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에 사살당한 오사마 빈라덴이 황급히 수장당한 아라비아해는 세계 제일의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빈라덴의 수장은 이 아라비아해의 파고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인가.
실마리는 미국이 그의 죽음을 계기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더 넓게는 아프간-파키스탄 전쟁, 즉 아프팍 전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에 있다. 이는 지난 10년 넘게 전세계에 자상을 낸 테러와의 전쟁의 출구도 된다.

아프간 전쟁은 빈라덴과 알카에다 소탕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소탕이 10년 이상을 끌면서 아프팍은 ‘이슬람 성전지’로 바뀌었다.
애초부터 아프간은 이슬람 전사들인 무자헤딘과 이슬람 무장주의의 메카였다. 1970년대 말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맞서, 이슬람 세계의 피끓는 전사들이 모여들어 소련을 패퇴시켰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중앙정보국이 파키스탄 정보당국을 통해 양성한 전사들이 탈레반이다. 또 아프간에서 싸웠던 무자헤딘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이슬람 무장조직의 근간이 됐다.
알카에다 소탕을 위해 아프간에 들어온 미국은 자신들이 키운 탈레반과 무자헤딘에 발목이 잡혀, 소련이 빠진 수렁에 빠져 있다.

그 수렁의 깊이는 얕을지 몰라도, 넓이는 더 크다. 파키스탄까지 수렁이 됐기 때문이다. 아프간전의 여파는 파키스탄 탈레반을 탄생시켰고, 아프간과 접경한 북서변경주의 연방부족자치지역인 와지리스탄 등은 파키스탄군도 진주하지 못하는 사실상 독립국가가 됐다. 미군이 이 지역을 무인기로만 타격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잘 말해준다. 2009년 봄 파키스탄 탈레반은 연방부족자치지역에서 벗어나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으로 100㎞ 떨어진 도시 부네르까지 함락하며 ‘파키스탄 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파키스탄은 다른 이슬람국가와 차원이 다르다. 인구는 1억6000만명으로 인도네시아에 이어 이슬람권의 두번째이고, 백만 대군과 핵무기까지 보유했다. 무엇보다도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위상이다. 걸프지역으로 들어가는 아라비아해에 접했다. 서쪽으로는 이란, 북쪽으로는 아프간과 옛소련의 중앙아시아 지역과 이웃하고 있다. 이제 하나로 묶인 아프팍이 이슬람주의 지대가 되면, 서방으로서는 아라비아해 접근이 위협받는다. 특히 새로운 석유지대인 중앙아시아 접근이 봉쇄된다.

미국은 빈라덴을 잡으려다 아프팍이 이슬람주의 지대가 되는 위기에 봉착했다. 이제 미국은 빈라덴의 죽음으로 아프팍 전쟁에서 탈출할 명분을 잡았다. 이미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은 공공연히 거론된 상황이다.
빈라덴의 죽음을 발표한 오바마의 기자회견에 앞서 한 미국 관리는 “알카에다가 없다면 우리는 탈레반과 타협할 수 있다. 탈레반은 여러 제3세계 내전의 단지 한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오는 7월로 예정된 아프간 주둔 10만 미군 병력의 철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미국이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에 적극 나서서 아프팍 정세가 안정된다면, 빈라덴의 죽음은 평화로 가는 길이 될 거다. 테러의 공포를 일상화한 고통스런 ‘9.11 시대’를 종료할 출구가 될 거다.

미국은 과연 그 길을 걸을 의지와 역량이 있을까? 알 수 없다. 미국은 파키스탄 군부와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에 건성으로 참가했다며 그들을 믿지 못한다.
나치 점령 프랑스에서 저항운동을 한 클로드 모르강은 저항운동가들의 희생과 결단을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란 책에 담았다.
아프팍 전쟁을 종료하지 못하고, 9.11 시대의 출구를 못 찾으면, 아라비아해는 ‘꽃도 코란도 없는’ 빈라덴의 거대한 해릉이 될 것이다. 아마 이슬람 전사들이 그 무덤에 꽃과 코란의 성구를 뿌리며, 아라비아해의 파고는 더 높아질 것이다.

<한겨레 국제부 정의길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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