀비들이, 때를 놓칠세라 기세를 올리고 있다. 예상하고 우려한 대로, 아니 예상보다 더 빨리 더 거세게 저들의 난잡과 난동이 시작된 감이 든다. 젊은이들의 참정권 침해 규탄시위를 기화로 선거부정 재선거를 내란당이 부추기고, 총리까지 지낸 넋빠진 자, 역사팔이 장똘에 미국 극우잡배도 끼어들어 설치는 난장판이 가관이다.

 

이 또한 내란과 적폐무리를 철저히 뿌리뽑지 못한 실패의 후유증이고 이른바 ‘집단지성’에 기댄 방심의 업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바로 대통령과 민주진영의 지지율 급락 소식이 말해준다.

 

선거를 빌미로 ‘윤 어게인’과 사대극우(事大極右)를 선전 선동하는 저들의 노림수는 뻔하다. 독재망령에 젖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자주 평화를 훼방하는 것 외에 무슨 선의가 있는가. 민주주의의 적이고, 공동선의 암적 존재이며 평화를 깨는 사회악일 뿐이라는 말이 과한가.

 

우리 공동체가 지켜야 할 민주 정의 평화의 가치와 비전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6.3 선거와 수구의 준동이 웅변해주고 있다. 저들의 기세를 방치 방관했다가 뒤통수 맞고 하루아침에 역사가 뒷걸음 쳐 다시 암흑천지가 될지도 모른다. 특검에 나온 내란수괴 윤석열이 어찌 더 기고만장 해졌겠는가.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피와 눈물을 먹고 자란다!”. 역사의 진보는 힘드나 퇴행은 순식간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정의와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럭저럭 정의가 바로 서나?, 유야무야 평화가 오던가?. 방심했다 뒤집히고 어이없이 패퇴 낙담하는 어리석음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위기감이 업습할 때, 늦었다고 조바심 날 때가 적기다. 6.3 선거가 내란세력에 면죄부를 줬다고 패배감을 퍼뜨리지 말라, 오히려 확실히 척결하라는 준엄한 민의의 경고다. 조작 검찰부터 내란 법원까지 신속히 도려내라! 내란세력 척결과 극우박멸에 이번에야 말로 끝장을 보지 않으면 진짜 되치기 당할 위기가 온다.

 

지금 내홍과 분열에 빠져 자중지란의 내부총질에 정신을 팔 때가 아니다. 민주 진보는 지금이 바로 똘똘뭉쳐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 권투중래(捲土重來)를 각오할 때다.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고, 발본쇄신과 사회대개혁에 명운을 걸지 않으면 전망이 없다. 시간도 없다. 2년 뒤 총선, 4년 뒤 대선이다.

 

개혁과 청산에 피로니 역풍이 두려운가, 차라리 그만 두는 게 낫다. 허울좋은 통합, 적당한 미봉과 타협으로 선한 척, 자기만족의 희망고문은 자멸의 길일 뿐이다! 그럴려면 아예 포기하고 일찌감치 백기를 들어 굴종을 선언하라.

그게 아니라면, 진정 급박하고 절실하다면, 가죽을 벗기고 뼈를 깎는 결단으로 무뎌진 칼을 갈아 전광석화의 돌진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실로 마지막 물실호기(勿失好機)임을 명심하라!.                                                                                         

[정치 시론] 6.3 선거, 왜 떨떠름한 결말인가

● 칼럼 2026. 6. 5. 23:4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정치 시론 - 한마당]        6.3 선거, 왜 떨떠름한 결말인가

 

이기고도 진 것 같은 선거, 그 결말의 이유는...

 

내란청산 실패와, 소위 '보수'를 얕본 자만과 무대책
진영내 분란-이전투구, 무뇌 언론의 나팔수 역할 탓

 

 

6.3 선거는 민주 진보세력이 이기고도 웃지 못하고 있다. 뼈아프다.

서울 탈환은 물거품이 됐고, 윤 어게인을 외친 내란적폐들이 줄줄이 소생했다.

뿌리깊고 사악한 수구보수를 얕보며 자만에 빠진 고질병 재발의 업보다.

선거 막바지부터 조짐이 보였지만, 더욱 기고만장 설쳐댈 적폐무리의 난동과 난잡을 어떻게 지켜볼 것인가, 앞으로가 참으로 심란, 착잡, 걱정이다.

 

민주 진보진영의 이번 선거가 이기고도 진 빛바랜 승리가 된 이유는, 저마다 제각각 지적하겠지만 나는 요약해서 크게 4가지를 꼽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내란청산 실패, ▲보수를 얕본 자만과 무대책, ▲진영내 분란과 이전투구, 그리고 ▲언론의 기계적 공정과 경마보도 등 4가지다.

 

 

먼저, 나는 내란청산의 지지부진이 국민정신과 선거판을 혼란시킨 가장 큰 원흉이라고 본다.

좌절과 미봉은 악순환을 부른다는 역사의 교훈은 이번에도 입증됐다.

위세만 요란하다 용두사미로 끝난 특검들은 내란세력을 발본 단죄하지 못해 종범과 동조자들 선전 선동자들, 심지어 내란중요임무 종사자들이 다시 고개 쳐들고 활개치는 걸 막지 못했다. 내란 편승세력이라 할 검찰 카르텔 박멸이나 처벌도 미봉에 그쳤고, 특히나 사법부 탄핵도, 법원개혁도 변죽만 울리는 바람에 내란범들 징벌 또한 미흡해 ‘국사범’ 내란에 대한 인식을 희석시키고 말았다. 민주당은 내란세력 청산과 심판선거라고 주장했지만, 중도와 보수적 유권자들은 내란 인식의 희박 내지는 부재상태로 “‘이재명 독주’ 견제”라는 내란세력의 물타기 전략에 그루밍 휩쓸려갔다. 적어도 대표적인 추경호나 이진숙 김태규, 김현태 같은 자, 조희대와 지귀연, 심우정 같은 인물을 확실하게 단죄 처벌했으면…, 그에 앞서 박근혜나 이명박 전두환 같은 자들에게 중벌을 면해준 특혜만이라도 없었다면, 선거판이 그처럼 민주를 위협하는 반민주와 반헌법, 부정·부패범들까지 설치는 혼돈에 빠졌겠는가!.

이제라도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헌정을 유린해 역사를 퇴행시킨 악행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해 뿌리를 뽑는 발본색원, 경중을 불문한 철처한 단죄로 ‘삼족을 멸한’ 징벌에 맞먹을 정도의 “그야말로 패가망신, 다시는 재발이 없게 만들어야” 사회정의도, 민족 정기도, 역사정의도 바로 세울 수 있음을 되새김 입증해 주었다고 본다.

 

 

보수는 만만치 않다. 그들은 정치모략과 술수공작에 능한 세력이다. 얕보다 큰 코 다친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일제 부역부터 해방이후 70여년을 지배세력으로 뿌리박은 독버섯의 역사와 저력을 간과해선 안된다. 지지율 70%를 웃돈 문재인 직후 이재명은 보수를 참칭한 윤석열에 0.73%차로 패했다. 지난 대선에선 내란과 탄핵 정국임에도 내란범을 옹호한 김문수가 무려 41.15%나 득표했고, 이재명은 진보후보로는 역대 최고치인 49.42%로 당선됐다 하나, 김문수와 이준석(8.34%)을 합한 보수전체(49.49%p)에는 미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소위 보수가 지닌 넓고 깊은 저변과 영향력의 증거들이다.

거기에 윤석열이 웅변해 주었듯이 이른바 보수는 0.73%에 분루한 국민들, 정치적 반대세력과 통합 등은 무시하고 폭주하는 독재 후예들임이 박근혜 이병박 등을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명박이 종편을 만들어 언론계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작업을 시작한 것, 윤석열이 사회정의를 수호해야 할 국가기관 검찰을 사병조직으로 유린 악용한 일, 뉴라이트들을 민족 정체성과 역사관련 단체에 대거 투입해 국가의 혼과 맥을 끊으려 한 것 등등 그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과 사익에 집착한다. 이승만 학당이니 리박스쿨 등으로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들을 교육, 세뇌하고 수구선전 선동으로 물들인 성과가 20~30대의 극우화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벨트가 수구의 성채가 되어 보수에 몰표를 주는 것이나, 오세훈 측이 마타도어 댓글부대로, 박완수가 공무원까지 동원해 AI딥페이크로 상대후보를 폄훼했다는 사실, 한동훈의 떳다방식 선거운동과 위장전입, 유사사무소 운영 의혹 등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들은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덮고 뭉개기 악습을 잘 알고, 악용하는 것이다.

 

 

민주-혁신당의 합당논란에서 불거진 당내 분란을 출발점으로 일부 영혼없는 진보 가면을 쓴 자들의 당권선점 노림수가 이전투구 양상으로 번지면서 이번 선거에서 민주 진보세력의 분열과 혼선을 초래한 사실 또한 수구보수에 어부지리를 안겼다고 본다. 보수는 이권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헛말이 아닌 것이다.

전장에서 아군끼리 다투고 아군 뒤에서 총질을 해대는데 적을 무찔러 이긴다면 기적이나 적의 자폭 외에 다른 설명이 가능한가. 내란 뒤끝인데다 이재명 정권 인기로 압승할 거라는 여론조사와 추정 자만에 배가 부른 나머지, 눈 앞 선거의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팔려 당권경쟁의 전초전으로 활용하려던 세력이 판을 흐렸다. 그들은 수구적 언론과 일부 유튜버들의 부채질을 즐기며 당내 경선 과정에서, 또한 선거국면에서 사사건건 아군에 시비를 걸었다. 총리까지 부회뇌동하여 당권도전을 공식화하며 선거전선을 흐트렸다.

전북지사 선거에서 김관영의 최고위 결정 불복 무소속 출마는 당 분열상 노출과 당력을 엉뚱한 곳에 허비케 한 대표적 사례로, 평택을 지역은 진보의 분열과 자중지란, 적전 자해로 적군에 승리를 헌납한 표본사례로 지적되는 근거다.

“선거에서 왜 지느냐”고 일갈한 이해찬은 진실 성실과 ‘절실’을 승리의 요소로 든 바 있다. 민주 진보진영이 갈라져 서로 다투며 진실 성실과 절실성 없이 싸운 선거, 오로지 ‘내란당’의 패착과 이재명 인기에만 기대 이만한 성과를 올렸으니, 그나마 하늘이 국운을 도왔거나, 깨어있는 시민들 덕이 아니었을까.

당권 싸움이 본격화하면 내분 갈등세력이 선거결과를 덮어씌우며 더욱 발호할 터여서, 그리고 그후 봉합될 분열의 씨가 진보의 하나됨을 막고 차기정권 창출에도 걸림돌로 남을 것이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투철한 분석과 복기, 정밀한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들, 총선과 대선은 참패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흔히 진보적이라는 신문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언론은 ‘균형잡힌 운동장론’ 곧 공정보도를 빌미로, 선거판에 등장한 헌정 파괴 법치무시의 반 민주주의적이고 반 역사적인 수구 적폐들의 기를 살려주고 합리화 시킨 꼴이 됐다. 내란청산과 내란 동조세력 심판론을 희석시켰고, 내란 물타기를 도와 “내란이 뭐가 문제냐”는 윤 어게인 논리를 대변하고 일반화하는 데 일등공신들이 되었다. 그 결과 내란범들은 물론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도 명예회복을 시켜야 한다고 뻔뻔한 주장을 내뱉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면서 민주진보 진영의 분열과 적전 분열상은 열심히 보도해 갈등을 부추기고 선거전략과 민주시민들 판단에 혼선을 주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언론은 단순한 현장 중계와 당사자들의 나팔수 역할이 본령이 아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파사현정과 정론직필로 독자와 시청자에게 바르고 정확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해야 참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뉴스타파 등 일부를 제외하고 후보자들의 자질이나 정책, 공약 등을 따져 유권자에게 준엄한 한 표를 행사하도록 판단자료를 제공한 언론은 눈을 씻고 찾아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기계적인 공정론의 경마식 보도와 ‘선택적인 균형’ 포장으로 눈과 귀를 흐리게 하고 내란세력을 핍박받는 정치인들로 탈바꿈시켰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부패범과 전과자들에게 표를 주게 만들었고, 내란 연루 혹은 동조 옹호자들 다수가 당당히 국회에 입성하는데 일조했다. 전력으로 보아 깜도 안되는 자가 당권이니 대권을 바라보겠다는 과욕에 부풀도록 ‘펌프질’도 마다하지 읺았다.

이제 선거는 끝났지만, 양심과 사명감을 가진 언론이라면, 자신의 기사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돌아봐야 한다. 적어도 자기성찰의 매서운 분석과 비판으로 참회해야 한다. 민주주의 축제였어야 할 이번 선거에서 왜 반 민주주의적, 반 헌법적인 부적격 후보들이 부상했는지, 그들이 어찌 감히 민주주의의 상징이며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리고 부정한 속임수와 불법적 수단으로 귀중한 한표 한표를 가로 챈 자들은 반드시 법적처벌을 받도록, 당선이 무효화되어 민주주의를 더 이상 오염시키지 않도록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위에 언급한 것들 외에도 많은 승패의 요인이 있다고 보지만, 그 중에도 선거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대한 시대적, 정치적 영향요소라고 생각되어 4가지를 열거하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그에 앞서 무엇보다 중시되어야 할 것은, 역시 시대를 읽고, 나라와 민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안목과 비전을 지닌 유권자 시민들의 엄정한 분별력과 적부 판단력, 그리고 현명한 선택이 민주 선거에 있어 최고의 승리 요소요 덕목이라고 믿으며 그래야 한다고 강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