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6월은 온타리오주 노인의 달입니다"

● 칼럼 2024. 6. 9. 03:47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기고]  6월은 온타리오주 노인의 달입니다

 

조성준 온타리오주 노인복지장관

 

온타리오주 성장의 밑거름이 된 노년 인구의 업적을 기념하고 그들이 우리 삶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되새겨 보기 위해 1984년 6월 제정된 ‘온주 노인의 달’이 올해로써 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수많은 노인의 크나큰 기여가 있었기에 온주가 현재와 같이 성장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온주의 시니어들은 인구 집단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그룹이 됐습니다. 65세 이상 성인의 수는 2021년 200만 명에서 2046년에는 440만 명까지 가파르게 증가할 예정입니다.

올해 노인의 달 주제인 ‘노인들을 위해 일하다(Working for Seniors)’에는 온주의 성장에 기여했던 고령화 인구가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온주 정부가 앞으로도 다양한 지원 대책을 꾸준히 이어갈 것이라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정부의 노력을 바탕으로 올해 ‘노인의 달’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공헌한 우리 시니어들의 노력을 치하하는 훌륭한 기회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저는 온주 정부가 노인들이 지역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의 각종 요구 사항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해왔고 또 앞으로 해나갈 각종 노력들이 결실을 맺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온주 정부가 실시 중인 프로그램과 서비스들은 언제나 노년 인구들의 건강한 삶과 웰빙에 중점을 둘 것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니어들의 건강하고 독립적인 노년 생활을 목표로 실시되고 있는 노인복지부의 노인 활동 센터(Senior Active Living Centre)는 온주 전역에서 약 316개의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들의 교육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돕고 있습니다.

또한 시니어들의 사회적 고립을 막고 활기찬 노후를 보내기 위해 다양한 노인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비영리 지역단체에 매년 시니어 커뮤니티 그랜트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노인복지부의 새 웹사이트 ontario.ca/seniors 와 서비스 안내서에는 노인들을 위한 간병인, 재정, 주택, 보안과 관련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온타리오 시니어 공로상(Senior Achievement Awards)과 온타리오 올해의 시니어상(Ontario Senior of the Year Awards) 수여를 통해 시니어들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그들의 사회적 공헌을 기리는 것도 노인복지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입니다.

온주정부는 우리의 고령화 인구가 각종 지원을 통해 고립감에서 벗어나고 더욱 활동적일 때 지역사회의 유대감이 강화되고 더 나아가 전 주민이 이에 따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노인의 달인 6월 한달 동안 저희는 지방단치단체 및 지역 사회 파트너들과 협력해 시니어들의 건강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각종 자원을 제공할 것입니다.

비단 노인의 달이 아니더라도 저는 독자 여러분들이 항상 여유를 가지고 여러분의 삶 주변에 있는 시니어들에게 먼저 다가가 그들이 지금껏 저희를 위해 해왔던 노력과 희생을 기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니어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사회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합시다.

노인의 달과 관련된 세부 정보는 웹사이트(www.ontario.ca/seniors)에서 확인 바랍니다.

[편집인 칼럼] 김호중의 추락과 윤석열

● 칼럼 2024. 6. 9. 03:44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러- 한마당]  김호중의 추락과 윤석열

 

대중음악에는 문외한인데다 흘러간 옛 가요나 흥얼거리는 사람으로 이른바 ‘팬덤(fandom)’은 조용필·나훈아 같은 유명 가수에게나 있는 것으로 여겼다. 한걸음 나아가 업그레이드 됐다고 해봤자 BTS 혹은 BLACKPINK 같은 세계적 K-Pop 인기그룹이 구름 떼 같은 젊은 팬들을 끌고다니는 것 쯤으로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세계에 얼마나 까막눈이었는지는, 김호중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가수가 천정부지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다. 그건 흔히 귀결되는 ‘세대차’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확장하고 뛰어넘은 신 팬덤문화의 생소함 때문이라고 할까. 그가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벼락출세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훈아를 좋아하는 아주머니들 보다도 훨씬 더 나이많고 주름지고 머리도 허연 할머니들, 70넘어 80줄에 접어든 노년 여성들까지 그에게 환호하고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는 사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어쩌면 인생살이의 공허가 짙어가는 시절에, 가슴 한구석 허허로운 빈자리를 청아유려한 그의 노래와 아이돌 매력의 외양이 소녀적 연애 감정처럼 채워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음주 뺑소니 소동에 휘말려 쇠고랑을 차고 경찰 포토라인에 서자 극성 할머니 팬들 중에는 패닉에 빠져 입맛이 없어졌다며 눈물을 쏟기도 했고, “그럴 리 없다”고 적극 감싸는 반응이 부지기수였다. 삭막한 일상에 모처럼의 낙(樂)이요 위로 메시지를 주었던 황혼길의 우상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렸으니, 연로한 팬들의 상심이 오죽했을까.

불과 수년 만에 부와 인기를 거머쥐면서 스타덤에 오른 김호중은 왜 어느 날 급전 직하해 저 순진무구하고 하소연할 데도 없는 할머니 팬들을 울렸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두드러진 점을 꼽는다면 그가 급변한 삶의 방식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고 옛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 습성과 본색이라는 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김호중은 어린 시절 불운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사춘기를 전후해 방황하며 말썽이 잦았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음악적 소양을 발견한 스승에 의해 성악을 공부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아 대중음악에 눈을 돌려, 때마침 유행처럼 번진 트롯 경연에 도전했다가 인생역전의 꿈같은 시기를 맞는다. 그는 고진감래를 되씹으며 입지전의 성공신화를 계속 써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환골탈태’가 어디 쉬운 일인가. 흔히 벼락부자들이 ‘졸부’에 머물고 마는 것처럼, 속사람은 쉽게 변치않는 법. 오랜 술버릇과 위기모면을 위한 임기응변의 거짓이 그의 인생에 또 다른 반전을 부르고 말았다. ‘제 버릇 남 주나’하는 비아냥이 말해주듯 그는 현실 부조화와 인지(認知) 부조화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이다.

김호중의 추락에서 윤석열과 그 일가의 행태가 오버랩되는 것은 상당부분 흐름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벼락출세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요동시키더니, 못버리는 ‘제 버릇’ 남발로 본색을 드러내면서 자승자박, 추락일로를 걷는 모습이 여러모로 닮지 않았는가.

8번이나 낙방했다가 9번째 겨우 고시에 붙었다는 윤석열은 명석한 검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검사생활에 부침도 많았다. 그저 물고 늘어지는 외고집 끈기와 ‘퉁치기’ 수법으로 특수부 정치검찰 패거리문화에 젖어들게 되고, 우연히 김건희를 만나 무속과 세속이 뒤섞인 공적·사적 카오스 행보를 걷게된다.

지난 2년여 동안 드러난 그와 일가의 수준과 본색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말해준다. 여전히 ‘검찰에서 놀던’ 습벽의 굴레를 벗지못해 대통령 자리에 앉아서도 일개 검사같은 국정을 폈다. ‘법사’의 주장대로 취임하자마자 청와대를 기피하고 용산을 고집해 수천억을 허비하더니, 그 법사의 주장대로 동해 석유탐사를 들고 나오기에 이르렀다. 취임하자마자 처가를 위한 고속도로 노선변경을 꾀하더니, 주가조작에 명품백 스캔들 혐의자인 김건희를 수사하겠다는 검사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그 역시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한 심각한 현실부조화와 인지부조화 탓에, 하루가 멀다하고 충돌을 일으키며 침몰의 길을 걷고 있다. 그와 그 일가가 손대고 휘저은 국정과 민심은 불과 2년만에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나라 안팎 어느 한군데 성한 곳이 없다.

밖에서 보기에도 불안하고 수치스럽기 짝이없는 외교안보가 모든 걸 말해준다. 미국에 예속돼 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한 실책의 댓가는 경제 하나만으로도 혹독하다. 무슨 연유인지 일본에 굴종하면서 과거사를 뭉개고 핵폐수를 변호하더니, 이젠 네이버의 라인을 넘겨라, 욱일기를 인정하라고 윽박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도가 불안하고 자위대가 한국 땅에 상륙할 태세다.

검사들이 장악한 정부기관들의 불협화에 상호조율이 되지 않는 정책 난맥상까지 국정은 비전없이 표류한다. 총선 참패에도 습벽은 여전해 국회가 만든 법안마다 거부하고 특검마다 피할 속셈이다. 오직 일가 비리 덮기에만 국력을 총력 소진하니, 민생이 눈에 보일 리가 없다.

그와 그 일가를 위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고, 나라가 어디까지 망가져야 하나.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할 길을 갔다가 잠시의 영화가 영원한 지옥길이 되곤 하는 게 인간지사다. 못된 저질 습벽을 속여 그 자리에 간 것부터 잘못이지만, 그 버릇 못버리겠다면 어서 속히 그만두는 게 그나마 상책이다. 22대 국회가 시작되자 마자 거대야권의 화력이 심상찮다. 억지와 궤변으로 버티려 하나 돌아선 민심이 언제까지 참아줄까. “차라리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땅을 치며 후회할 날을 기다리는가.

 

[목회 칼럼] 가증한 기도

● 칼럼 2024. 6. 9. 03:40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가증한 기도

 

 송만빈 목사  < 노스욕 한인교회 담임 >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젊은 부인이 식료품 가게에 들어가서 가게 주인에게 성탄절 저녁식사에 아이들을 먹일 양만큼 식료품을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가게 주인은 돈이 얼마나 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남편이 전쟁터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제 수중엔 돈이 없습니다. 기도밖에는 정말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 말에 주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이 했다는 기도를 종이에 써주세요. 그러면 그 무게만큼 주겠소.”

    가게 주인이 이 부인을 정말 생각해서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종이 무게만큼 식료품을 주겠다는 것, 이 말은 안주겠다는 말이나 똑같잖아요. 하지만 부인은 주인의 말대로 합니다. 주머니에서 작은 공책을 꺼내 주인에게  건네줍니다. 주인은 공책에 무슨 기도가 적혔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양팔 저울 한쪽에 공책을 올려놓습니다. 그리곤 “자! 당신의 기도가 얼마치의 무게가 나가는지 달아 봅시다”라고 중얼거리며, 빵 한 덩어리를 저울의 다른 팔에 올려놓았어요. 주인 딴엔 빵이 공책보다 무거울테니 당연히 빵을 올려놓은 팔쪽으로 기울어질 거라 생각했겠죠. 그리고 기도의 무게가 너무 안나가서 줄게 없다라는 말을 하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빵쪽으로 기울어져야 할 저울 팔이 움직이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서 주인은 다른 식료품도 올려놓아봤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팔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주인은 당황합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합니다. “저울에 더 이상 올려놓을 수 없으니 당신이 원하는 만큼 알아서 봉지에 담아 가시요.” 부인은 가게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곤 필요한 식료품들을 봉지에 담아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가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저울이 고장났던 겁니다. 주인은 며칠 뒤에서야 저울이 고장난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한 거예요. 그동안 멀쩡하게 작동하던 저울이 왜 하필 그 부인이 왔을 때 고장났던 걸까?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그렇다면 젊은 부인이 공책에 적은 기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주님! 오늘 제 어린 자식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였어요.

    세상의 관점에선 이 사건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밖에 안보이겠지요.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귀기울여 들으세요. 그리고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쳐서 그렇지, YES로든, NO로든, 아니면 WAIT으로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세요.  우리의 모든 기도는 응답받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잠언 28:9 보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는 기도가 있어요.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인데, 말씀을 듣지 않고 기도하니 내 맘대로 하는 기도,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기도, 내 욕심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기도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은 채 드리는 기도는 자칫 잘못 하다간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기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편집인 칼럼] 5.18에 되새기는 의분의 혼

● 칼럼 2024. 5. 27. 06:01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5.18에 되새기는 의분의 혼

동학 농민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났을 때 조선 조정은 동학의 거두 최제우를 처형해 기세를 꺾으려 했다. 그러나 교조의 억울한 죽음은 더욱 거센 반발을 부른다. 학정에 시달린 농민들의 항의와 시정요구가 빗발치는데, 위 아래 관청은 모두 외면하고 오히려 ‘처벌능사’의 태도로 민심을 짓밟았다. 부패와 무능으로 도탄에 빠진 국정을 척신들과 무속 주술정치로 주무르며 권세유지에 급급한 자들에게 백성의 신음과 절규는 ‘동구 밖의 개짖는 소리’쯤이나 여겨졌던 것이다.

분노한 민심이 폭발하자 왕실은 허둥대며 사익과 당파적인 권력의 득실 활용에 급급하다 외세를 끌어들인다. 마치 홍수에 빠져 허우덕대다 악어 등에 올라간 격이니, 나라 꼴이 어찌되겠는가. 동학혁명은 그렇게 미완에 그쳤고, 조선은 악어의 제물이 되어 망국의 길로 달려갔다.

일제의 국권침탈과 민생수탈에 견디지 못한 민족적 봉기가 3월1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번졌다. 방방곡곡의 남녀노소가 “왜놈은 물러가라”면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불의와 부정에 민감한 백의민족의 정의감과 저항의 피와 혼이 되살아 난 것이다. 하지만 일제는 총칼로 무도하게 진압했다. 거기에 부역하며 호사한 민족의 배반자들, 가령 이완용 같은 매국노는 “독립운동이라는 선동은 미친 짓” 이라고 나무라고 “깨닫지 못한 불쌍한 자들이 몰지각한 행동을 하니 몽둥이를 들 수밖에 없다”고 동족을 위협했다. 강경대처로 소요가 잦아들자 이제는 “여러분이 잘못과 오늘의 시국을 깨달아서 그런 줄로 알고 기분이 상쾌하다”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객의 비수에 당해 시름시름 앓다 저승사자에게 끌려갔다. 불행한 말로는 자업자득이요, 후손들까지 수치 속에 사는 저주를 원망하게 만들었다.

삼일혁명으로 부터 40년이 지날 즈음, 이승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민족의 의로운 피는 다시 들끓기 시작한다. 4.19 혁명의 전운이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인물이 친일 고등경찰을 등용해 독립투사들을 핍박했다. 6.25 와중에 수도 서울을 버리고 도주했던 트라우마의 발로였는지, 반공을 빌미로 수많은 양민을 학살한 패악질의 상처는 지금도 아프다. 헌데 그것도 모자라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영구집권을 꾀하다, 민심의 거대한 파도에 맞닥뜨린 것이다.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번져 경찰이 무차별 발포하는 사태까지 이르자 이승만은 개각과 자유당 탈당, 내각제 개헌 운운 급조한 수습책을 내고 게엄령 선포로 맞선다. 하지만 권력자의 무능과 무지한 현실인식은 성난 민심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이승만의 담화는 사태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제시하지 않은 채, 시위가 “그저 불평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호도했다. 민의가 버린 정권은 하루 아침에 무너졌고, 그는 이른 새벽에 허겁지겁 하와이로 망명,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4.19 혁명으로부터 20년만에 일어났다. 무소불위 독재자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뒤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일당에게는 보이는 게 없었다. 정치와 행정에 깜깜이 군인들이 국가권력을 석권하고, 국회와 언론, 경제와 문화까지 입맛대로 칼질했다. 박정희를 능가하는 전두환 성역화에, 국민을 겁박하는 독재공포로 뒤덮었다. 어김없이 독재 장기화를 꿈꾸며 재계를 쥐어 짠 수렴청정의 토대까지 만든다. 하지만, 민족의 의로운 저항의 혼과 피는 결코 권력의 오만과 못된 짓거리들을 두고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대학의 젊은이들이, 그리고 깨어있는 시민들이 주먹을 부르쥐었다. 서울의 봄을 외친 신군부 타도의 함성은 전국에 번져 부마항쟁의 기세가 살아난 부산에서, 대구에서, 대전에서 거센 풍랑을 일으켰다. 그 중에도 광주는 동학이 휩쓸었던 곳이고 일제 치하 학생운동이 잦았던 곳이다. 전두환 일당이 두려워할 만한 경계지역이었다. 5.18 광주학살은 그래서 은밀히 표적이 된 계획범죄 였다.

무고한 시민을 향해 뭉둥이질에 대검과 총탄, 헬기사격까지 자행한 전두환 쿠데타 세력의 짐승같은 만행과 달리 광주시민들은 의분의 항거 속에서도 질서를 지켰고, 나눔과 베품과 희생으로 민주주의와 ‘대동세상’의 비전을 보였다는 사실. 그것은 동학혁명 때도, 3.1혁명 때도, 4.19에도, 그리고 지난 6.10과 촛불혁명 때도 볼 수 있었던 우리 민족의 근성이고 저력이었다. 올해 5.18 항쟁 44주년 기념식을 통해 그 정신을 되새기며, 여전히 흐르고 있을 저항의 피와 혼, 정의로운 기개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 정권이 드러내고 있는 말기적 증상을 떠올리게 된다. 나라의 경제와 외교는 삼류국으로 전락하고, 민생은 도탄지경인데, 권력방어에 몰두해 국가기관을 총동원하고 있다. 일가 비리를 덮으려 공권력을 사유화하고 거부권을 남발하는 후안무치와 법치유린-. 5.18 기념식에 몸은 참석했다 하나, 허언으로 장식한 기념사와 식장 안팍의 원성들을 보노라면 민중의 분노와 외침을 ‘개짖는 소리’쯤으로 여겼던 불행한 역사의 권력자들이 오버랩 된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주말마다 경고의 촛불을 켜들었고, 지난 4.10 총선에서 거듭 적신호를 주었다. 임계점에 이른 국민의 의분을 거슬러 무슨 험한 꼴을 당할 작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