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원옥 할머니, 애창곡 음반 낸다

● COREA 2016. 9. 13. 19:23 Posted by SisaHan

녹음중인 길원옥 할머니

험난한 인생 지탱해준 힘이고 친구였던 노래들
20여곡 녹음… 여성인권활동가에서 이젠 가수로

눈물로 76년 간직했던 가수의 꿈 이뤄 “비행기 탄 것 같아요”

“옛날부터 가수가 참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는 바람에) 기회가 안 닿았죠. 이제라도 꿈을 이루니 날아갈 것 같아요. 비행기를 탄 것 같아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88) 할머니가 ‘가수’가 되는 꿈을 뒤늦게 이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길 할머니가 ‘한 많은 대동강’ ‘아리랑’ ‘눈물 젖은 두만강’ 등 젊은 시절부터 즐겨 부르거나 실향민의 아픔을 담은 20여곡을 담은 음반 녹음 작업을 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길 할머니는 2~3개월 전부터 음반 작업을 준비해 지난 2일부터 녹음실에서 녹음에 들어갔다고 한다.


1928년 평양에서 태어난 길 할머니는 1940년 일본군에 의해 중국 하얼빈에 있는 위안소에 끌려갔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때 길 할머니 나이는 13살이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노래를 참 좋아했던, 가수가 되고 싶던 소녀는 전쟁과 식민지배의 상처를 안은 채 88살이 됐다. 길 할머니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1940년의 그날 이후, 76년간 노래는 할머니의 험난한 인생을 지탱해 준 힘이고 친구였다. “쓸쓸할 때 혼자 있으면, 노래 부르는 게 일이었어요. 노래가 내 친구라고 할까요. 노래를 부르면 힘들고 어두운 일은 잊게 되거든요.”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사실은 사람이고 여성이다. 저마다의 꿈과 재능이 있었지만, (일본군에) 끌려간 순간 그 꿈과 재능도 다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며 “더 늦기 전에 할머니가 빼앗긴 꿈과 재능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드리자는 취지”로 음반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길 할머니는 평소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워낙 잘해 몇 년 전부터 음반 제작을 권유받았지만, 건강 문제로 이 일을 뒤로 미뤄왔는데, 지난해부터 길 할머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더 늦기 전에 음반 제작에 들어가게 됐다. 음반 제작은 민중가요 작곡가 윤민석씨가 맡았으며, 음반은 올해 안에 완성될 예정이다.
정대협은 길 할머니의 음반이 단순한 노래를 넘어 역사적 증인으로서 할머니의 존재를 기록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넘어 저마다의 꿈과 가능성을 가진 개인들로 확장해 기억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윤 대표는 “길 할머니는 우리에게, 그리고 후세대들에게 여성 인권활동가일 뿐만 아니라 가수로도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 허승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