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아마 들어서 알고계신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한 이 말은 언론의 중요성과 막중한 사명을 웅변해주는 고전으로 통합니다. 설령 정부는 없을지라도 신문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제퍼슨의 역사적인 그 언급에, 여러분은 동의하실 수 있겠습니까?
지난 9월22일 한겨레신문은 최순실과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을 처음 보도하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엽니다. 한겨레가 연속 보도를 이어가던 한달 뒤 JTBC가 ‘테블릿PC’를 제보받아 보도하며 게이트는 크게 확산됩니다. 첫 보도 이후 3개월여, 나라 안팎은 국정농단 진상규명의 와중에 엄청난 화병을 앓고 있습니다. 연 1천만 명이 넘는 국내외 동포들이 광장에 쏟아져 나와 규탄 함성을 외쳤습니다. 마침내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가결에 이어 헌법재판소에 운명을 맡기게 됐습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이 천지에 진동했습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 나라가 망가지고 국민이 고통받는 참담한 현실 앞에 대통령의 고향 사람들도 “잘못 뽑은 과오를 반성한다”고 선언합니다. 오죽하면 그의 든든한 배경이던 고향마저 등을 돌렸겠느냐는 것입니다. 대통령 지지도가 5%를 밑돌고,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70%이상이 탄핵을 찬성합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지도자를 잘못 세운 데 분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지도자를 잘못 뽑은 걸까요? 박근혜라는 인물의 실상과,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평가분석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지난 대선 때 그에게 표를 주었을까요? 무려 40년 이상 됐다는 박근혜-최순실의 관계, 박정희 시대부터 내려 온 최태민 일가의 권력농단 사실들이 숨김없이 알려졌다면, 오늘날의 이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을 리가 없습니다.
이번 거대한 국정농단 게이트의 실마리는 그동안 몇 차례 수면 위로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정윤회 ‘십상시’ 문건이 불거졌을 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문건내용의 사실여부는 덮어두고 유출한 것이 국기문란이라고 역공하고 호도하는 것을 거대 공영방송과 이른바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이 대서특필합니다. 억울하게 누명에 몰린 한 경찰관이 자살하고, 문건을 보도한 신문사는 세무조사 압박에 사장이 해임되는 일도 벌어집니다. 사건의 본질인 문건내용은 어디론가 사라져갔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TV조선이라는 종편이 우병우의 전횡과 미르재단 강제 모금의혹을 보도합니다. 하지만, 청와대가 “조선일보의 인사청탁을 들어주지 않은 화풀이 보도”라며 ‘부패 기득권세력’이라고 공박하고 신문사 주필의 부정한 향응사실을 폭로하자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맙니다. 그렇게 또 국정농단의 단초들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습니다.
한겨레의 용기있는 추적보도와 JTBC의 후속폭로가 없었다면, 박-최 게이트는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릅니다.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했다고 하니 아마 임기말까지 덮어뒀다면, 국정 시스템과 공직기강이 무너지고 권력이 사유화되어 나라가 회복불능의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까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합니다.
고려 말 신돈의 왕정농단 이래 한국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다는 박-최의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키워드가 된 언론-, 참 언론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1천일이 지나갔습니다. 지금도 눈물로 지새는 유족들과 함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1천만 명의 시민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엄청난 참사의 원인규명을 방해하고 유족 모욕을 조장한 불의한 정권은 그들이 장악한 언론을 나팔수로 활용했습니다. 진실을 쫓는 언론은 블랙리스트에 올려 핍박했습니다. ‘영혼없는 언론’들은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진실을 덮고,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선전도구가 됐습니다. 법원에서 무죄로 증명했는데도 광우병 쇠고기 보도를 매도하고 지금까지도 그 실상을 오도합니다. 정상회담 대화록 논란, NLL(북방한계선) 파문, 국정원 댓글 사건 등등 권력에 아부하며 실체적 진실은 외면한 채 오직 정권 홍보에만 열심을 다한 ‘무골(無骨)’ 언론들로 인해 많은 국민들은 어둠 속에서, 거짓 속에서 허상을 보며 살아오다가 결국 국정농단의 태풍을 만난 것입니다.
이제야 그 실체를 알게 된 국민들이 울화통을 터뜨리는 것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런데도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면피하려는 그 ‘영혼없는’ 일당들은 참 가련합니다. 그들에 영합하여 여전히 열화같은 질타 속에서도 어둠과 거짓의 세력에 미련을 보이는 골수 ‘무영혼’의 언론들 행태야말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사회적 흉기’라고나 해야 맞을지,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햇볕이 들지않는 음습한 곳은 곰팡이가 일고 썩어가게 마련입니다. 거짓이 가득한 곳에 믿음과 생명과 정의가 자리잡을 수 없습니다. 언론은, 신문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며 거짓을 비추는 거울이요 참된 사회적 공기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시사 한겨레가 걸어 온 길에도 눈물의 흔적이 선연합니다. 이민 동포사회라고 해서 어둠의 세력이 그 촉수와 냄새를 거둬들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시사 한겨레가 12년, 20년을 내다볼 수 있도록 아껴주시는 많은 분들의 사랑을 확인하며, 이 곳에 참된 언로의 지형을 개척했다는 보람과 자부도 감히 느끼게 됩니다. 어둠이 걷힐수록 시사 한겨레를 향한 기대와 응원도 커지리라는 믿음과 함께 새로운 의지를 다져봅니다.
시사 한겨레는 꿋꿋이 그리고 묵묵히 여러분 옆을 지키겠습니다. 변함없는 애독과 성원에 감사드리며, 더욱 큰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 김종천(金鍾天) 발행인 겸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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