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2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 대해 내란음모는 무죄,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은 유죄로 각각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이 내란죄에 대해 엄정한 법리를 세우려 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억지스러운 논리로 선동죄라도 씌우려 한 데서는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은 그동안에도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려면 내란 실행의 합의와 실질적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고 판례를 통해 밝혀왔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를 더욱 구체화했다. 대법원은 내란음모의 합의는 단순히 내란을 논의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폭동의 대상과 목표가 설정돼 있고, 실행계획 등 주요 사항의 윤곽을 공유하고, 실제 실행으로 이어지리라고 다들 생각하는 정도의 ‘확정적 합의’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질적 위험성’도 내용의 구체성이나 합의의 강도, 사전 준비나 사후 후속조처 여부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런 기준에 따라 말만 한차례 오갔을 뿐 아무런 준비나 추가 조처도 없었던 이석기 그룹의 행동은 내란음모일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이 내란 주체로 지목한 ‘아르오’(RO)도 실체가 없다고 판단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이나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과거의 내란죄 조작 사건도 이 기준에선 당연히 무죄다.


내란선동에 대한 유죄 논리는 실망스럽다. 내란 사건에서 음모와 선동의 유·무죄가 갈린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대법원은 내란음모에 적용했던 엄격한 법리를 내란선동에선 외면했다. 대법원은 선동에선 내란의 구체적 내용을 제시할 필요도 없고, 선동의 대상자들이 실제 그런 행동을 할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밝혔다. 이들의 내란 결의를 유발하거나 높일 위험성만 있으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란음모죄에 적용했던 ‘실질적 위험성’과는 판이하게 낮은 기준이다. 이런 식이라면 정치적 소수파의 정부 비판이나 과격한 선동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크게 침해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정치선동에 대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어야 처벌한다고 거듭 밝혀온 것도 이를 우려한 때문이었다. 이 의원의 연설이나 장난감 총 따위를 언급한 모임 참석자의 발언 등에 그런 ‘명백한 위험’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러니 ‘억지 절충’이란 말이 나올 만하다. 대법원 판결이 다소 실망스럽기는 해도 헌법재판소의 얼토당토않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비할 바는 아니다. 대법원이 ‘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달리, 헌재는 정체도 불분명한 ‘주도세력’의 성향을 들어 당 전체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또 ‘실질적 위험성’을 엄격하게 판단하기는커녕 주도세력의 ‘숨은 목적’을 ‘추정’해 정당의 강제해산을 정당화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헌재는 더욱 정당성과 존립 근거가 흔들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