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수사기관,  10년간 국정원 - 수미 테리 활동 감지
대선 4달 앞두고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 기소

“각국에  ‘로비 말라’  사전 경고 시범케이스”  분석
지난해 대통령실 도감청 노출 ‘보복성 대응’ 가능성도

 
 
2021년 4월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 워싱턴에서 국정원 요원과 함께 고가의 가방을 구입한 뒤 거리로 나서는 모습. [미 연방검찰 공소장]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한국계 미국인 북한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에 따라 신고하지 않은 채 한국 정부로부터 금품을 받고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을 한 혐의로 미국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이 미국인이고 미국 실정법 위반 혐의에 대해 미국 사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공식 언급을 꺼리고 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와 논의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만 답했다. 조현동 주미대사도 이날 기자들 질문에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다”고 대답했다. 국가정보원은 사안이 공개된 직후 “외국대리인등록법 기소 보도와 관련해 한-미 정보 당국은 긴밀히 소통 중”이라고만 밝혔다.

이 사건을 둘러싼 궁금증은 △미 검찰 기소 내용대로 국가정보원(국정원)이 한번에 수백원만원어치 선물과 불법적 경로의 연구기금을 제공한 것이 맞다면 국정원 해외 정보활동 방식이 적절했는지 △은밀성이 생명인 국정원의 해외정보활동이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노출된 점을 어떻게 봐야할지 △미국이 왜 지금 한국의 정보활동을 문제삼았고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등이다.

미국 검찰은 전날 공개된 공소장에서 수미 테리가 2013년부터 최근까지 한국 정부로부터 금품을 제공받고 한국 정부에 정보 등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각 나라의 정보기관들은 해외에서 국가안보를 위한 불법활동을 비밀리에 수행하고 있다. 국정원 해외파견요원들은 세계 50여개 거점 도시에서 공사, 참사관 같은 외교관 신분이나 상사원으로 위장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이 정보 수집과 공작이다. 각국 정보기관이 외교로 해결할 수 없는 악역을 해외에서 비밀리에 수행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국정원이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에게 정보를 얻은 행위를 미국 실정법을 어긴 불법이라고만 비난하기 어렵다.

미 연방 검찰이 16일 중앙정보국(CIA) 출신 대북 전문가인 수미 테리를 한국 정부를 대리한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외교부에서 열린 탈북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회에서 수미 테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어야 할 국정원의 활동이 드러난 점이다. 미국 검찰의 기소장에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파악한 수미 테리와 국정원 요원의 대화 내용과 사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 요원이 노출된 것에 대해 정부 차원의 감찰이나 문책이 진행 중이냐’는 질문에 “감찰이나 문책을 하면 아무래도 문재인 정권을 감찰하거나 문책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지적이고,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 요원이) 사진에 찍히고 한 게 다 문재인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당시 문재인 정부가 정권을 잡고 국정원에서 전문적인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는 요원들을 다 쳐내고, 아마추어 같은 사람들로 채우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미국 검찰이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미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한 혐의로 기소하고 지난 16일(현지시각) 공소장을 공개했다. 31쪽에 이르는 이 공소장은 테리 연구원이 10여년에 걸쳐 한국 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고급 식사와 고가의 의류, 핸드백, 고액의 연구비 등을 받았다고 적시하고 있다. 공소장은 테리 연구원이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문자, 그가 어떤 접대를 받았는지 등을 사진까지 담았다. [연합]

 

이 주장과 달리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의 활동은 박근혜 정부 때 시작했고, 지난해 3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칭송하는 워싱턴포스트 칼럼을 외교부의 요청을 받고 작성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주장처럼 이번 일을 문재인 정부 일·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

미국 내 외국 정보기관의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정보수집 활동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미국은 왜 지금 문제를 삼았을까. 미국 검찰의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 기소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각국 정부의 민주·공화당 대선 후보 진영을 상대로 한 정보활동과 로비를 제어하려는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보 기관 출신의 전직 정부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에 “11월 대선을 앞두고 각국 정부의 미국 내 정보 활동과 로비를 견제하려는 사전 경고 발신용 시범 케이스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수미 테리 사건을 맡은 데이미언 윌리엄스 미국 뉴욕 남부지검장은 자료를 통해 “공공 정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외국 정부에 팔고자 할 때 두 번 생각하고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숱한 외국 정보기관 활동 가운데 하필이면 동맹국인 한국을 표적으로 삼았냐는 것이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인사는 “일본과 중국에 비하면 한국의 정보활동은 미미한 수준인 현실을 고려할 때 ‘표적 감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미국 정보기관의 서울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등 정보 활동이 노출된 데 대한 ‘보복성’ 대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간 ‘정보 갈등’을 둘러싼 보복 대응(추정)은 선례가 있다. 지난 1996년 9월24일 미 해군정보국에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김이 북한 잠수정 강릉 침투경로를 주미 한국대사관 해군 무관에게 알려줬다 체포됐다. 한국은 1997년 4월 무기 구매를 맡은 공군 중령이 미국인 무기 중개상과 동업을 조건으로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적발해, 미국인 등 5명을 처벌했다. 로버트 김 사건과 7개월 간격을 두고 벌어진 미국인 무기중개상 사건을 두고 당시 야당에선 미국에 대한 보복대응이란 주장이 나왔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물론 한반도 전문가 등과 긴밀한 소통이 절실한 상황에서, 수미 테리 사건으로 한국의 대미 정보 활동의 대폭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정보 기관 출신의 전직 정부 핵심 관계자는 “미국 정부 관계자나 전문가들이 한국 쪽과 접촉을 피하려 할 것”이라며 “수미 테리 사건의 악영향이 심각할 듯하다”고 말했다.                                           < 권혁철 이제훈 이승준 기자 >

 

수미 테리에 ‘윤석열 결단 칭송’ 칼럼 로비…“한국이 준 내용 그대로”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 활동 이어져
공소장에 서훈 국정원장 행적까지 나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3월 한국 외교부 로비를 받아 워싱턴포스트에 쓴 ‘한국이 일본과 화해를 위해 용감한 발걸음을 내딛는다’(South Korea Takes a Brave Step Toward Reconciliation with Japan)는 제목의 칼럼. [워싱턴포스트 누리집]

한국 정부를 위해 불법 행위를 했다는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미국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한국계 북한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 사건이 한반도 문제를 담당했던 미국 고위급 관계자들과 한국 국가정보원의 정보활동 적절성 논란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국정원장을 포함한 고위직 인사들의 행적과 발언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허술한 처신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1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남부지검이 공개한 공소장에는 테리 연구원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정 박 전 미국 국무부 대북고위 관리 겸 부차관보로 추정되는 한반도 문제 담당 미국 고위 관리가 등장한다. 테리 연구원이 2021년 4월16일 워싱턴에서 국정원 요원과 저녁을 먹으면서 “이전에 중앙정보국과 국가정보위원회(NIC) 고위급을 역임했고 한국 업무를 담당하는 국무부 고위 당국자와 테리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으나 정 박 전 부차관보의 이력과 겹친다. 그는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 한국 담당 부정보관, 중앙정보국 동아태 미션센터 국장을 지냈고 당시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로 일하던 때였다. 정 박 부차관보가 지난 5일자로 돌연 사임을 한 배경에도 테리 연구원의 혐의가 연결됐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한국 국정원 고위 관계자들의 행적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공소장에는 ‘2018∼2019년 한국 정보 관리들에게 미국 국가안보 관료들의 만남을 제공했다’는 제목으로 이 기간 테리 연구원이 국정원 고위 관료들과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함께 만났던 사실이 적시돼 있다. 테리 연구원이 2019년 1월15일 국정원 요청을 받아 소속돼있던 싱크탱크에서 비공개회의를 꾸렸는데 여기엔 “한국 국정원장(Director of the ROK NIS)과 국정원 관계자들, 미국 국가안보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고 돼 있다.

2021년 4월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 워싱턴에서 국정원 요원과 함께 고가의 가방을 구입한 뒤 거리로 나서는 모습. [미 연방검찰 공소장]

이 회의엔 당시 국정원 수장이던 서훈 원장이 참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회의에서 국정원장은 미국 관계자들 앞에서 미국과 북한 지도자의 관계를 포함한 북한 정책에 대해 발언했고, 이후 국정원 요원이 테리 연구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매우 좋았다”, “행사를 꾸리기 위한 노력”에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이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때이며, 해당 회의 40여일 뒤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두번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후 미국 쪽 정보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수사한 연방수사국(FBI) 요원 면담에서 해당 회의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생각했고, 해외 정보기관의 수장을 만나기 위해 싱크탱크에 초대된 다른 사례는 생각할 수 없다고 증언했다고 공소장에 적혀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그의 활동은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됐으며 문재인 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 때도 이어져왔다.  그는 지난해 3월 윤 대통령이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 문제에 대해 일본에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내용인 제3자 변제 방식을 통해 대일 관계를 개선을 시도한 것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한국 외교부로부터 받았다. 요청을 받은 뒤  “내가 칼럼을 쓸 수 있게 관련 정보를 달라”는 문자를 보낸다. 그는 이후 워싱턴포스트에 ‘한국이 일본과 화해를 위해 용감한 발걸음을 내딛는다’(South Korea Takes a Brave Step Toward Reconciliation with Japan)는 제목의 칼럼을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와 공동으로 게재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윤 대통령의 결정이 정치적으로 불리할 수 있는데도 내린 결단으로 묘사했다. 공소장은 해당 칼럼의 상당수가 한국 정부가 테리 연구원에게 제공한 내용과 일치(broadly consistent)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또 테리 연구원이 이후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문자를 보낸 것도 드러났다.

국정원이 엮인 사건의 구체적 정황이 미국 연방검찰을 통해 대중에게 이례적으로 공개되는 것은 의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한-미 정보당국 간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정원은 전날 “한-미 정보당국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고,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해당 사건과 관련 ‘한국 정부와 논의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2020년 8월 미국 뉴욕 맨해튼 한 식당에서 한국 국가정보원 관계자들과 식사하는 모습. [미 연방검찰 공소장]

< 김미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