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살, 범죄로 인정해달라” ICC에 청원
“심각하고 광범위하고 장기적 환경피해” 알면서 자행
필립 샌즈 런던대 법학교수 ICC 인정“100% 확신”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도 처벌 가능?
바누아투, 피지, 사모아 등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생태학살(ecocide)을 범죄로 인정해 달라는 청원서를 국제형사법원(ICC)에 제출했다고 <가디언>이 9일 보도했다.
“‘생태학살’을 ‘집단학살’처럼 처벌하게 해 달라” 첫 청원
호주 오른쪽, 뉴질랜드 위쪽의 작은 섬나라들인 이들 3개국은 이날 제출한 청원서에서 “생태학살”을 집단학살(genocide), 전쟁범죄와 함께 (처벌 가능한) 범죄로 인정하기 위한 규칙 변경을 요구했다. 이로써 생태학살을 처벌 가능한 공식적인 범죄행위로 만들어 기후 붕괴와 환경 파괴에 대한 세계의 대응을 변화시키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 규칙 변경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대규모 오염행위를 저지르는 기업과 국가들의 대표나 원수들을 비롯한 개인들을 환경파괴범으로 기소할 수 있게 된다.
“심각하고 광범위하고 장기적 환경피해” 알면서도 저지른 행위
바누아투와 피지, 사모아가 제출한 청원서는 생태학살 범죄를 “심각하고 광범위하거나 장기적인 환경 피해가 발생할 실질적인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저지른 불법적 또는 무분별한 행위”로 정의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나라 자체가 해수면 아래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들 나라로서는 대규모 해양오염 행위를 생태학살로 규정하고 조속한 처벌을 요구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도 처벌 가능?
그런 행위에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도 ICC가 처벌할 수 있는 범죄목록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청원서가 온난화가스 대량 배출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지만, “심각하고 광범위하거나 장기적인 환경 피해”로 처벌 가능한 범죄행위 대상을 포괄적으로 설정한 만큼, 주변국들과 태평양 도서국들의 반대를 무시한 채 강행되고 있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도 ICC에 제소할 수 있는 처벌 가능한 범죄로 간주될 수 있어 보인다.
청원 “시간 문제일 뿐 결국 통과될 것”
9일 ICC에 제출된 청원 내용은 논의에 몇 년이 걸릴 가능성이 높고,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공개적으로 이에 반대의사를 표명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논의는 대부분은 비공개로 진행될 것이다.
생태학살금지재단(Stop Ecocide Foundation)에서 소집한 생태학살의 법률적 정의를 위한 독립 전문가 패널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저명한 국제변호사이자 런던대학(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법학 교수인 필립 샌즈 KC는 생태학살이 결국 국제형사법원에서 처벌 가능한 범죄로 인정받게 될 것임을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일한 문제는 언제일지 그 시기”라며,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지만, 지금은 정말로 믿는다. 일부 국가에서 국내법에 포함했듯이, 이미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이것이 적절한 시기에 나온 적절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벨기에는 최근 생태학살을 처벌 가능한 범죄로 채택했고, 유럽연합(EU)은 국제 범죄에 대한 지침 중 일부를 변경해서 이를 “조건부” 범죄로 포함시켰다. 멕시코도 이런 법률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2019년에 ICC에 생태학살을 처벌 가능한 범죄로 인정해 줄 것을 처음으로 요구한 나라는 바누아투다. ICC의 옵저버인 국제생태학살금지(Stop Ecocide International) 캠페인 그룹의 공동 설립자인 조조 메타는 이들 남태평양 세 나라의 움직임이 생태학살을 인정하기 위한 싸움에서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원이) ICC의 논의 일정에 오르면 논의를 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회원국들은 이 문제를 다룰 의무가 없었다”고 했다.
조조 메타는 생태학살을 범죄로 채택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나라는 없겠지만, 이 범죄가 (처벌 가능한 공식) 범죄로 채택되면 결국 경영자들이 책임을 져야 할 석유회사들을 포함한 심각한 오염 기업들의 저항과 강력한 로비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등 ICC 미가입 오염대국들이 문제
ICC가 이 청원을 고려할 지점에 도달하는 데에만 몇 년이 걸렸다. 국제생태학살금지는 2017년부터 이 문제에 대한 캠페인을 벌여 왔으며, 바누아투는 2019년에 생태학살을 처벌 가능한 범죄행위로 공식 인정해 달라고 ICC에 처음으로 요구했다.
ICC가 청원을 받아들여 변경 사항을 시행하게 되더라도 누군가를 생태학살죄로 기소하게 되기까지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조조 메타는 9일 ICC에 제출된 청원은 이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만드는데 필수적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기후(붕괴)의 위협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됨에 따라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사람들은 지구에 이렇게 많은 피해를 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샌즈는 ICC의 토대를 형성하는 조약인 로마 규약(Rome statute)을 생태학살을 인정하는 쪽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규약을 변경해야 한다. 이건 근본적인 문제다”라며, “그렇지 않고는 ICC가 이 문제를 의미있게 다룰 수 없다”고 말했다.
헤이그에 있는 ICC는 2002년에 설립된 이후 집단학살,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다뤄 왔다. 2010년 로마 규약에 대한 개정안을 통해서 (범죄)목록을 확대해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는) 침략범죄를 거기에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과 EU를 비롯한 120개국이 넘는 나라들이 ICC에 가입했다. ICC 수석 검사인 카림 칸은 최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체포할 것을 요구했고, 블라디미르 푸틴도 법정에 세우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온난화 가스 주요 배출국들이 ICC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ICC의 범죄 처벌 적용 범위는 제한적이다.
IAEA도 안전보장하지 못한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
한편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와 관련해,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의뢰한 보고서를 앞세워 알프스(다핵종 제거 설비)로 삼중수소를 제외한 반사능 핵종들을 제거한 ‘처리수’를 바다에 흘려보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알프스의 기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국제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알프스가 제거할 수 없는 삼중수소나 틴소 14 등의 반사능 핵종들의 윔험성에 대한 국제적인 검증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일본정부와 도쿄전력, IAEA가 설정한 안전기준 내의 방사능 오염수 대량방출이 장기간 바다생태계와 인간에게 끼칠ㄷ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 검증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상 장기 저장, 콘크리트화, 지하 저장, 기화 등 일본 국내에서 오염수를 처리할 수 있는 다른 여러 선택지들을 거부한 채 수십년, 길게는 몇 세대에 걸친 관찰과 연구를 통해서야 그 위험성을 검증할 수 있는 방사능 오염수를 자국 바깥으로 대량 흘려보내는 것의 위험성과 관련해 IAEA 보고서조차도 방사능 수치가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했을 뿐 핵오염수 자체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 민들레 한승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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