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추모 "특조위 진상규명 돕겠다"
이태원-서울 광장 행진 후 '시민추모대회' 개최
이정민 "정치계, 종교계, 시민단체 모두 도와달라"
생존자 "숨겨져 있는 참사 피해자를 모두 찾아달라"
송기춘 "유가족들이 원하는 모든 질문에 답하겠다"
국민의힘, 개혁신당 발언 중 유가족들이 항의하기도
민주당 "특조위 예산과 진상 규명하는 것 돕겠다"
기본소득당 "이제 국민 누가 사법부를 신뢰하겠냐"
"…2022년 10월 17일 이른 새벽에 공항에 가려고 했던 너가 현관 앞에서 나에게 작별 인사를 했던 것이 기억나. 이른 새벽이라고 우버(택시)를 타기로 했는데, 우리가 그날 너를 공항에 데려다줬으면 조금이라도 더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겠지. 그날이 너무 후회가 돼. ‘엄마 안녕’이라고 환하게 미소 짓던 모습이 너무 그리워. 나는 지금도 그 현관문을 바라보면 너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그레이스 래치드 씨의 어머니 조앤 래치드 씨가 시민추모대회에서 딸에게 보낸 편지)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와 시민대책회의는 26일 오후 6시 34분 서울광장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시민추모대회-진실을 향한 걸음,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개최했다. 유가족, 시민, 정치인이 모두 모인 이 자리에서는 한 목소리로 '이태원 참사 책임자 처벌'과 '10·29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조사가 잘 이뤄지는 것'을 바랬다.
시민추모대회는 이날 오후 1시 59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유가협과 시민들이 4대 종단 기도회를 마친 뒤 대통령실 앞, 서울역, 10.29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지나 서울광장까지 행진한 뒤 시작했다. 개최 시간인 오후 6시 34분은 이태원 참사 당시 첫 번째 경찰 신고가 들어간 시각이고, 4대 종단 기도회가 시작된 1시 59분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을 상징한다.
시민추모대회의 사회를 맞은 MBC 이선영 아나운서는 "하늘의 별이 된 159명과 여태까지 있었던 사회적 참사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자"고 말하며 시민추모대회의 문을 열었고, 희생자의 가족이 활동하고 있는 웨슬리 오케스트라가 시민추모대회의 마중물이 됐다.
먼저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협 운영위원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이정민 위원장은 "정치계, 종교계, 시민단체와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이번 2주기는 외국인 희생자 가족도 방한했다. 우리보다 더 어둠 속에 있었던 분들이다. 이 시간 외국인 희생자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위로가 되길 바란다"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정부와 정치권은 이태원 참사를 정쟁의 도구로 소모하지 마라"며 "정치계가 그 역할을 진지하게 이행해달라. 종교계는 재난 참사 피해자의 곁에서 항상 눈물을 닦아 준 것에 감사하며 우리의 등불이 되어 달라. 시민사회단체는 이제 걸음마를 뗀 특조위 진상 조사 과정의 감시자이자 길잡이 역할을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참사 10년째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도 시민대책회의에 참석해 추모사를 전했다. 김종기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세월호 유가족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마음을 모를 수 있겠냐"며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이 안전한 한국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행한 모든 것을 존경한다. 그러나 현실은 고통스럽고 비통했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나 국가는 책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특조위가 만들어졌으니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을 다시 조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회는 특별법 재정으로 역할이 끝나지 않았다. 시행령이 무력화되지 않도록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했다.
살아남았지만 끝나지 않은 고통 속에 있는 이태원 참사 생존 피해자의 발언도 있었다. 이태원 참사 생존 피해자인 이주현 씨는 "정부는 이태원 참사 부상자가 334명이라고 했지만, 이태원 참사 당시 압박을 경험한 사람만 훨씬 많다"며 "나는 현장에서 병원으로 이송돼 부상자가 됐지만 함께 있던 내 친구들은 목격자가 됐다. (트라우마 등이 있지만) 본인이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주현 씨는 "나는 여전히 다리 통증이 있는데, 정부는 병원 치료를 받은 지 6개월이 됐다고 병원 지원을 끊었다"며 "그 뒤로 한 번도 피해자 지원 안내가 온 적 없다. 특조위는 숨겨져 있는 피해자를 찾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존자와 희생자가 없는 진상 조사는 알 수 있는 게 없다"고 강조했다.
특조위에 대한 기대와 염려, 부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송기춘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은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특조위는 참사 발생 원인, 참사 이후 대처가 미숙했던 이유, 참사의 책임자 등 유가족들의 모든 의문에 답을 주겠다"고 했다.
송기춘 위원장은 "이제는 적절한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니 국회와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때다. 특조위가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권 등의 조사권이 삭제돼 한계가 많다고 하지만 위원회 모두는 한마음으로 참사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모두 "책임자 처벌이 우선시돼야"
이제는 정치권이 나서서 특조위에 필요한 인력과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도와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모두 특조위에 힘을 실어줬지만,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유가족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반대하고 거부권까지 사용했기 때문이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다시는 이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고 있다"며 "특조위가 독립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천하람 원내대표는 "정부가 왜 추모 행사를 하지 않냐고 물으니 행안부 장관 때문이란 말을 들었다"며 "개혁신당은 앞으로 정치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고 함께하겠다"고 했다. 이들이 발언하는 내내 유가족과 시민들은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발언을 시작하자 유가족들은 환호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특조위가 예산을 지원받고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밝힐 수 있도록 돕겠다"며 "윤석열 정권의 무대책, 무능력, 무책임이 고스란히 드러난 참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고 예방할 수 있었던 참사"라며 "압사 우려 신고 접수가 됐을 때 경찰이 적절한 대응을 했으면 이렇게 큰 희생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도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지적했다.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이 모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며 "나는 경찰 출신이라 참사 원인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추론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죄송하고 책임자에게 분노한다"고 말했다.
황운하 원내대표는 "특조위가 정부를 상대로 조사를 해야 하니 힘든 조사가 예상된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조국혁신당은 특조위 활동에 최대한 협조하고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오늘 낮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다시 참사 장소로 가서 기도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을지 알 수 없다"며 "이태원 참사 책임자 처벌을 위해 진보당도 함께하겠다"고 강조했다.
사법부가 이태원 참사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있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원내대표는 "이제 사법부를 누가 신뢰하겠냐"며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붕괴됐다. 유가족과 함께 이들이 원하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꼭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에서 참사를 겪은 모든 유가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사회민주당 한창민 원내대표는 "세월호, 오송, 아리셀 등 모든 산업 재해의 아픔을 가진 여러분들이 참석했다"며 "모든 분을 위로한다. 이제는 특조위가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가수 하림 씨는 희생자의 아버지가 만든 곡을 불러서 유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진보연대 박석운 공동대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강하니 사제, 진보대학생넷 강새봄 대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양경수 위원장,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태원참사 TF 단장 오민애 변호사, 참여연대 김주호 활동가는 특조위가 ▲독립적 조사 기구로 활동하는 것을 계속 지켜보고 ▲진상규명 조사에 정부가 돕는지 감시하며 ▲참사 발생 구조적 원인 규명 원인을 밝히는 것을 돕겠다고 했다.
시민추모대회는 폐회를 알리며 희생자의 이름과 사진을 영상으로 상영했다. 외국인 희생자가 먼저 영상에 올라왔고, 한국인 희생자는 이름 순서대로 상영됐다. < 민들레 김민주 기자 >
※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등에 대한 혐오 및 모욕성 댓글은 경고 없이 삭제합니다. 악성 댓글은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연결된 우리는 강하다’…보랏빛 물든 이태원 2주기 추모광장
이태원 참사 시민추모대회
‘작지만 많은 마음들이 이태원참사를 기억하고 있어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마음으로 울고 슬퍼하고 있어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10·29 이태원참사 2주기를 사흘 앞둔 2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애도와 기억의 메시지 벽’에 포스트잇이 하나둘씩 붙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던 일상적 공간에서 벌어진 참사가 자신과 무관치 않다고 여기는 이들, 그렇기에 참사가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펜을 들어 적었다. ‘안전사회를 향한 연대를 이어가겠습니다. 연결된 우리는 강합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 시민대책회의 등은 이날 ‘진실을 향한 걸음,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라는 주제로 이태원참사 2주기 시민추모대회를 개최했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참사 발생 장소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부터 시민추모대회가 열리는 서울 중구 서울광장까지 4시간가량 ‘보라리본 행진’을 이어갔다. 같은 시각 서울광장에는 참사 생존자, 목격자 등을 대상으로 진상규명 조사신청을 받는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부스를 포함해, 시민들이 이태원참사를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도록 하는 부스들이 꾸려졌다.
이날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벌써 참사 2년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면서도, 아직 사회가 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반지민(21)씨는 “시민들의 일상과 무관한 참사가 아님에도 여전히 참사에 대한 2차 가해가 심각한 걸 볼 때마다 답답하다”며 “누구나 놀러 갈 수 있는 건데, 그런 즐거운 자리에서조차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던 게 문제”라고 말했다.
류수경(35)씨는 “참사에 대해 편견 가득한 말을 하는 이들도 많지만, 최근 참사의 주요 책임자들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걸 보면 아직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심규원(23)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생명과 안전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이 그렇게 많이 나왔는데 이태원 참사에서도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런 사회적 참사를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고, 기억하지 않으면 다시 반복될 것 같아서 추모대회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2년 전 참사 당시 첫 112 신고 시간을 뜻하는 오후 6시34분부터는 시민 5천여명(주최 쪽 추산)이 참석한 시민추모대회가 열렸다. 이정민 유가협 운영위원장은 “2년 전 29일 밤은 한없이 어둡고 공포스러운 긴 터널과 같았다. ‘다녀올게요’ 한 마디 하고 집을 나섰던 아이가 갑자기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고, 아이와 이제 다시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며 “2년간 시민분들이 보여주신 연대는 악의적인 모욕과 폄훼를 퍼붓는 이들로부터 유가족을 버티게 한 힘이었다. 다만 여전히 왜곡된 시선이 계속돼 수많은 생존피해자와 목격자들이 참사를 얘기하고 기억하는 일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에 맞서 참사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함께해달라”고 말했다.
이태원참사 생존피해자인 이주현씨는 “참사 2년이 지났지만 생존피해자 파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당시 그 압박을 경험한 사람은 수백, 수천 명이었다. 그때 함께 있었던 친구들은 가까스로 초기에 구조돼 생존자가 아닌 목격자로 분류됐다”면서 “특조위가 피해자 조사를 최대한으로 했으면 한다. 생존자, 피해자 없는 진상조사로는 진실을 알 수 없다. 각자 경험하고 기억했던 일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시민추모대회에서는 참사 2주기를 맞아 한국을 찾은 호주인 희생자 그레이스 라쉐드의 어머니 조안 라쉐드의 편지 낭독, 송기춘 특조위 위원장 등의 추모사, 가수 하림씨의 공연 등이 이어졌다. < 한겨레 고나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