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김대중 노벨평화상과 트럼프

● 칼럼 2025. 9. 1. 12:3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김대중 노벨평화상과 트럼프

 

 

한강 작가가 지난 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은 복수의 노벨상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첫 번째 영예는 4반세기 전인 2000년에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노벨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한국에 노벨평화상의 영광을 안겨준 김대중 대통령은 목숨까지 노린 독재정권과 평생을 싸워 온 정치인이다. ‘인동초’라는 별칭을 얻은 것처럼 5차례나 감옥살이에 내몰린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파란만장의 정치행로를 걸으며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위해 진력한 백절불굴의 인물이다. 넬슨 만델라에 버금가는 인권정치인으로 국제사회에도 널리 알려졌으니, 노벨상 반열에 오른 것을 이상하게 여길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다른 곳도 아닌 김대중의 모국에서 일어났다. 국가적인 경사로 모두가 기뻐하며 축복해야 할 김대중의 노벨상을 트집잡고, 욕하고, 집요하게 훼방한 세력이 있었으니, 그를 평생 괴롭힌 독재정권의 잔재들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현직이었는 데도 야당과 수구언론은 집요한 수상 폄훼공작을 벌였다. 상을 돈으로 샀다는 둥, 로비로 받아냈다는 등의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심지어 노벨위원회에 “상을 주지 마라, 그만한 인물이 아니다. 상을 취소하라”고 요청한 사실도 알려졌다. 속담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그들에게는 사촌은 고사하고 ‘웬수’라고나 할만한 ‘적수’가 역사에 기록을 남기게 된 대박사건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벨위원회는 “우리는 수년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김 대통령의 투쟁노력을 추적해 왔다”고 선정이유를 분명히 밝히는 한편, 로비설에 대해서는 “맞다. 한국으로부터 로비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기이하게도’ 김대중 정부로부터가 아니라 정치적 반대자들로부터 상을 주면 안된다는 로비가 있었다”고 밝혀 한국민의 낯을 뜨겁게 하며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세계인이 인정하는 수상에 축하는 못할 망정 훼방 로비라니, 제 얼굴에 침뱉기와 뭐가 다른가, 더구나 눈곱만큼의 반성도 아쉬운 가해세력이 오히려 방해공작에 목매다는 꼴은 얼마나 뻔뻔하며 평생의 스토커같은 사악한 짓거리인가.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까지 동원해 ‘김대중 노벨상 취소공작’을 벌인 사실이 밝혀져, 비열과 추잡의 끝판왕이라는 지탄을 들었다.

 

저들의 끈질긴 김대중 노벨상 알레르기는 역시 매국적인 친일수구 DNA와 민족분단을 악용하는 냉전적 사고에서 연유한 열등감의 발로와 생트집이라는 것 외에는 도무지 설명이 안된다.

 

지난 8월18일로 서거 16주기를 맞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극우 후예들의 여전한 발호와 12.3 내란사태를 어떤 심정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을까.

 

 

노벨 평화상은 노벨위원회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사람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권위있는 상이다.

 

노벨상 6개 분야 가운데, 유일하게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대상자를 선정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매년 12월10일 시상한다.

 

문학, 화학, 물리학, 생리의학, 경제학상 등 다른 노벨상이 모두 특정 분야의 학문적 공로와 업적을 근거로 선정해 시상하는 것과 달리, 평화상은 ‘평화 기여’라는 다소 추상적이고 정치적인 업적을 수상자 선정의 기초로 삼는다는 점 또한 노벨상 가운데 유일하다. 다른 분야와 달리 평화상에 대해 종종 논란과 이견이 뒤따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2009년에 취임한지 9개월 밖에 안된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새 대통령에게 아첨한다”며 당시 미국주재 노르웨이 대사가 비난을 받기도 했다. 노벨평화상 후보 접수 최종 시한은 2월1일 이었는데, 오바마는 1월20일 취임했다. 그렇다면 불과 열흘간의 업적으로 수상자에 선정된 셈이니 고개를 갸우뚱할 만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 최초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정치적 성공담 외에 ‘평화업적’은 이제 만들어가야 할 취임 초였다. 노벨위원회는 “국제 외교와 사람들 간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그의 특별한 노력”을 선정이유로 밝힌 게 전부였다. 오바마 자신도 퇴임을 몇 달 앞둔 방송 출연에서 수상이유에 대해 “솔직이 나도 아직 모르겠다”고 실토했고, 2020년 펴낸 회고록에서도 자신이 선정됐다는 소식에 “왜 주지(For what)?”라며 놀랐다고 했다.

 

요즘 국제질서를 멋대로 뒤흔들고 있는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수상이 소원인 듯 하다. 일부 한국사람 중에도 북한과 대화에 성과를 내 평화상을 받으라는 식의 ‘의타적’인 말도 한다.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 가운데 오바마처럼 뒷말이 나오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히틀러나 스탈린, 푸틴, 한국의 전두환 같은 인물이 후보에 추천된 적도 있어 트럼프가 평화상 후보에 추천되거나 설령 상을 받는다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그는 상식의 기준에서 한마디로 ‘깜’이 안된다. 지구촌의 보편적 룰과 약소국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며 이민자 박해와 인종 차별적 정책을 강제하는가 하면, 가진 자와 힘있는 자 편에서 탐욕과 독선의 리더십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인물인 것도 분명하다. 그런 말썽꾼에게 ‘평화상’이라는 고상한 훈격을 부여하는 것이 과연 인류사회에 합당하고 정의로운 일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