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쿠데타’ 정치 농간에 태국 “잃어버린 20년”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사법 쿠데타’ 활용법
태국 경제까지 망치는 군부발 일상적인 정치불안
돌아온 탁신, 친군부 보수파와 권력 공유 타협
헌법까지 바꾼 군부의 “탁신은 절대 안돼!”
그랬던 군부가 탁신을 급히 불러들인 이유
탁신파도 친군부 보수파도 아닌 제3세력의 등장
동남아시아의 주요국 태국(타이)은 기득권에 집착하는 보수 지배엘리트들의 정치적 농간이 어떻게 한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국가 전체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전형이다.
태국 ‘잃어버린 20년’
태국 왕실과 결탁한 군부, 일부 관료들, 화교계 자본가들과 일부 지식인들,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헌법재판소.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의 강고한 카르텔이 인구 7천만 명이 넘는 동남아의 지정학적 중심국 태국의 정치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국제적 신용을 실추시키고 있다. 역시 변화하지 않는 강고한 기득권층을 지닌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 빗대, 태국에도 “잃어버린 20년”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돌아온 탁신, 친군부 보수파와 권력 공유 타협
지난 16일 타이 의회(하원)는 총리 지명 선거에서 37세의 젊은 페통탄 친나왓 ‘프아 타이당’(타이 공헌당, 타이를 위한 당) 당수를 새 총리로 선출했다. 타이의 최연소 총리이자 두 번째 여성 총리다. 그 이틀 전인 14일 같은 당의 세타 타위신 총리가 헌법재판소 해임명령으로 물러났고, 페통탄은 단독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된 것은 하원 총의석 500석 중 151석을 얻은 ‘전진당’이었고, 프아 타이당은 141석을 얻어 제2당이 됐다. 프아 타이당 당수가 잇따라 총리가 된 것은 타이 정치를 사실상 좌지우지해 온 친군부 보수파 연합(76석)과 손을 잡은 결과다.
태국 총리 선출방식은 독특하다. 하원의원 500명과 상원의원 250명의 의원들을 합친 750명의 의원 과반수(376명 이상)를 확보해야 총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상원은 형식상 선출제이긴 해도 사실상 왕실과 군부가 지명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군부가 거부하는 사람을 총리자리에 앉히려면 하원에서만 376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반대로 군부는 하원에서 126석만 확보하면 가능하다. 주변 군소 정당들을 끌어모아도 76석밖에 확보하지 못한 친군부 보수파가 권력을 유지하려면 다른 유력한 당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래서 페통탄의 프아 타이당과 손을 잡았다.
프아 타이당의 실세는 2001년 총선에서 압승해 총리가 된 뒤 2005년에도 대승했으나 군부 쿠데타로 국외 망명을 해야 했던 탁신 친나왓이다. 페통탄 친나왓은 그의 둘째 딸이다. 아버지의 사업을 돕다가 지난해 10월에야 프아 타이당(이하 ‘탁신당’으로 통칭) 당수가 된 페통탄은 의원 경험도 없는 정치 초년생이다. 군부가 그런 페통탄을 총리자리에 앉힌 것은 제1당인 전진당을 밀어내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탁신당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친군부 보수파의 ‘헌법재판소’ 활용법
탁신과 그를 쿠데타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군부는 원래 ‘원수’ 내지 ‘견원지간’이라 할 수 있다. 기업가 출신인 탁신은 1991년 군부의 유혈 쿠데타 뒤 태국에서 민주화 기운이 고양되고 1990년대 후반 개헌으로 정치공간이 넓여진 뒤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정치인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다. 농민과 중하층 노동자 등 서민들의 표를 공략해 처음으로 왕실과 군부, 자본가 등 전통적 지배엘리트층이 기득권 상실의 위기감을 갖게 될 정도로 성공한 탁신은 결국 그 성공 때문에 군부 쿠데타로 쫓겨났다. 탁신당은 그러나 탁신이 쫓겨난 뒤에도 중하층 서민들의 절대적 지지 속에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했다. 원래 ‘애국당’이란 이름을 내걸었던 탁신당은 군사재판소의 해산 명령으로 해체됐지만, 2007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란 당명으로 승리했고 탁신파 사막 순다라벳이 총리가 됐다.
그러자 군부는 자신들의 수족인 헌법재판소를 앞세워 사막 순다라벳 총리가 요리 프로 방송에 출연한 것을 꼬투리삼아 겸직 금지 규정 위반이라며 그를 해임하고 ‘국민의힘’ 당을 해산시켰다. ‘사법 쿠데타’였다.
그럼에도 탁신당은 2011년 총선 때 ‘프아 타이당’으로 재창당해 265석을 얻어 다시 제1당이 됐다. 그 결과 총리가 된 사람이 잉락 친나왓이다. 탁신의 여동생이다. 군부는 이번에도 탁신당 정권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2014년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잉락마저 국외로 쫓아냈다. 그때도 잉락을 총리직에서 쫓아낸 근거가 집권 초기에 군부파인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을 경질한 것이 권력남용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이었다.
헌법까지 바꾼 군부의 “탁신은 절대 안돼!”
2014년 쿠데타의 주역 쁘라윳 짠오차 육군사령관이 총리가 돼 정치의 전면에 나선 군부는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민정이양을 서두르지 않고 ‘국가평화질서평의회’라는 이름으로 5년 가까이 군사독재체제를 유지했다. 그것은 탁신파 세력을 약화시키고, 당시 건강이 악화됐던 푸미폰 국왕(재위 1946~2016년) 후계 왕을 군부 통제하에 앉히고, 총선에서 지더라도 군부가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새로 만들어진 2014년 헌법은 단독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장악하기 어려운 투표방식을 채용하고, 상원의원은 사실상 군부가 지명하며, 설사 하원에서 탁신파 정당이 제1당이 되더라도 총리 지명을 상하 양원 합계 의석의 과반수을 얻어야 하도록 개악됐다. 절대로 탁신파가 정권을 잡지 못하게 하겠다는 노골적인 ‘반탁신 헌법’이었다.
그 약 5년간의 군정 기간에 헌법재판소의 판사 9명 중 다수가 친군부 보수파 판사들로 채워졌다. 의회에서 다수파가 될 수 없는 친군부 보수파가 정치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이용해 ‘사법 쿠데타’를 일으키는 태국 정치의 고질적인 구조가 그때 완성됐다.
그럼에도 2019년 민정이양을 위한 총선에서 다시 탁신당이 제1당이 됐으나, 군부와 그 지지자들이 만든 ‘국민국가의 힘’당이 개악된 헌법을 활용해 쁘라윳을 총리로 앉히고 정권을 꿰찼다.
그랬던 군부가 탁신을 급히 불러들인 이유
탁신은 2023년 8월 망명 17년만에 귀국했다.(잉락은 아직도 귀국하지 못했다) 바로 3개월 전인 5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쁘라윳의 친군부 보수파가 졌기 때문이다. 그 총선에서 군부파도 탁신파도 아닌 제3의 ‘급진세력’(중도 좌파)인 ‘전진당’(2019년 총선에서 81석을 얻어 제3당이 된 ‘신미래당’의 후신)이 151석을 얻어 제1당이 되자, 군부는 망명 중이던 탁신을 불러들여 그와 타협을 했다. 더 위협적이고 더 큰 적을 상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작은 적과 손을 잡은 것이다.
피타 림짜른랏(43)이 이끈 제1당 ‘전진당’의 기세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군부의 정치관여 금지와 징병제 폐지, 군사예산 삭감, 국왕 불경죄 개혁 등을 요구하는 전진당과는 타협이 불가능했다. 국왕 불경죄란 군주제 개혁 요구나 비판을 터부시하는 습속이나 관행에 위배된다는 모호한 이유로 금고 15년 형까지 가는 중벌을 가할 수 있는 죄인데, 왕실과 결탁한 군부가 민간인 정치생명을 끊거나 그들을 길들이는 장치로 악용해 왔다.
망명지에서 탁신을 불러들인 군부는 탁신당의 세타 타위신을 총리직에 앉히고 실권을 유지했다. 탁신파 사람을 총리에 앉혔지만 탁신 본인은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피해자이자 수혜자인 탁신 집안
비록 군부의 모진 탄압을 받았지만, 탁신은 그 자신을 포함해서 차녀 페통탄까지 그의 집안 사람 4명이 총리직을 맡았을 정도로 왜곡된 태국 정치체제의 피해자이자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런 태국 정치 현실에서 일정한 지분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서는 군부와 타협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체 힘만으로는 군부를 몰아내기 어렵고, 설사 몰아내더라도 이젠 ‘탁신파도 싫고 군부도 싫다’는 제3의 급진세력이 탁신파를 대체할 가능성이 큰 쪽으로 태국사회가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1991년 군부 쿠데타와 거기에 저항한 학생 등 민중의 힘이 부딪치면서 많은 피를 흘린 뒤 태국에서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 갔다. 전진당의 대두는 그런 태국사회 변화의 소산이다.
탁신파도 친군부 보수파도 아닌 제3세력의 등장
하지만 군부가 그런 전진당의 대두를 그냥 놔 둘 리가 없다. 군부는 이번에도 자신들이 전면에 직접 나서는 쿠데타보다는 헌법재판소를 앞세웠다. 2007년과 2011년 탁신당 해산에 이어, 2020년 신미래당(전진당 전신) 해산, 그리고 2024년 1월 또 다시 신미래당 후신인 전진당에 대해 해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유는 불경죄 개혁 요구가 불경죄를 금하는 헌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피타 림짜른랏 대표 등 전진당 간부 11명에 대해서는 앞으로 10년간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사법 쿠데타’에도 전진당은 ‘국민당’의 이름으로 금방 재탄생했다. 피타 대표는 헌재의 당 해산 판결 뒤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며 자신이 공부했던 미국 하버드대로 떠났다.
지난 8월 14일에 세타 총리를 해임할 때 헌법재판소가 이유로 든 것은 치졸하게도 그가 실형을 받은 탁신의 변호사를 각료로 임명했다는 것이었다. 정작 탁신은 망명에서 돌아 온 뒤 가석방 상태에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군부가 헌법재판소를 앞세워 세타 총리를 해임한 것은 세타가 국방장관을 현역군인이 아닌 민간인에게 맡기고, 경제성장 정책을 중시하면서 군 예산을 삭감한 것에 대한 불만도 작용했지만, 정치활동을 재개한 탁신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정치경험이 전무한 탁신의 둘째 딸을 총리에 앉힌 것도 세타보다는 다루기 쉽고, 여차하면 세타처럼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군부의 계산이자 경고라는 해석이 있다.
태국 경제까지 망치는 일상적인 정치불안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이런 왜곡된 정치구조로 인한 태국의 일상적인 정치불안이 태국 경제를 망치고 있다.
태국 국가경제사회개발위원회의 2024년 예상 성장률은 2~3%로, 당초 예상(2.2~3.2%)보다도 0.2% 포인트 더 내려갔다. 주력인 제조업 설비가동률은 60%로, 올해 마이너스 3% 성장이 예상되며, 중국에 대한 수출도 줄어 1분기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농업부문 GDP도 줄었다.
이는 인도네시아의 5.1% 성장률과 수출 0.5% 증가, 그리고 베트남의 5.7%, 필리핀의 5.7%(1분기) 성장과 대비된다. 이런 경제 부진은 잦은 쿠데타에서 보듯 변화를 거부하는 군부 등 보수세력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잦은 정변으로 정치불안정이 일상화한 탓이 크다. 태국의 정치불안이 생산적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외국의 투자와 교역 등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지적들이 많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사법 쿠데타’
“잃어버린 20년” 얘기를 듣는 태국의 1인당 명목 GDP는 7812달러로, 이웃 말레이시아(1만 3315달러)나 중국(1만 3136달러)(2024년)보다 훨씬 적다. 원래 다른 동남아 국가들보다 앞서가던 태국의 이런 정체는 이른바 ‘중진국의 함정’ 얘기를 할 때 흔히 남미 아르헨티나와 함께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다.
변화하는 세계와 민심의 바람을 외면하고 거부하는 친군부 보수파 정치세력의 기득권 집착이 태국이 ‘중진국의 함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민심을 반영하는 총선거와 의회(국회)의 의석 변화에 눈감고 자신들이 임명한 재판관들로 채운 헌법재판소를 앞세운 ‘사법 쿠데타’로 정치경제 권력을 유지하려는 태국의 친군부 보수세력의 이런 행태는 우리에게도 낮설지 않다. < 민들레 한승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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