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여당, ‘세월호 피로감’ 띄우기 전략
극우시각 자극·잔인한 외면·왜곡·편가르기

“지나가면서 욕하지 마세요. ‘안전한 나라 만들겠다’는 걸 비방하는 사람도 있겠죠. 저희 애들의 죽음으로 인해 여러분들 가정을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그 진심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원고 학생 고 오영석군의 어머니 권미화(40)씨가 가슴을 쳤다. 권씨는 다른 유족들과 함께 청와대 들머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31일로 열흘째 농성중이다. “사람들이 우리 옆을 지나가면서 ‘저것들이 밥도 먹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고 이근형군의 아버지 이필윤(55)씨도 아들을 잃었을 때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씨는 “길 가다가 우리를 향해 소리 지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날 낮에도 50대 남성이 웃옷을 벗어젖히고는 “제발 좀 가라. 여기서 떠나라”며 난동을 부렸다. 등산복 차림의 60대 남성 3명도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소리치며 지나갔다. 이씨는 “진실이 왜곡되고 있다. 몸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다”고 했다.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비방과 정치적 왜곡, 비아냥 등 ‘2차 가해’가 노골화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이 ‘민생’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몰아가는 청와대와 여당, 보수언론이 ‘세월호 피로감’을 집중 제기하는 상황에서, 단식농성장 근처에서 일부러 치킨을 시켜 먹는 수준 낮은 행동까지 벌어진다.
 
극단적으로 돌출적이고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제외하더라도, 최근 나온 한국갤럽의 ‘데일리 오피니언’ 등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특별법 제정 국면 장기화로 ‘피로감’은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이 의도적인 방치와 시간끌기로 이런 피로감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산된 전략이라는 것이다.
홍재우 인제대 교수(정치학)는 “한국 사회는 이슈 회전 속도가 빠른데, 이에 따른 자연적 피로 현상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공동체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훈련이 안 돼 있다”고 했다. 홍 교수는 “그러나 현재 ‘세월호 피로감’의 상당 부분은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의 전략 성공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자녀 특례입학이나 보상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여당은 세월호 문제를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정치 문제로 만드는 데 ‘악의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특례입학이나 보상금은 유족들이 요구하지 않은 사안들이다.
 
‘편가르기’로 문제에 접근하는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세월호 피로도’를 높이려고 대통령이 전략적이고 계산적으로 유가족들을 만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잔인한 일”이라고 했다. “국민들 눈물을 닦아주는 ‘어머니 이미지’를 자주 통치에 활용한 박 대통령이 정작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이다. 청와대 코앞에 와 있는 유가족들의 요구에는 귀를 닫은 채 뮤지컬을 보러 가는 모습이 단적인 사례라고 했다.
 
청와대·여당 태도가 극우적 의견 표출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청와대와 여당 입장이 불분명할 때는 유가족 비아냥은 개인의 일탈로 비쳤다. 그러나 유가족을 만나지 않겠다는 대통령과 수사권·기소권은 안 된다는 여당 입장을 확인한 이들이 공개적으로 조롱과 비방에 나서고 있다. 전체적으로 대단히 정치적이고 계산된 나쁜 행위들”이라고 했다. 한편 새누리당 지도부는 꽉 막힌 세월호 정국을 풀어보려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 시도조차 거부하며 ‘청와대 지키기’에 집중하겠다는 속뜻을 드러냈다. 정당정치의 본질인 타협과 양보를 ‘꼼수’에 빗대며 국회 파행을 정당화하는 주장도 나왔다.
< 진명선 서영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