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축복의 통로로서의 우리의 사명

● 칼럼 2025. 9. 1. 12:31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축복의 통로로서의 우리의 사명

- 왜 우리는 캐나다 국가기도회와 예수대행진에 감격할까? -

 

                        양요셉 목사 (기쁨이충만한교회 담임, 예수대행진한인교회책임자)

 

2025년 8월30일 오후 3시에 소망교회에서 제12주년 캐나다국가기도회가 (5시에 식사), 9월6일(토) 정오에 Queens Park(온주의사당 앞 광장)과 도심에서 예수대행진 (Jesus in the City Parade)이 열린다. 예수 대행진은 26년 전 솔로몬 목사가 창시한 이래 매년 9월 초 토요일에 열린다. 이 도시의 모든 교회들이 인종과 교파를 초월하여 성회를 갖고 경찰의 도로경로 엄호를 받으며, 각 나라별 또는 교회들이 각각 트레일러에 악기와 찬양팀이 올라서서 찬양을 인도하며 수많은 신도들이 그 뒤를 행진하며 예수가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구원자이며, 이 도시의 주인이자, 유일한 희망임을 선포하며 행진한다. 이 도시 위에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기를 갈망하며 목이 터져라 선포하고 찬양하고 전도하며 행진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캐나다 국가기도회는 온주한인목사회와 온주한인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모든 한인교계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주관하고, Jesus in the City Parade의 본부와 다른 모든 나라를 포함한 온주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최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Toronto와 Canada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기도회 후에는 하나님의 응답과 승리를 확신하며 뷔페 식사와 함께 축제와 친교를 나누며, 예수대행진에서 다시 만나 승리의 행진을 기약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 한인들은 왜 이 국가기도회와 예수대행진에 참여해야 할까?

그것은 우리 한인들의 가장 큰 사명이자 특권이자 복을 누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복의 근원)이 될지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세기 12:1-3)라고 말씀하실 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함으로 인하여 복을 받아 온 인류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축복의 근원자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과 믿음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으며, 축복의 근원자가 되었다. 특별히 우리 한인동포들은 아브라함처럼 고국을 떠나 캐나다의 이주자(Diaspora)가 되어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모든 캐나다인들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서의 사명과 특권을 갖게 되었다. 특별히 우리는 6.25 참전과 복음전파를 위해 순교한 캐나다인들에게 큰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 이제 이 사랑의 빚을 갚으며 하나님의 지상명령과 지상계명을 성취해 드릴 수 있는 위대한 축복의 통로로서 기회가 주어졌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

 

첫째로, 캐나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과 모든 백성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로서 축복하는 것. 둘째로, 이를 위해 모든 캐나다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예배자의 축복을 누리도록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 셋째로, 언제 어디서나 만나는 사람마다 함박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선포하는 것;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God loves you!”/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합니다! God Bless you!”

 

이러한 뜻 깊은 일에 주안에서 하나 되어 함께 모여 기도의 축제를 누리는 제12주년 캐나다 국가기도회와 제26주년 Jesus in the Cith Parade에 우리 모두 동참하여 위대한 영광을 누리고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됩시다!

 

[목회칼럼]  교회 다니지 않아도 신앙생활 할 수 있지 않나요?

 

                                               김치길 목사 (빌라델비아장로교회 담임) 

 

얼마전 새가족 공부를 하던 중, 질문을 하나 받았습니다.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꼭 교회를 다녀야 합니까?” “예수님만 믿는다면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괜찮은 것 아닙니까?”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교회에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이해는 어떻게 교회 생활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정의가 됩니다. 바른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성경이 말하는 교회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 교회를 자기의 관점에서 해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교회가 어떤 곳인가를 아는 것이 유익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일반 조직체와 다릅니다. 교회 공동체는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가진 몸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지상에 또 다른 몸을 남겨 놓으셨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즉, 지상의 교회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드러내야 하는 분신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개념입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나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매력적인 코라고 해도 얼굴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굴러다닌다면 섬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등록을 한다는 것은 세상의 멤버십과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멤버십은 마음에 안 들면 탈퇴하면 되지만, 그리스도 몸 안에서는 탈퇴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었지만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모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외에는 다른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때로는 갈등 관계에 빠지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한 몸이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습니다.

 

가족이라면 따뜻하고 좋은 느낌이 들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싸우는 곳이 가족관계입니다. 별것 아닌 것, 사소한 것으로 많이 싸우지만 며칠 지나면 웃고 함께 뒹굴며 살아갑니다.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가족 공동체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너무 이상적으로만 생각합니다. 일종의 결벽증 같은 것인데 조금이라도 불편한 일이 일어나면 “교회가 왜 이래? 난 더 이상 안 다닐 거야!”라며 갈등이 없는 곳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공동체를 거부하는 것은 신체 일부가 몸을 벗어나는 것이고 그것은 영적으로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영적 성장을 하려면 반드시 서로가 필요합니다. 홀로 자랄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는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엡 2:22).

 

같은 배에서 난 형제도 다른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을 볼 때 인내하고 용납하고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는 가운데 조금씩 영적으로 자라가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편집인 칼럼- 한마당] 사이비 제-정(祭政) 오월동주의 결탁

 

 

전세계에서 모여든 신랑신부 5천여 커플이 한국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렸다는 뉴스가 최근에도 일부 언론에 나왔다. 문선명 씨가 세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세칭 통일교에서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모으려고 수십 년 전부터 벌이는 토픽성 이벤트의 하나다.

 

5천 명의 동시 결혼 기사가 토픽감이기는 하지만, 연예기획사도 아닌 영적 수양에 힘을 쏟아야 할 종교집단이 세속적인 이벤트로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이 과연 어울리는 일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신흥 이단 사이비종교라는 딱지와 열등감을 화려한 행사로 커버, 혹은 보상하고 싶은 허장성세의 시도가 아닐지.

 

그 통일교의 치부가 요사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대통령직과 국정을 ‘비즈니스’로 여겨 온갖 불법 비리로 이권을 챙긴 내란 세력, ‘윤건희’ 일당과의 검은 거래가 특검에 의해 줄줄이 드러나서다. 틀림없이 서로의 불법적인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몇가지 사례를 보면, 값비싼 보석과 억대 뇌물을 ‘여사’ 혹은 ‘윤핵관’에게 건네 환심을 사고, 개발도상국에 지원되는 ODA(공적개발원조)까지 빼돌리려 손을 뻗혔다는 의혹에, 전국 교인을 대상으로 당원가입을 시켜 대통령 후보 경선을 도왔다는 선거공작까지 운위된다. ‘독생녀’니 ‘성모’라고 추앙하는 문선명의 배우자이자 현 교주이고 총재인 ‘참어머님’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으로 거액을 탕진했다는 설까지, 추한 실상들이 회자되고 있다.

 

통일교는 한국 기독교의 강력한 이단 대처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해외에서는 막강 교세와 정치적 영향력을 자랑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등 세계 각국의 거물 정치인들이 통일교 행사에 등장하곤 한다. 일본의 교세는 한국 통일교를 먹여살린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수입과 ‘정치력’이 대단했다. 그런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암살사건으로 자민당과의 유착과 고액헌금 강요 등 ‘흑막’이 드러난 큰 소동 끝에 지난 3월 법원의 해산명령을 받는 치명상을 당했다.

 

사이비 종파들의 주요 특징은 이단 교리 외에 불안심리를 이용해 미혹하고, 재물·이권에 집착하며, 자칭 신이 된 교주와 그 일가가 호사를 누린다는 사실이다. 통일교가 윤건희 측에 뇌물 접근한 것도 이권과 특혜를 노린 것이었다. 일본에서 해산 명령까지 이른 근거 역시, 헌금 강박으로 인한 가정파탄 사례들이 주요인이었다.

 

‘윤건희’ 정권은 정교(政敎)분리의 대원칙 하에서도 무속과 사이비 종교에 휘둘린 정치권력이 국가와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얼마나 위험한지를 실증해 주었다. 마찬가지 통일교는 그런 타락한 권력에 빌붙어 이권을 노린 부도덕한 종교집단이니, 이권 비리에 뜻이 맞은 종교와 정치 사이비들이 한 배를 탄 ‘제정(祭政)결탁, 오월동주(吳越同舟)‘의 표본 사례라고 할만하다.

 

역시 이단 사이비로 지탄받는 ’신천지‘는 어떤가. COVID-19 사태 때 윤석열이 압수수색을 두 번이나 막아 위법처벌을 면해준 은혜를 갚는답시고 국힘당에 교인 10만명을 가입시켜 경선승리를 안겨줬다고 한다. 평소 여러 의원들이 친분을 맺고 교주와의 교류가 폭로되곤 하는 이면에도 음침한 거래 의혹이 나돈 바 있다.

 

비단 이들 사이비 종교집단 만이 아니다. 속칭 ‘빤스목사’라 불리는 사람은 아무리 이단판정을 내려도 도저히 성직자라고 할 수 없는 천박하고 극우적인 언동으로 기독교와 목사직을 혐오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든지가 오래다. 그가 내란 선동에도 앞장서 수사를 받는 건 만시지탄이고 너무 당연한데, 그에게 뒤질세라 윤건희를 옹호하고 내란에 동조한 목회자들이 어디 한 둘인가.

 

최근에는 기독교의 원로요 지도자라는 목사들이 특검의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모로 교계가 술렁였다. “과잉수사, 교회탄압”이라고 외쳐보지만, 불의한 권력을 감싸왔다는 눈총에다 결코 떳떳하지 못한 구명로비 의혹에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렇지 않아도 교세 약화의 위기감이 감도는 기독교계 안팎에서 “초대교회”“초심회복”을 강조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당연하다.

 

타락한 종교는 마약과 다름없다고들 말한다. 성경은 사탄이 ‘광명천사’로 가장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위선과 탈선의 사이비들을 ‘천국문을 닫고 자기들도 안들어가고 남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자들’이라고 저주했다.

 

분별없이 성직의 품격과 본분을 잃고 불의에 영합하는 성직자들은 지옥에서 부활하는 영적 지도자를 꿈꾸는 것일까? 그들에게 성경은 또 이렇게 깨우치고 있다.

“회칠한 무덤이 되지 말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탐하지 말라”

[편집인 칼럼] 12.3 교훈, 개혁과 도약의 동력으로

● 칼럼 2025. 6. 6. 13:21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12.3 교훈, 개혁과 도약의 동력으로

 

반역과 반전의 6개월이었다.

그 날 이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벼랑끝 고개를 넘나드는 것 같은 아찔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힘겹게 외치고 땀흘려 고갯마루를 넘었다 싶으면 혼탁한 강물이 가로막았고, 갑자기 바윗덩이가 굴러떨어져 아차 피했더니 이번엔 절벽이 시야를 가려 눈 앞이 캄캄한 일도 있었다. 조마조마 모두들 잠을 설치며 애간장을 태워야 했던 곡절의 180일이었다.

 

느닷없이 총검으로 무장한 국군장병이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에 들이닥쳐 난리를 벌인 충격적 사건부터, 빛의 장관을 이룬 응원봉의 궐기와 극적인 탄핵, 내란수괴의 관저 버티기 끝에 체포의 환호가 있었지만, 그마저 잠시, 동키호테 판사의 방면으로 허망한 반전을 이루더니 피말린 파면의 역전극, 그리고 물타기와 궤변으로 반전을 노린 선거판까지, 국내외 동포들은 불안한 감정의 냉온탕에 내몰린 시간고문을 견뎌야 했다.

 

어쩌면 숱한 눈구덩이를 오르내리며 힘겹게 내달리는 모굴스키(Mogul skiing)를 탄 기분이 들기도 했던, 유난히 긴 12.3 내란의 겨울, 그 이후 ‘내란의 얼음’이 냉해를 부르며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아(春來不似春) 속이 답답한 날들…

 

주마등처럼 스치는 지난 6개월의 파노라마를 뒤로하고 마침내 흑암의 터널을 벗어나 눈부신 6월의 햇살로 새 시대를 열어 젖혔다.

 

 

6.3 대선의 결말은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정의를 되찾았다는 것과, 결코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승리의 전통과 역사적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사는 대한민국 다수를 확인한 사실일 것 같다.

 

당선자 이재명 새 대통령이 내세운 ‘국민주권 정부’의 출범이 바로 민주주의와 정의를 되살리는 신호탄이고, 이를 쏘아올려 뒷받침한 것이 역사 속에서 의로움의 전통을 만들어 온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계엄군을 몸으로 막고 광장을 메운 응원봉의 결기, 해외 각지에서 조국을 위해 외친 동포들의 혈맥에 흐르는 민족정기가 그 증거들이다.

 

민주 헌정질서를 위협한 친위 쿠데타가 어찌 진보에게는 악행이고 반란인데, 보수에게는 정의이고 잘한 일이 될 수 있는가. 도무지 진보 보수를 따질 대상이 아닌데도, 내란 무리는 억지논리로 판을 뒤집으려 했다. 오히려 국가안위에 민감한 보수주의자들이 더 분개하는 게 마땅한 일이거늘, 스스로 거짓 보수임을 커밍아웃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반 만년 우리 역사에 수많은 외침(外侵)이 있었고, 국가적 변란도 잦았지만, 대표적인 민족적 신념은 대의명분(大義名分)이었다. 이성계가 역모로 권력을 잡았어도 정몽주를 충신으로, 단종은 사약에 갔어도 사육신이 충신이고 세조가 왕위를 찬탈했노라는 사가(史家)들 기록과 민심의 기억을 보아도 그렇다. 근현대사에 식민 일제의 패망으로 고통에서 해방된 역사부터, 전쟁 잿더미에서 회생한 일, 불의한 독재권력에 피와 눈물로 항거해 민주주의를 일궈온 기억들까지…‘하나님이 보우하사’ 유구한 대한의 역사가 곧 사필귀정, 정의의 승리를 말해주는 것이다.

 

 

12.3 내란의 파고를 넘어 6.3 투표의 선택과 심판으로 펼쳐진 새 시대는 큰 기대와 희망을 주지만, 난제도 수두룩하다. 새 정부는 조급하지 않되 지혜롭게 선후 완급을 가리며, 무너지고 망가진 구석구석을 재빨리 수리해 나가야 한다. 민주주의와 정의 평화 인권 등 국민의 정신행복은 물론, 경제 사법 군, 외교, 문화 등 모든 부문을 정상으로 되돌려, 행복과 평안의 삶을 모두가 향유할 수 있게 발빠른 행보에 나서야 한다. 내란 와중에 드러난 온갖 병폐와 구태들을 제거하고 고치고 바로잡는 법적, 정치·사회적 행동과 조처가 시급하다.

 

무엇보다 내란일파를 철저히 규명해 단죄하고, 권력을 일가범죄와 카르텔 이권보호에 오남용한 자들, 법치를 내로남불 짓밟은 자들을 징벌해야 한다. 국정을 무속으로 더럽힌 자들, 역사를 거꾸로 되돌린 민족혼이 없는 자들, 주인인 국민의 머리 위에 또아리를 틀어왔던 오만불손한 자들, 피흘려 지켜온 민주업적을 깔아뭉개 선열들의 희생과 열정을 더럽힌 무리들을 응징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민주헌정을 유린하거나 민족 자존심을 훼손하는 망동이 반복되지도, 생각조차도 하지못할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아픔도 거부반응도 나올 테지만 각오할 일이다. 민주적이고 과단성 있는 국정이라면 호응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흔히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며, 고진감래라 했다, 심한 산통 후에 옥동자를 낳듯이. 12.3의 홍역을 우리들의 도약 자산과 개혁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야 말로 한민족의 지혜일 터이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