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살 게 없어도 나는 자주 시장엘 간다. 시장도 백화점처럼 공간이며 품목에 나름의 질서가 있고, 그 속의 사람들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이건만 지루함을 모르겠으니 시장을 찾는 건 일종의 습관이 아닌가 싶다.
무심한 듯 지나치면서도 양말 더미에 기대 곯아떨어진 아줌마, 무표정하게 다리 뻗고 앉아서 날마다 밤을 까는 할머니, 사모님 소리가 입에 붙어버린 정육점 총각, 물 건너온 덕에 비싼 가격표를 붙이고 배배 말라가는 체리 따위를 눈여겨본다. 그러면서 걱정도 한다. 붙박이 상인 누군가 나를 익숙한 사람으로 바라볼까봐. 뭘 그다지 사지도 않으면서 자주 나타나는 여자라고.
올여름 지겨웠던 비 때문에 어느 상점이고 물건이 시원치 않다. 부실한 채소나마 양이 부족하고 값도 만만찮으니 명절대목의 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 씁쓸하다. 이맘때만 보이는 애호박이 있어 냉큼 사들고 가다가 시장 끄트머리 횡단보도 앞에서 문득 발이 멎었다.
“한 바구니에 만원!”을 외치는 젊은 여자 목소리. 온종일 외쳤는지 허스키한 목소리의 그녀는 잘해야 삼십대 중반으로밖에 안 보였고 시장 나들이가 익숙한 내게 낯선 사람이었다.
한 바구니에 만원이라는 물건. 푸른 사과다. 길바닥에 늘어놓은 탓인가 낙과처럼만 보이는 사과 더미 속에서도 여자 목소리에는 단호한 무엇이 있었다. 바구니마다 대여섯개씩 담아놓고 목 언저리가 붉어지도록 외치는 그녀에게 끌려 사람들이 푸른 사과에 눈길을 주곤 했으니.
어서어서 팔아치우고 돌아가야 한다는 듯 그녀는 재빠른 손놀림과 남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 꿋꿋함으로 손님을 불러 세우곤 했다. 어떤 아이의 엄마일 것만 같은 사람. 그러지 않고서야 저리 용감할 수 있겠나.
그런데 별안간 “한 바구니에 만원!”을 외치는 그녀에게 “떨이요, 떨이!”를 외치던 엄마가 겹쳐졌다. 나도 모르게 찡그리며 돌아섰으나 횡단보도의 신호가 끝나도록 나는 발목이 잡힌 채 서 있었다.
곁눈질조차 안 하는 그녀를 나는 한참 바라보았다. 그저 구경이나 하려던 손님을 기어이 붙잡아 덤까지 얹어주며 팔고 재빨리 다른 손님을 향해 손 까부르는 여자. 저기에 엄마가 겹쳐질 게 뭐람. 어쩌자고.
나는 내 가슴에 깊고 커다란 구멍이 있다는 걸 안다. 그건 평소에 바늘이 찍은 점처럼 희미하지만 너무나 외로울 때면 내 등 쪽을 시커멓게 뚫어버리고 감당할 수 없게 시린 바람을 일으키는 구멍이다. 그 구멍에 내 엄마가 살고 있다.
5일장을 따라다니며 생선과 꽃게를 팔았던 엄마한테서는 늘 비린내가 났고 지문이 닳고 자주 피가 터져서 손가락에는 반창고가 친친 감겨 있었다. 떨이도 못하고 막차마저 놓치고 나면 하염없이 먼 밤길을 걸어오던 엄마. 그런 엄마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나가 서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왜 안 자고 나와 있느냐는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넬 줄 모르는 엄마를 나는 정말 싫어했고, 공부 작파하고 일찌감치 돈 벌러 나가라는 성화를 들은 척도 않는 나는 엄마가 징글징글하게 여기는 딸이었다.
우리가 엄마와 딸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비껴나갔을 텐데, 인연은 때로 너무 가혹한 것이라서 끝내 속을 파 먹히는 아픔을 남기고야 만다. 병든 몸은 마비되어 가는데 정신은 너무나 말짱해서 괴로워했던, 내가 벌을 받는 거라면 죽은 꽃게를 섞어 팔았던 게 죄였다고 말하던 엄마. 내 깊은 구멍이 엄마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나는 잘 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못하고 보낸 엄마를 오늘 시장 귀퉁이에서 만났다. 엄마, 잘 계시나요. 그래야만 해, 꼭. 거기가 어디든지.
<황선미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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