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6일 만에 러시아 출전 금지 결단

UN 결의안 명분 삼았던 유고·남아공과 달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6년 11월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2017 피파 컨페더레이션스컵 공인구를 차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축구는 현재 완전히 단결했고, 충격에 휩싸인 우크라이나의 모든 이들과 전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난 1일 발표한 성명의 일부다. 이날 피파와 유럽축구연맹(UEFA)은 이들 단체가 주관하는 모든 국제 대회에서 러시아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의 참가를 금지했다. 곧장 러시아는 2022 카타르월드컵 출전 길이 막혔고, 유로파리그 16강에 올라 있던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는 실격 처리됐다. 전례 없는 속도의 강경책이다.

 

피파는 수시로 회원국에 출전 금지 결정을 내려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인 지난달 24일에는 케냐와 짐바브웨가, 지난해 4월에는 파키스탄이 국제 대회 활동 자격을 박탈당한 바 있다. 정부나 제3세력이 축구협회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축구 단체 바깥의 정치 상황이 징계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는 두 가지다. 1992년 발칸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켰던 유고슬라비아와 1961년 억압적인 인종분리정책을 펴면서 백인으로만 구성된 팀을 고집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피파의 제재를 받았다.

 

러시아 퇴출 결정은 이 둘과 다르다. 당시에는 유고의 잔학행위와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국제연합(UN) 결의안이 먼저 나온 뒤에 이를 근거로 피파의 결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앞서 지난달 2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우크라이나 공격 중단과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부결됐음에도 피파는 과감한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

 

‘제재(Sanction)’이라고 적힌 플라스틱 글자가 피파 로고와 러시아 국기 앞에 놓여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늘 ‘신중파’였던 피파를 움직인 것은 결국 국제 여론이었다. <이에스피엔>(ESPN)은 “피파는 정치 기관이 아니라 스포츠 기관이다. 유엔 지지 없이 정치적인 이유로 한 나라를 몰아내는 일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면서 “피파는 충분한 대중적 지지를 확인하고 싶어했다”고 설명했다. 폴란드와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10개국 축구협회가 앞장 선 러시아 보이콧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8일 발표한 러시아 퇴출 권고안이 유엔의 대체재 구실을 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한쪽에는 피파의 이중잣대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에스피엔>은 2003년 미국이 유엔 안보리 승인 없이 영국·호주·폴란드와 연합해 이라크를 침공했던 일,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을 공습한 일 등을 예시로 들며 당시에는 이들 국가에 대해 피파가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스포츠계의 국제적인 러시아 퇴출 움직임은 가파르게 확산하고 있다. 2일 기준 축구를 비롯해 럭비, 테니스, 육상, 사이클, 볼링, 배드민턴, 농구, 스키, 빙상, 아이스하키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러시아를 몰아냈다. 박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