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억제 명분으로 이란 폭격한 도널드 트럼프, 전통적 개입주의로 회귀

▲2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 중인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이스라엘-이란 사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뒤로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보인다.AFP 연합
미국이 다시 국제 분쟁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6월 21일, 사상 처음으로 이란 본토를 폭격한 이 결정은 단순한 군사행동을 넘어, 트럼프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스스로 불투명하게 만드는 서막이 되었다.
이 결정은 이전의 정치 문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미국을 만들겠다던 트럼프의 선언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개입을 거부하며 다른 길을 약속했던 그는, 결국 다시 낯선 타자를 악으로 규정하고 먼 나라의 전쟁에 개입하는 익숙한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겉으로는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정밀 타격이라는 명분이 동원됐지만, 이 구조는 전혀 낯설지 않다. 20년 전 이라크에서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라는 '불확실한 위협'을 내세워 침공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그 명분은 결국 허구로 드러났다.
이번에도 익숙한 패턴이 반복됐다. 이란은 미국이 설계한 '악의 캐비닛' 속에서 다시 타자로 호출됐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의 전형, 즉 위협적이고 낯선 타자를 만들어냄으로써 스스로의 문명성을 정당화하는 서구의 시선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 타자는 더 이상 현실의 위협이 아니라 서사의 소재가 된다. 다수의 외신 보도에서도 드러나듯, 이란의 핵은 실체보다 이야기 속 악역으로 기능한다. 권력이 위기를 모면하려 구성한 서사 속 대체 악으로, 이란은 그렇게 다시 호출되었다.
그리고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급하게 이스라엘의 연출에 합류했다. 그는 자신이 쓰지 않은 대본에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그 순간 그의 정치적 핵심 정체성, 즉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강해지는 미국'이라는 이미지는 허상으로 전락했다.
'개입 없는 리더십'의 심각한 균열

▲22일(현지사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건물에 걸린 반미 벽화 주위로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AFP 연합
이번 공습의 공식 명분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차단하기 위한 '정밀 타격'이었다. 하지만 다수의 국제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 위협의 실체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단순한 군사 작전이 아니라 서사적 연출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 직후, "장기적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은 낮으며, 오히려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고, 프랑스의 <르 몽드>는 "핵무장을 막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는 논리는 이란 내부의 체제 위기 인식과 맞물린 오판"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반박은 미국 내부에서 나왔다. 미 국방정보국(DIA)은 이번 공습이 이란의 핵시설에 가한 타격이 "심각하지 않으며", 핵무기 생산 지연도 "6개월 미만"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명분이 된 위협이 사실상 효과적인 타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역시 이란이 "즉각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진단한 바 있다. 결국 '핵 억제'라는 명분은 구조적으로 취약했고, 군사행동의 설득력은 애초부터 허약했다. 슬로우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영국의 보수 매체 <언허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과의 충돌에 스스로 휘말린 모양새"라며 "백악관이 전장을 포위당했다"고 표현했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이번 사건은 전략적 성취로 받아들여졌다. 보수 일간지 <마리브>는 미국의 공습을 "이스라엘의 오랜 꿈이 실현된 순간"이라 평가했고, 미국의 행동을 이스라엘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외교·군사 기획의 연장선에 위치시켰다.
이처럼 외신들은 미국의 결정이 주도적 판단이라기보다, 이스라엘이 이미 설계한 군사 시나리오를 뒤따른 사후적 동참에 가깝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은 스스로의 의지라기보다 이스라엘이 쓴 대본 속 한 장면을 연기했다는 것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왜 트럼프는 자신이 정치적 정체성으로 삼아온 핵심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며, 이스라엘의 작전에 병정처럼 합류했는가. 왜 스스로 구축한 '비개입의 리더십'을 버리고, 다시 익숙한 개입주의의 무대에 올라섰는가.
그 선택은 국제 질서의 전략적 관리라기보다, 균열된 국내 정치의 틈을 봉합하려는 일시적 연출에 가까웠다. 안보적 판단보다는 국내 정치 위기 속에서 지지층의 이탈 조짐과 중간 선거 구도의 불확실성을 감추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트럼프의 정체성 혼란은 역설적으로 그의 핵심 지지층 균열을 더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스티브 배넌, 터커 칼슨 등 지지층 내 핵심 인사들까지 "전쟁 없는 미국" 약속이 무너졌다며 그에게 경고를 보냈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6%만이 이번 공격을 지지했다. 트럼프가 스스로를 차별화해 온 '개입 없는 리더십'이라는 정체성은 이 결정으로 심각한 균열을 맞게 된 셈이다.
전쟁의 무대에 올라선 트럼프

▲21일(현지시간) 이란 핵 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시작된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국가안보팀이 워싱턴 D.C.의 백악관 상황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연합
트럼프는 정치 초입부터 미국 외교정책의 '주류'와 선을 그어왔다. 특히 네오콘이라 불리는 개입주의 전략가들을 '미국을 끝없는 전쟁에 끌고 간 장본인'이라 비판했고, 2003년 이라크 침공 역시 그들의 오만한 실패라 규정해 왔다. 하지만 이번 이란 폭격은 역설적으로 그가 경멸하던 바로 그 세계관과 동일한 궤적 위에 놓였다.
'정밀 타격', '핵 억제', '악의 축'이라는 표현은 과거 부시 행정부의 서사적 어휘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타자의 위협을 극대화하고, 그 위협을 통해 개입의 정당성을 구성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네오콘식 위기 구성법이다. 이라크 침공을 비판했던 자신이 정작 이번에는 그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전쟁의 무대에 올라섰다.
트럼프의 이란 공습 결정은 외교정책의 노선을 바꾼 전환점이자, 정치적 고립을 자초한 계기이기도 했다. 그는 이 결정으로 인해 전통적 개입주의 세력과 자신의 핵심 지지층 모두로부터 동시다발적인 반발에 직면했다. 일종의 이중 협공이다.
네오콘 진영은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의 한 칼럼은 "트럼프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공허한 위선"이라며, "그 역시 전임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그가 비판하던 전쟁 중독적 외교 노선으로 스스로 돌아간 것에 대한 조롱이었다.
결국 트럼프는 '전통적 워싱턴'의 지지도 얻지 못한 채, 자신의 정치적 기반에서도 균열을 일으켰다. 외부의 인정 없이 내부의 신뢰를 잃는 이중의 협공 속에서, 그의 정체성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다른 미국'을 약속했지만,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위기를 봉합하려 했고, 그 선택은 결국 그 자신을 고립시켰다. 정체성의 부정은 단순한 전략의 전환이 아니라 권력의 본질을 노출시킨다.
외부의 전쟁은 언제나 내부의 위기를 은폐하려는 수단이었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부를 잃은 지도자는 외부의 전쟁으로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2025년 6월, 미국은 다시 한번 그 진실을 되풀이하고 있다. < 임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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