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 WORLD 2025. 4. 22. 14:32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억압받는 자들의 친구, 88세 일기로 별세

세월호 유족 위로, 남북평화 각별한 관심 보여

 

 14일 오전 서울공항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영나온 인사들 중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과 인사하며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2014.8.14 연합

 

억압받는 자, 고통받는 자, 소외된 자들의 친구,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 교황으로서 그의 지난 12년간 그는 무엇보다 고통과 부정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태도는 중립이 아니라는 선언으로 인류에 윤리적 나침반을 제시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아픔을 함께했던 이였기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그의 죽음에 가장 슬퍼할 이들은 한국인들일 듯하다.

바티칸은 21일(현지시간) 교황이 이날 오전 7시 35분 88세를 일기로 선종했다고 영상 성명을 통해 밝혔다.

 

2013년에 교황에 오른 프란치스코 교황은 12년간 교황직을 수행했으며 올해 2월부터 기관지염을 앓다가 폐렴 진단을 받고 한달 넘게 입원해 치료를 받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한국 사회의 아픔과 한반도 평화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으며, 북한 방문에 대한 의지도 여러 차례 표명했다.​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고 유족들이 전한 노란 리본을 옷에 단 채 공식 일정에 나서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방한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교황은 한 기자로부터 "노란 리본을 착용한 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자 "어떤 이가 내게 교황은 중립적이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나는 '이렇게 큰 고통 앞에서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2014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남북한 간에 경쟁과 대립을 넘는 ‘한 가족, 한 민족’으로서의 연대를 강조했다 . 또한, 2023년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는 한반도를 포함한 세계 각지의 평화를 기원하며, 인도주의적 지원과 대화를 통한 갈등 해결을 촉구했다. 북한 방문 의사도 여러 차례 밝혔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의 바티칸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구두 초청 의사를 전달받았으며, 이에 대해 "공식 초청장이 오면 갈 수 있다"고 응답했다. 2022년에도 바티칸 외무장관은 교황이 북한의 공식 초청을 기다리고 있으며, 평화를 위한 방문 의지가 여전하다고 밝혔다 .​  < 민들레 이명재 기자 >

 

궁전 버렸던 교황, 살던 기숙사서 입관…장식 없는 관에 눕다

역대 교황 시신 안치한 허리높이 단상서 내려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이 21일(현지시각)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에서 놓여 있다. AP 연합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21일(현지시각), 세계 곳곳에선 늦은 밤까지 교황을 위한 묵주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기도회가 열린 이탈리아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은 밤 11시가 넘도록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붙잡은 촛불로 어둠이 잦아들었다.

 

교황청은 21일 저녁 8시(한국시간 22일 새벽 3시) 바티칸에 있는 교황의 거처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입관식을 거행했다. 교황청 궁무처장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을 처음 공표했던 케빈 패럴 추기경이 교황의 주검을 관에 안치하는 의식을 주재했다.

 

패럴 추기경은 애도 기간의 시작을 상징하는 교황 관저 봉쇄 의식을 치르며 관저 출입문에 빨간 리본을 달고 문을 묶어 리본에 밀랍 인장을 찍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위가 공식적으로 종료됐음을 알리는 의식이기도 하다.

 

봉인된 건물은 교황의 전통적인 거주지인 사도궁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곳을 사용하지 않고 교황청 사제들의 기숙사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 거주하는 소박함을 보였다. 교황청은 이곳도 봉인했다고 밝혔다. 

 

21일(현지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을 발표했던 케빈 패럴 추기경이 애도 기간의 시작을 상징하는 교황 관저 봉쇄 의식을 치르며 관저 출입문에 빨간 리본을 달고 있다. AP연합

 

교황의 시신은 오는 23일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져 일반인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다. 교황청은 현재까지 구체적인 장례 일정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22일엔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 기간 전 세계 추기경과 각국의 정상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이 대성당을 찾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는 선종 후 4∼6일 사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로마에서 열릴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한 뒤 첫 외국 방문이 될 전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 세기 동안 전통에 따라 정교함을 더한 교황의 장례 의식을 간소화하는 작업도 나선 바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교황 장례 규칙을 담은 ‘교황 장례 예식서’ 개정판을 승인해 장례 절차를 대폭 줄였다. 개정 전 교황의 시신을 안치하는 관은 과거 측백나무와 아연, 느릅나무로 된 세 겹의 관으로 제작됐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연으로 내부만 덧댄 목관을 선택했다. 교황의 시신도 원래는 ‘카타팔케’ 라고 부르는 허리 높이의 단상에 안치됐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대한 장식 없이 개방형 관에 누운 채 조문을 받게 된다. 

 

21일(현지시각)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선종 후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한 묵주기도를 마친 신도들이 포옹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종 후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다른 곳에 안장될 수 있도록 규정도 개정했다. 그에 따라 교황은 바티칸에서 떨어진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묻히길 바란다는 유언을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이 끝난 뒤 2∼3주가 지나면 전 세계 추기경단은 사도궁 안에 있는 시스티나 경당에 모여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를 개최한다.  < 한겨레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