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7천만 불과 하나님

● 칼럼 2023. 9. 11. 12:3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7천만 불과 하나님

 

박헌승 목사 (서부장로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캐나다의 한 TV 방송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로토 당첨자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1년 전 ‘맥스 MAX’ 복권의 1등 당첨자를 찾는데, 티켓 번호까지 밝혔습니다. 당첨금은 무려 7천만 불이고, 지급만료일이 6월 28일이었습니다. 여러 번 방송을 했지만, 당첨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첨자는 자기가 구매한 티겟이 뽑힌 줄을 몰라서, 그 많은 돈을 받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뉴스를 접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모르면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무지하면 복을 스스로 걷어차는 것과 같습니다. 없어서가 아니라, 몰라서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몰랐기에 배고프다고 팥죽 한 그릇과 장자권을 바꾸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 줄 몰랐기에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을 몰랐기에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무지해서 7천만 불을 놓친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소는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지만은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외쳤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무지하면 불행해 집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리적으로 아는 지식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 임해야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믿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가야 합니다. 환난 많은 세상,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알아야 강하여 용맹을 떨칠 수가 있습니다.

7천만 불은 잃어도, 영원하신 하나님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칭송합니다. 경배합니다.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립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편집인 칼럼] 굴욕의 역사를 되새기는 이유

● 칼럼 2023. 8. 29. 13:0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굴욕의 역사를 되새기는 이유

 

 

삼국지(演義)에는 적군의 신출귀몰하는 계략에 넘어가서, 혹은 막강전력 위세에 눌리거나 풍문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항복하고 제발로 굽히고 들어가는 사례들이 나온다. 적벽대전에서 손권과 합세해 조조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 유비와 제갈공명의 세력은 관우·장비 같은 걸출한 장수는 거느렸지만 본거지 영토도 변변치 않았고 군사도 겨우 수만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다윗에게 골리앗과도 같았던 조조의 대군을 초토화하는데 결정적 전략을 제공한 공명의 탁월한 전술과 선정을 펼친 유비의 덕망에 전의를 상실하고 지레 겁을 먹은 성읍들이 변변히 싸워보지도 않고 유비군에게 백기를 들고 나온다. 이로써 유비와 공명은 요지 형주를 근거지로 영릉, 장사, 계양, 무릉 등 양자강 이남 지역을 속속 차지해 당당히 삼국정립의 토대를 구축한다.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공해 경애왕을 죽게한 뒤 세운 왕이 신라 최후의 56대 임금 경순왕이다. 그는 8년을 왕위에 있으면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 줄타기를 하며 국권을 회복해보려 하지만, 영토는 날로 줄어들고 국력이 쇠잔해지자 서기 935년에 나라를 고려 왕건에게 바치고 만다. 군신회의에서 두 왕자까지 나서서 “어찌 1천 년의 사직을 하루아침에 가벼이 남의 나라에 넘겨줄 수 있습니까!”라고 성토하는 극구 반대를 뿌리치고 고려 복속을 결행한다. 신라는 망했고 두 왕자는 출가해 초라하게 살았는데, 경순왕은 고려에서 왕건의 두 딸을 ‘선물’받는 등 고관대작으로 40여년의 영화를 누리다 죽는다.

앞서 후백제의 견훤도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당하자 몰래 고려로 도망쳐 왕건에게 투항했다.

한국 역사에서 정세판단의 잘못으로 치욕을 삼키며 머리를 굽혀 적국 휘하에 들어간 사례는 또 있다.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을 맞아 청나라에 망국적 수모를 당한 삼전도의 굴욕은 그야말로 뼈아픈 민족사다. 군주가 오랑캐에게 항복한 정도가 아니라,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즉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3차례씩 9번을 엎드려 절하여 완전 굴복을 표해야 했다. 청나라의 신하국으로 몰락한 것은 물론, 왕자들이 볼모로 잡혀가고 수많은 백성이 끌려가는 곤욕을 치르며 나라가 절단나고 말았다.

신라 경순왕과 후백제 견훤의 고려 복속은 우리 땅에서 같은 민족에게 굽히고 들어간 사례다. 삼전도의 굴욕은 타민족에게 왕과 백성이 무참히 수모를 당한 사건이긴 하지만, 나라를 빼앗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는 왜국 일본에 국권과 국토와 국민까지 모조리 빼앗긴 사상 초유의 민족 말살기를 열었다. 황후는 무참히 살해되고 황제는 폐위됐다. 백성은 일본천황의 신민으로 전락했으며, 창씨를 개명하고 조선말이 아닌 일본말을 써야했다. 국토는 일제의 전쟁물자 공급지로 수탈당했다. 수백만 청년들은 강제징집·동원되어 대동아전쟁 총알받이로, 군수공장과 탄광의 노동자로, 군위안부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노예의 삶을 견뎌야 했다. 고종황제의 반대를 거스르며 나라를 팔아먹은 학부대신 이완용과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 조정의 권부에서 영화를 누리던 매국 5적은 일본제국에서 작위와 재물을 댓가로 받아 호의호식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로가 행복했을까. 결코 민족혼을 버리지 않은 독립영웅들에 의해 평생 암살 위협에 떨며 두리번거리고 살아야 했다. 이완용은 실제로 칼에 맞아 병약한 말년을 살았다.

요즘 한국 윤석열 정부의 ‘국익 저해외교’, 특히 일본과 미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느니 ‘삼전도의 굴욕’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들이 회자되는 소란스런 현실과 지난 민족사가 오버랩 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도 없이 일본의 죄과에 면죄부를 주고, 영합하고, 대변까지 자처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에 국내외 동포들은 “일본사람 아니냐!”며 울화를 꾹꾹 누르고 있다. 철지난 ‘멸공’과 ‘전체주의’를 외치면서 ‘바이든의 푸들’, ‘기시다의 꽃놀이패’가 되려고 안달하는 모양새에 불안 증폭은 물론 자존심도 망가진다는 지탄이 넘친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못박아도 끽소리 못하는 저자세와 굴종, 미국과 일본의 결속에 맹목 접근해 두 나라의 하위구조를 자처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의 허장성세, 반면에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의 적대를 심화시키고 있는 ‘자해적(自害的)-조공적(朝貢的)’ 외교를 보며 ‘방패막이 전쟁위기’ ‘일본의 제2 식민’ ‘독도는 무사할까’ 등등 국내외 동포들의 걱정과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년 반 사이에 경제 악화를 필두로 안보까지 나라 곳곳 성한 데가 없이 망가져 위기를 맞고있는 데다 밖으로 ‘국격’마저 계속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받았으며, 8월에는 제2차 영-일동맹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도 한국에 대한 보호의 권리를 인정받은 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을사보호조약을 강제하여 체결하였다…”. 100여년 전의 한반도 정세를 상기시키는 안팎의 경고를 불안하게 되새겨보는 요즘이다.  

 

[목회칼럼] Jesus in the city Parade 참여를 위하여

● 칼럼 2023. 8. 29. 12:5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Jesus in the city Parade 참여를 위하여

 

박웅희 목사 < 쏜힐 새빛교회 담임 >

 

팬더믹 이후 한국 교회와 이민 교회에서 교인들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모든 교단의 교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도 매 주일 인원이 얼마나 예배에 참석했는가에 대하여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매일 예배 숫자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소형 교회는 회집 인원이 갈수록 즐어 들게 되면 혹시나 교회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어 스스로 위축되어지게 됩니다. 어떤 교회는 코로나 이후 교인들이 다 떠나 이제 교회 문을 닫고 집에서 가족들끼리 예배드리는 교회도 여러 곳에서 생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민 교회 목회자들 중에 80프로 이상이 이중직을 가지고 목회자들이 주 중에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의 추세는 대형 교회 집중 현상이 뚜렷해짐으로 더욱 소형 교회가 생존하기에 어려운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다고 하였으며 작은 자 중에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8:14)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동성애자들의 퍼레이드가 각 도시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마지막 주 토론토 다운타운에서도 3일간 프라이드 퍼레이드(성소수자 거리행진)가 시행되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단합과 인권을 높이는 일에 그들만의 퍼레이드는 이제 보편화되어 세계적인 행사가 되었습니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3일간 모여 여러 가지 그들이 하는 퍼포먼스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심을 높이고 그들의 단합과 인권을 홍보하는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성도 여러분들은 금년들어 제24회 째가 되는 ‘Jesus in the City Parade’에 지난 기간에 참여해 보셨습니까?

우리 한인 교회 연합팀들은 두 대 이상의 대형 트레일러와 함께 찬양. 부채춤. 태권도, 의상, 배너, 깃발 등으로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표현하며 행진하게 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 지고 채찍을 맞으시며 고난 받으시다가 마침내 부활하시는 십자가 행진은 많은 호응과 박수를 받았으며 주최측으로 부터 상까지 받기도 하였습니다.

다운타운에서 실시하는 퍼레이드는 미국 50개 주에서도 없는 유일한 기독교인들의 퍼레이드입니다. 한국과 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캐나다 토론토에 하나님이 기회를 주셔서 퍼레이드가 열린 것입니다.

지난 기간 동안 참여한 교회들을 보면 소형교회 목사님들이 많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금년에 목사님들이 참여하시면 성도들도 같이 참석하게 됩니다. 목사님들께서 매 주일 마다 광고해 주셔서 성도들의 참여를 독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타락해 가는 이 시대와 이 땅의 회복을 위해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들과 교회들이 많이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도시를 깨우는 이 뜻깊은 행사에 한인 교계가 더욱 큰 관심을 갖고 동참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Jesus in the City 한인 총 준비위원장 >

 

 

[편집인 칼럼] 잼버리 소동이 말해주는 것

● 칼럼 2023. 8. 11. 12:24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한마당 편집인 칼럼]  잼버리 소동, 또 하나의 징후

 

 

지구촌 청소년 야영축제인 세계 잼버리가 ‘난민 체험’ ‘생존게임’으로 비아냥 당하며 낯뜨거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에서 열린 국제행사로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여름·겨울 올림픽과 월드컵을 포함해 수많은 세계적 스포츠대회와 국제행사들을 개최해 오며 빈틈없는 준비와 운영으로 정평이 난 한국에서 어찌 저런 일이 벌어졌는가~? 국내는 물론이고 캐나다를 비롯한 전세계 한인동포들이 하나같이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는 치열한 경쟁 끝에 유치해 5년여 동안 1천여 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는 행사다. 그것도 3개 부처의 장관 3명이 공동위원장이고, 대통령이 휴가 중임에도 개영식에 성대한 의전예우를 받으며 참석해, ‘전폭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던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던 이벤트였다.

그런데 개막하자 마자 준비부족에 운영미숙이 드러나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총체적 난맥상’이 되어 국가망신을 사고 있다. 국내외 빗발치는 질타에 놀란 정부가 허겁지겁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어서 행사는 상채기만 남은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World Scout Jamboree’는 세계스카우트연맹(WOSM)에서 주최해 4년마다 열리는 전세계 보이스카우트 회원들의 합동 야영대회이자 각국의 문화 교류를 위한 대규모 청소년 축제다.

나라마다 중·고등학교 스카우트 대원을 중심으로 대표단을 구성해 세계잼버리에 참가한다. 이들은 야영생활을 하면서 국제적 우의를 쌓고 형제애를 나눈다. 피부색·종교·언어를 초월해 각종 행사와 과정활동에 참여하면서 “개척정신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과 자아실현을 도모하여 국가 발전과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잼버리 정신을 경험하고 체득한다.

올해 25회 대회에 이르기까지 캐나다도 두 차례 세계잼버리를 개최한 적이 있다. 1955년 북미에서는 처음으로 제8회 행사를 온타리오 나이아가라의 On-the-Lake에서 71개국 1만1천여명이 참가해 성대히 열었다. 이어 1983년에 제15회 행사를 앨버타주의 카나나스키스에서 106개국 1만47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무난히 개최했다.

한국에서는 1991년 8월 강원도 고성군에서 제17회 대회를 ‘세계는 하나’라는 주제로 처음 열었다. 당시엔 잼버리 사상 가장 많은 135개국의 1만9천여명이 참가했고, 이 행사의 성공을 계기로 세계 청소년들에게 한국의 이미지와 관심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호평과 함께 이후 참가국과 인원이 크게 늘면서 한국 스카우트도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그후에도 아시아태평양 잼버리와 국제 패트롤 잼버리 등 30~50개국의 수천에서 2만명 안팎이 참가하는 잼버리를 아무 문제없이 여러차례 개최해 신망을 얻었다. 그런 저력을 바탕으로 이번에 158개국 4만3천여명이 참가하는 세계잼버리 역대 2번째 큰 규모의 대회를 유치했는데, 뜻밖에도 ‘개망신’의 화를 자초한 것이다.

 

경제력이 커지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선진국 소리를 듣게 되어, 우리들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게 엊그제다. BTS를 필두로 한 K-pop과 영화, 음악 등 수준높은 문화예술이 세계를 주름잡는 자랑스런 나라 내 조국, 자부심이 가슴을 부풀렸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새 정부 들어선지 겨우 일년여 만에 급전직하, 날개없는 추락에 얼굴을 들기가 부끄러운 지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젊은이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 대처에서 민낯이 드러난 바 있다. 사전 대비는 없고, 일이 터지자 갈팡질팡, 책임은 미루고 떠넘기다 하위 실무자들만 처벌당한다. 위기 대처능력 부족에 책임감조차 없다. “내가 간다고 달라질 게 있나?”라는 공통의 발언에 저들의 무능 무책임과 천박한 인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존중이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공복의 자세와 역량이 되어있질 않은 부류들이다. 그러니 정권이 바뀐 뒤 검사정치와 경제악화, 언론장악, 매국적 굴욕외교와 안보파탄 등등 ‘총체적 추락’ 외에는 제대로 기억되거나 이뤄진 치적 자체가 없다. 안팎에서 치룬 행사마다 탈이 나고 뒷말이 무성하다. 잼버리 참사가 벌어진 이유나, 터진 뒤의 황망함도, 탓하고 발뺌하고 쪼잔하게 떠넘기며 덮어씌우는 모양새 역시 한치 다름없는 그들의 공식이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그랬고 잼버리 폭망도 연장선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참사들은 이어질 것이다. 일본의 공범을 자처한 핵폐수 방류도 다가오고 있다.

무능하면 그만 둬야 맞다. 자신 없으면 당장 손을 떼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무능과 무지 무책임의 들보는 외면한 채 남의 눈의 티끌만 헤집고 우겨대니, 답답해 울화가 솟는 고통과 인내는 고스란이 국민 몫이다. 국격 손상 나라 망신에, 땅에 떨어진 민족 자존심을 회복하려면 애먼 국민들이 앞으로 얼마나 땀과 피와 정력을 쏟고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직접 피해자’들이 전세계에서 온 미래의 주역들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후진 현실을 피부와 가슴으로 느꼈을 청소년들의 불쾌한 기억은 앞으로 수 십 년, 대한민국에 드리워질 어둡고 긴 그림자로 남을 것이다.     <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