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리아에게 몇 살이냐고 물으면 아이는 검지와 중지로 브이 자를 만들며 “두 샬” 하고 자신 있게 외친다. 이를 본 어른들이 엄지를 세워주며 세 살임을 강조해도 아이는 부자연스런 손가락을 접으며 “아니야, 리아는 두 샬이야.” 하며 팔을 더 높이 치켜든다. 숫자 3 으로 도배된 생일잔치를 한 지 두어 달이 지났건만 아이의 인지는 아직도 세 살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나 보다. 아이의 생떼가 요즈음 내 마음과 같아서 “그래 세 살은 하고 싶을 때 하자.” 며 아이를 안아서 볼을 부빈다.


새해가 되면 떡국과 함께 자연스레 한 살씩 더해지던 나이를 몇 년 전부터 생일날로 미루곤 한다. 서양에 살면서 나이도 여기의 관습에 맞춰야 한다는 지론에서다. 하지만 막상 생일이 되면 ‘한 달 남짓 남은 새해에, 그러다가 설날에… ’ 하면서 고무줄 늘어뜨리듯 나이를 마음대로 늘려 잡기 일쑤다. 그러다 때때로 정확한 내 나이를 읊어보곤 우울한 기분에 들기도 한다. 수명 백세시대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쇠퇴해 가는 신체의 기능은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가능했던 일들이 하나 둘 줄어드는데 대한 상실감 내지 무력감에서 애꿎은 나이만 탓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이런 나를 꾸짖기라도 하듯 최근 모 방송국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지리산 어느 할머니의 일상은 죽비로 내리치듯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시리즈로 방영된 일주일 동안 잔잔한 여운과 함께 끌어 올려진 긍정의 힘은 앞으로의 삶에서 나이는 큰 제약이 아님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된 셈이다.


지리산 해발 700 m 고지의 어느 골짜기에 한 평생 억새풀처럼 살아가는 채옥(76세) 할머니가 살고 있다. 지리산에서 나고 자라 현재의 지리산 자락에 일가를 이룬 할머니는 이십 초반에 아들 하나를 얻자마자 청상과부가 되었다. 지리산 하면 산세 험한 것은 기본이요, 자연 또한 여자의 힘만으로 대항하기 벅찬 그곳에서 바람이 불면 바람결 따라 누웠다가 일어서고 한파가 몰아치면 그 속에서 강인함을 키워 새움으로 발돋움하기를 칠십 여년, 지금은 지리산의 일부분이 되어 어두운 주변을 환하게 밝히며 쉼 없이 달리고 있는 할머니이다.
카메라 앵글은 할머니의 사계절 활동영역을 가감 없이 잡아주었다. 가을철이면 자신의 인생역정을 닮았다는 억새풀을 베어다 말리고 간수하여 간편한 플라스틱 지붕 대신 억새 지붕만을 고집하는 우직함, 눈 쌓인 산야를 돌며 나무 삭정이를 주워 나르면서도 야생동물이 지나는 자리에 먹을거리를 놓아주는 따뜻함, 산비탈을 개간하여 힘들여 지은 농산물을 거동이 불편한 형제자매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나눠주고 돌보아 주는 가족애, 기억자로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며 봄에는 산나물 채취, 여름엔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며 삶을 영위해 가는 꿋꿋함 등에서 노년기의 허망함 따위는 발붙일 틈이 없어보였다. 할머니의 일상사를 들여다보며 문득 이런 말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렇게나 사는 마흔 살 사람보다 열심히 일하는 일흔 살의 노인이 더 명랑하고 희망적이다.’ 라는.


할머니의 일상에서 특이한 점은 세상과 단절된 환경이나 노령에 굴하지 않고 의욕과 노력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음이다. 다른 사람들이 운전대를 놓을 시기에 어렵게 운전면허를 따서 자신은 물론 이웃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는가 하면, 겨우 한글을 터득한 수준으로 컴퓨터를 배워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한다. 철철이 주변 환경을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리면 그녀의 팔로워들은 지리산 자연을 간접으로 접하며 감사의 댓글을 올린다. 담당 PD에게 답글을 일일이 올려주고 싶어도 글 쓰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은 애잔함을 넘어 찐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디 그뿐인가. 평생 노동으로 인해 굳고 뭉툭해진 손으로 피아노를 배운다. 그리고 매일 밤 방바닥에 엎드려 일기 쓰기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시시때때 ‘바쁘다 바빠’ 하고 외치면서도 피아노 연습과 일기 쓰기에 열중인 할머니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래 한곡 제대로 쳐 보는 것과 어설프지만 자신의 삶을 시로 표현해 보는 것이라 한다. 앞으로도 배우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힘은 들어도 신이 난다는 그녀는 발그레한 볼을 감싸며 열일곱 소녀의 모습으로 잠시 카메라를 응시하다가 방바닥에 납작 엎드린 낡은 전자오르간에 손을 올린다. 지리산 눈 속에 파묻힌 조그만 초가에서 할머니의 숨결 같은 피아노 소리가 한음 한음 따뜻하게 이어지며 끝을 맺었다.


소박하면서도 담백하게 엮어낸 다큐멘터리가 감동을 주는 건 주인공 할머니의 진솔하고 희망적인 메시지가 전면에 포진하고 있었음이리라. 물리적인 거리, 신체적 불편함, 고령의 나이 등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삶을 열심히 개척해 가는 긍정적인 할머니의 모습에서 나의 미래를 꿈꾼다. 나이는 그냥 숫자일 뿐, 불모지를 개척하듯 다방면으로 꾸준히 일구어 가꾸는 일에 매진하리라 다짐하면서.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