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완화’ 없는 답방?
2차 북미회담 내년초로 미뤄져
‘답방 먼저’ 매력적 선택지 아냐
한미정상 “제재 유지” 메시지
김 위원장 의중과 달라 두문불출

북 ‘추가 비핵화’만이 동력
미 “추가 조처 땐 제재 해제 검토”
북쪽에 밝혔지만 접점 못 찾아
“트럼프 결심 이끌어낼 방안
답방해 문 대통령과 숙의해야”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사랑채 부근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설치돼 눈길을 끌고 있다. 연합뉴스


“2차 북-미 정상회담→종전선언→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순으로 풀려가는 게 순리라고 본다.” 10월 초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언론에 한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9월 평양회담’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으로 한반도 정세에 숨통이 뚫렸다는 낙관이 강하던 때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에 “다 잘될 것”이라면서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내년 1~2월께”로 미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할 북-미 고위급 회담은 몇달째 오리무중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추가적인 모멘텀을 제공할 것”이라는 데 한·미 정상이 의견을 함께했다는 11월30일 회담 결과 발표는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남북의 애초 계획과 달리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앞당겨 교착 국면 돌파와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포석 변경이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문 대통령의 이런 선택은, 김 위원장과 미리 조율된 게 아니다. 김 위원장의 ‘화답’이 아직도 없는 까닭이다. 사실 ‘답방 먼저’ 제안은, 김 위원장한테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라는 게 전·현직 고위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미국의 강력한 대북 제재 기조 탓에 세차례 정상회담에도 대규모 경협 프로젝트를 실행하지 못하는 남북으로선,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추가 비핵화-제재 유연화’ 맞교환을 동력으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대규모 경협 실행 약속으로 나아가는 순서가 이상적이라 여겨온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침묵이 ‘거부’의 동의어는 아니다. 무엇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으로선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의 창”이다. 외교안보 분야 고위 인사는 “김 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반드시 성사시키려 할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도 지금까지 ‘하겠다’고 밝힌 중요한 정책 결정을 실행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짚었다. 전·현직 고위 관계자들이 “어찌 됐든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열릴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 배경이다.

김 위원장의 ‘결심’은 한-미 및 미-중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정보 수집·분석을 거쳐 이뤄질 전망이다. 그런데 “완전한 비핵화 달성 전까지 제재 유지”라는 한·미 정상의 발표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과 관련해 100% 협력하기로 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김 위원장이 듣고 싶어 한 메시지가 전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김 위원장이 두문불출하며 고심하는 까닭이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 유연화’ 결단을 확실하게 이끌어낼 묘수 찾기”에 고민의 초점을 맞출 텐데, 그 열쇠는 결국 “추가 비핵화 결단”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현직 고위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따라서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을 끝내고 경제 집중 노선을 채택한) 비핵화 결정에 관한 판단이 옳은 판단이라고 느낄 여건이 조성되기를 희망한다”고 한 김 위원장으로선, 한-미 및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관련해 공개되지 않은 어떤 논의와 메시지가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미국 쪽 방침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외교소식통은 “미국 쪽이 ‘추가 비핵화 조처가 있으면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설치, 제재 유연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방침을 최근 물밑 접촉 과정에서 북쪽에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최고의 대북 강경파로 불리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비핵화에서) 성과를 거두면 경제 제재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공개 발언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다만 미국 쪽은 김 위원장이 밝힌 영변 핵시설 관련 제안 외에도 핵 물질·시설 신고와 미사일 문제 등으로 대북 요구를 넓힌 터라 북-미 사이에 ‘접점’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7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한테 “조미 쌍방이 서로의 합리적 우려를 돌보며 긍정적 진전을 얻기를 바란다”고 밝혔다는 <신화통신> 보도의 메시지도 북쪽에 기울지 않은 ‘중립적 권고’다. <노동신문>은 9일치 관련 보도에서 시 주석의 비핵화, 북-미 협상 관련 언급을 전혀 전하지 않았다.

외교안보 분야 고위 인사는 “김 위원장이 추가 비핵화 결단을 하지 않는 한 미국의 제재 완화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김 위원장이 서울에 와서 크게 얻을 게 없더라도 용기 있게 답방해 트럼프 대통령의 결심을 이끌어낼 전략을 문 대통령과 숙의하는 방법 말고는 달리 길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의회·전문가·여론의 반대를 뚫고 ‘이만하면 제재를 완화해줘야 한다’고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김 위원장이 비록 억울한 심정이라도 한번 더 유연성을 보이는 결심을 먼저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최근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김 위원장의 ‘연내·연초 답방’을 촉구하는 데에는 “김 위원장의 조기 답방 결심은 추가 비핵화 결단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는 희망 섞인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풀이가 많다. 국내 언론이 연일 날짜까지 적시해 답방 관련 기사를 쏟아내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9일 오후 “현재로서는 확정된 사실이 없고, 우리는 서두르거나 재촉할 의사가 없다”며 “구체적인 일정과 절차는 계속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현직 고위 관계자,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 위원장이 조기 답방을 결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비관론과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일이 지나면 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답방을 결행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낙관론이 교차한다. “북한에서 현실 감각이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는 김정은 위원장은 ‘추가 비핵화 결단’을 내릴까. 조기 서울 답방 여부는 이에 연동된 문제다. 한반도 평화 과정의 진로를 좌우할 김 위원장의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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