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9대 대선 땐 이승만·박정희 참배 거부

"친일·매국 세력 아버지, 독재자에 고개 못 숙여"
2022년 20대 대선부터 '국민통합' 강조, 전환점

"대한민국 위기, 국민 힘 최대한 하나로 모아야"
윤석열 쿠데타 겪으며 통합 필요성 더 절감한 듯

계엄 이후 주요 국면마다 '탈이념‧탈진영' 강조
'보수 책사' 윤여준 영입 등 '용광로 선대위' 예고
내란 세력 단죄는 확고…"통합과 봉합은 다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8일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고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2025.4.28 [공동취재] 연합

 

"친일 세력을 등에 업고 편법으로 정권을 창출한 이승만 정권은 수십 년간 일제에 부역해온 자들이 경찰·군인·공무원·교수·교사 등 사회 각 부문의 요직을 장악하게 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부터 부를 축적해왔던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이 한통속을 이루어 '정경유착'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 친일 세력과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형성하면서 '보수'를 자처했고, 이에 맞서 그들의 정치 농단을 막으려는 세력은 자연히 '진보'로 분류되었다. 이때부터 '보수'와 '진보'의 본래 의미가 완전히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성남시장이던 지난 2017년 2월 출간한 첫 자전적 에세이 <함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습니다>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해 서술한 대목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후보는 이 전 대통령을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내야 할 친일 기득권 세력의 뿌리이자 '가짜 보수'의 원흉으로 묘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래서 같은 해 1월 31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예비후보로서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았을 때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소는 참배한 반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는 외면했다. 이 후보에게 이승만‧박정희는 학살자 전두환과 동급의 독재자일 뿐이었다. 당시 그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친일·독재·매국·학살 세력이 다수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매국 세력의 아버지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했던 그야말로 독재자다. 우리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곳에 묻힌다 한들 광주 학살을 자행한 그를 추모할 수 없는 것처럼, 친일·매국 세력의 아버지와 인권 침해 독재자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뒤인 2022년 제20대 대선에 출마해 '국민통합 대통령'을 핵심 슬로건으로 띄우면서 그의 행보는 전환점을 맞았다. "정치교체와 국민통합에 동의하는 모든 정치세력과 연대해 국민 내각으로 통합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한 이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시작 하루 전인 그해 2월 14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도 차례로 참배했다. 기자들이 이유를 묻자 이 후보는 이렇게 설명했다.

 

"5년 전 경선 당시 내 양심상 그 독재자와 한강 철교 다리를 끊고 도주한, 국민을 버린 대통령을 참배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 그러나 5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저의 사회적 역할도 책임감도 많이 바뀌고 커졌다. 국민의 대표가 되려면 특정 개인의 선호보다는 국민의 입장에서, 국가의 입장에서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2025.4.28 [공동취재] 연합

 

이제 21대 대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그가 28일 첫 일정으로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자 다수 언론이 '파격 행보'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이 후보의 '통합 대통령'을 향한 발걸음은 이미 3년 전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이 후보는 이번엔 아예 순서를 바꿔 이승만·박정희·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순으로 묘역을 차례로 찾았다. 취재진의 물음에 이런 답변을 내놨다.

 

"정치는 현실이고 민생을 개선하는 것이 정치의 가장 큰 몫이다. 가급적 지나간 얘기, 이념이나 진영 등은 잠깐 곁으로 미뤄두면 어떨까. 저도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 생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양민 학살이라든지, 민주주의 파괴라든지, 장기독재라든지 이런 어두운 면이 분명히 있다. 또 한편으로 보면 근대화의 공도 있고, 음지만큼 양지가 있다. 다 묻어두자는 얘기가 아니다. 공과는 공과대로 평가하되 당장 급한 건 국민통합이다. (…) 대한민국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경제, 안보, 안전 등 모든 문제에서 위기이기 때문에 국민의 힘을 최대한 하나로 모아야 한다. 통합의 필요성과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다."

 

물론 내란 세력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는 욕망을 위한 헌정질서 파괴이자 최악의 내란 행위"라며 "지금 가장 큰 과제는 헌정질서를 회복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좌우나 진보·보수가 있을 수 없다. 헌정 파괴 세력을 징치(懲治)하는 것뿐 아니라 정상적 민주공화정을 회복하는 데 공감하는 모든 세력이 함께해야 한다. 그게 국민이 바라는 바"라고 확신했다. 또 "앞으로 가면서 오른쪽 길로 갈지 왼쪽 길로 갈지는 일단 (추후에 살피더라도) 뒤로 가는 세력의 시도를 막는 게 우선"이라며 "거꾸로, 퇴행적으로, 반대로 길을 가는 사람들은 막아야 한다"고 거듭 역설했다.

 

이번 현충원 방문이 3년 전과 달랐던 건 전직 대통령들에 이어 박태준 전 총리의 묘역까지 참배했다는 점이다. 포항제철(포스코) 회장과 자민련 총재를 거쳐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에 국무총리를 지낸 박 전 총리 묘역을 들른 배경에는 김민석 수석최고위원의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김 최고위원이 "이분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일종의 진보-보수 연합정권, 통합정권의 옥동자"라며 "통합의 아름다운 열매 같은 존재이니 찾아가 보자"고 이 후보에게 권했다는 것이다. 이 후보가 집권하면 정부 요직에 보수 인사를 기용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대표는 이미 지난 대선 과정에서부터 '국민통합'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특히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친위쿠데타를 겪으며 국가적 존망 차원에서 그 필요성을 더욱 뼈저리게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내란 사태로 훼손된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위험 수위까지 치달은 사회적 분열을 치유하는 한편 트럼프발 통상 압력 등 대내외적 경제‧안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헌정 파괴 세력'을 제외한 전 국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진짜 대한민국'으로 재도약시켜야 한다는 각성이다.

 

자신이 당선될 경우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모두 거머쥐고 독주할 거라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포용적 리더십'에 의한 '정치의 복원'을 부각하기 위해서도 통합 메시지는 긴요하다. 이는 대선에서 중도‧보수층을 망라한 최대치의 득표를 달성함으로써 향후 원활한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고려가 깔린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계엄 이후 주요 국면마다 좌우 이념을 넘어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점을 다짐해왔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선거운동용 파란색 점퍼를 입혀주고 있다. 2025.4.28. 연합

 

"더불어민주당은 더 낮은 자세로 정치의 사명인 '국민통합'의 책무를 다하겠습니다. 공존과 소통의 가치를 복원하고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되살리겠습니다. 국가와 국민만을 위한 탈이념‧탈진영 실용 정치만이 국민통합과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자 회복과 정상화, 성장과 재도약의 동력이라 믿습니다." - 2월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우리가 힘을 모으면 국제사회의 신뢰를 신속하게 회복하고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 시작됩니다. 국민과 함께 대통합의 정신으로 무너진 민생, 평화, 경제,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겠습니다." -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선고 관련 입장

 

"지금 이 순간부터 이재명은 민주당의 후보이자 내란 종식과 위기 극복, 통합과 국민 행복을 갈망하는 모든 국민의 후보입니다. 더 낮은 자세로 정치의 사명이자 대통령의 제1과제인 국민통합의 책임을 확실하게 완수하겠습니다." - 4월 27일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가 국어사전을 좀 뒤져서 찾아봤는데,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국민을 크게 통합하는 우두머리'라는 그런 의미가 있었습니다. (…) 국민을 하나의 길로 이끌어가는 것, 국민의 에너지·역량을 최대한 결집하는 것, 이것이 대통령이 할 일일 것입니다." - 4월 28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참석 모두발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24년 10월 30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2024.10.30 [공동취재] 연합

 

이 후보의 적극적인 통합 행보는 조만간 출범할 중앙선거대책위원회를 통해 한층 구체화할 전망이다. 이미 경선 캠프 구성 때도 통합에 방점을 찍었던 그는 '보수 책사(策士)'로 불리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30일쯤 열리는 선대위 발족식에서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이 후보는 이날 기자들에게 "윤 전 장관은 평소에도 제게 조언과 고언을 많이 해준다. 제가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라며 "많은 분이 계시지만 대표적 인물로 윤 전 장관께 선대위를 전체적으로 한 번 맡아주십사 부탁을 드렸는데 다행히 응해주셨다"고 밝혔다.

 

내부적으로는 경선 경쟁자 가운데 김동연 경기지사의 경우 현직 단체장인 탓에 합류가 불가능하지만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상임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표적 비명계인 박용진 전 의원의 선대위 참여도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본적으로 이념·계파에 얽매이지 않는 '용광로' 선대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는 그러나 "통합과 봉합은 다르다"며 내란 세력에 대한 단죄는 확실히 해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 15일 노무현재단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유시민 작가, 도울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와의 대담에서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묻고, 자수하고 자백하고 협조하는 사람의 경우는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충분히 책임을 묻지 못하면 어느 나라처럼 쿠데타가 6개월에 한 번씩 일어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후보는 전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곧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에는 "끊임없이 내란 세력의 귀환을 노리는 게 아닌가"라고 일갈한 뒤 "경계심을 갖고 내란 극복을 위해,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엄중한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이날 "마을의 통합과 안정을 이룰 때 그 마을에서 돌아다니는 가정 파괴범까지 통합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말로 이 후보의 입장을 뒷받침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