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감사 인사에 대한 생각

● 칼럼 2018. 7. 11. 14:43 Posted by SisaHan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북한에서 감사 인사는 정해진 두 사람에게만 가능했습니다. ‘김일성 대원수님 고맙습니다’, ‘김정일 원수님 고맙습니다’. 유치원에서 우리말을 처음 배울 때부터 북한을 떠날 때까지 감사의 모든 인사는 이 두 개의 문장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참으로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 문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감사 인사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연말 시상식 때입니다. 상을 타는 연예인들 하나같이 누구누구에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길게 나열하고도 또 빼먹지 않았는지 전전긍긍하면서, 그러곤 맨 마지막에 자신의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까지 감사하다는 말로 마무리되고 있었습니다. 참 낯간지럽게 뭐 하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굳이 저렇게까지 아부를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어쩌면 저 사람들은 사는 게 너무 피곤할 것 같다고 걱정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북에서 한국에 오신 후 제일 낯선 것도 바로 아버지가 시시때때로 하시는 ‘감사합니다’ 이 말이었습니다. 하나원에서 어떻게 교육을 했는지, 딸인 저에게도 꼭 잊지 않고 ‘감사합니다’라고 하십니다. 첨엔 몸 둘 바를 모르다가 나중에는 ‘무슨 인사말 교육을 이렇게 했지?’ 하면서 애꿎은 하나원만 나무랐습니다.
어찌 되었건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빼먹지 않는 아버지 덕에 사람들은 아버지를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말을 하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소회 발표에 나가서였습니다. 학위를 받고 나니 지도교수님부터 교내의 모든 교수님께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공부한 모든 학우에 감사했습니다. 나아가 힘들어서 떠났던 북한에도 감사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떠나야만 했던 북한, 그렇게 떠난 북한이 있었기에 오늘날 나의 모습이 있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북한에서 함께했던 모든 동료에게, 좋았던 친구들만이 아닌 그렇게 나를 못살게 했던 기관 책임자에게도 감사하다고 논문에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괜히 그랬다가 공연히 그들에게 해가 갈까봐 차마 언급은 하지 못하고 소회의 자리를 빌려 그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는 졸업식에 참석했던 분들은 저를 두고 참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초기의 저처럼요.

그리고 몇 달 전 결혼식을 전후로 내 생에 그렇게 많은 감사함을 표현한 적은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그렇게도 이해가 안 되었던, 귀찮고 번거롭고 낯간지럽게 생각했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는 나 자신에 놀랐습니다. 그것도 이젠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관심을 준 모든 분에게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인사했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피곤하고 지칠 만도 한데, 그렇게 감사함을 표현하니 오히려 기분 좋아지고 관계는 더욱 좋아졌습니다.

지난 6월, 역사적인 북-미 회담 직후 이 회담을 위해 애써준 여러 관계자에 일일이 감사함을 표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았습니다. 이젠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감사 인사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 진나리 - 대학원 박사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