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로는 훌륭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에는 반대했기에 대한민국 공로자로 거론하는게 옳지 않다”는 발언이 나왔습니다. 이인호 <한국방송> 이사장의 말입니다. 또한 “상해(상하이)임시정부는 임시정부로 평가받지 못했고, 우리가 독립국민이 된 것은 1948년 8월15일 이후”라고 했습니다.
이 발언을 접하고 우선 황당했습니다. 우리 역사의 소중한 부분이 더럽혀진 듯한 불쾌감이 더해졌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봅니다. 김구 선생은 어떤 분이고, 그와 대한민국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누구나 알다시피 선생의 호는 백범입니다. 백정과 범부에서 한 글자씩 따왔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옥살이하면서, 그는 독립정부가 되면 청사의 문지기로 뜰을 쓸고 죽을 수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낮은 위치에서 독립에 헌신하겠다는 그 자세만으로 마음에 울림을 안겨줍니다.
1919년 3월1일부터 온 동포가 독립만세를 부르고 피를 흘렸습니다. 그 함성과 피흘림을 토대로, 그해 4월 중국 상하이에 애국지사들이 모였습니다. “민주공화제”로 다스려질 “대한민국”이 거기서 탄생했습니다. 일본은 이를 가짜정부라 칭했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대한민국 정부”였습니다.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몇십년간 주지(主持)해온 절대공로가 있습니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는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였고,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을 밝혔습니다. 1919년 건국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이를 재건한 게 1948년입니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1919년부터 1948년까지의 독립운동 과정의 산물입니다. 나아가 현행 헌법(1987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법통을 지켜낸 김구 선생을 삭제한다는 것은 역사 말살이고 헌법 왜곡입니다.
일제가 물러난 1945년 8.15는 불행히도 분단을 내포한 해방이었습니다. 강대국이 일방적으로 그은 38선을 지우고 온전한 한 몸으로 독립함은 절대과제가 되었습니다. 선생이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은 “나의 소원”이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미-소 냉전에 편승한 남북의 정치세력들은 한 몸을 둘로 쪼개는 데 가담합니다. 어차피 쪼개질 수밖에 없다면 반쪽이라도 차지하자는 게지요. 그러나 선생으로서는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한 아이를 쪼개어 갖자는 엄마가 진짜 엄마일까요.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구차한 안일을 위해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 협력하지 않겠다”는 선생의 읍소는 솔로몬 재판에서 진짜 엄마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김구와 김규식의 북행길도, 분단을 막기 위해선 최후의 일각까지 분투하겠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가능성이 아닌 당위성의 차원입니다. 북측과의 교섭도 무위로 끝난 뒤, 그들은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서울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에 안겨준 후광효과도 적지 않습니다.
선생에게 민족분단은 전쟁을 초래할 “시한폭탄”이었습니다. 그가 흉탄에 쓰러진 지 만 1년 뒤, 그의 우려대로 “시한폭탄”은 6.25전쟁으로 터지고 말았습니다. 엄청난 참화를 빚은 뒤에도, 지금까지 우리 민족은 분단의 사슬에 발목잡히고 가위눌려 있습니다. 선생의 발걸음은 민족적 재앙의 항구화를 막기 위한 충정이었습니다.
현행 헌법에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평화적 통일정책을 추진”함을 명시했습니다. 40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 국민은 분단 아닌 통일, 무력 아닌 평화를 추진하자고 합의했습니다. 선생의 깃발을 이어가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닙니다.
이렇듯 선생의 생애는 대한민국의 바탕이고 상징입니다. 현실정치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뚜렷한 이정표를 남겼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가면서 발걸음을 어지럽게 말라,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는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선생의 삶을 감히 흉내 내기도 어렵습니다만, 그의 애국충정에 재 뿌리는 짓은 막아야 합니다. 선생의 헌신에 터 잡아 만들어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한 의무이기도 할 테지요.
< 한인섭 -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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