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군함도 문제' 일본 주장 채택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47차 회의가 열리고 있다. 유네스코
한국이 강제징용 현장인 군함도에 관한 표 대결에서 일본에 패했다. 제4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군함도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주장이 채택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7일 자 <교도통신>은 "파리에서 개최 중인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負)의 역사에 관한 일본의 대처법을 위원회에서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한국 측의 주장을 물리쳤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가 강제노동 현장이었음을 알리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을 농락하는 일이자 세계인들을 기만하는 일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그곳에서 벌어진 어두운 역사, 부(負)의 역사를 시인하는 후속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이런 입장을 지지해 왔던 세계유산위원회가 이번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위원회는 '일본은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이후의 후속 조치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으며, 한국이 제기한 문제는 유네스코가 아닌 한일 양국 간에 논의돼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채택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관한 문제를 유네스코가 아닌 한일 간에 처리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수용한 것이다.
세계유산위원회가 한국의 주장을 배척하고 일본의 주장을 채택한 것은 표 대결의 결과다. 위원회에 속한 21개 국가 중에서 7개국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고 3개국은 반대했다. 무효는 3표, 기권은 8표다.
사흘 만에 말 바꾼 일본 정부

▲군함도.위키미디어 공용
한국은 피해자 국가다. 명분을 보유한 피해자 측이 패했다는 것은 한일 역사문제에 관한 한국의 외교력에 결함이 있음을 드러낸다. 지난 3년간 일방적인 양보만 해온 한국의 대처법에 결함이 있다는 적색 신호다.
잔혹한 노예노동으로 인해 '지옥의 섬'으로 불리는 군함도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곳이 아니었다. 제국주의 범죄유산을 등재하는 국제기구가 있다면 그곳에서 다뤄야 할 장소다. 그런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가 독일 본에서 열린 2015년 7월 5일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부산 남쪽인 규슈섬 서쪽 군함도에서 벌어진 한국인 강제노역을 공식 인정하겠다고 서약했다. 이에 따라 21개 위원국 만장일치로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날 일본 정부는 "과거 1940년대에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라며 "해당 시설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안내 센터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위원회에서 서약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사상 최초로 노동자 강제동원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군함도 같은 범죄 현장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일본 정부도 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을 때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본은 '정보센터를 통해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겠다'고 약속하는 방법으로 한국의 반대를 누그러트리며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를 관철시켰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사흘 만에 말을 바꿨다. 그달 8일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징용을 강제노동으로 볼 수 없다'며 이런 관점으로 군함도에 관한 정보를 세계인들에게 제공하겠다고 발언했다. 한국인들이 군함도에서 노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강제노동은 아니었다는 발언이 이처럼 외무성 관계자발로 한국 언론에 전해졌다.
그 뒤 일본은 군함도 산업유산정보센터 설치를 차일피일 미뤘다. 2018년에는 유네스코가 일본의 후속조치가 미흡하다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계속해서 재촉을 받던 일본은 군함도와 동떨어진 도쿄 신주쿠에 정보센터를 설치한 뒤 2020년 6월 15일에 공개했다. 군함도에서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정보센터를 설치한 일본은 애초 약속과 달리 '강제노역은 없었다'는 취지의 자료들을 전시했다.
유네스코는 그 뒤에도 후속조치 이행을 거듭 촉구했다. 2021년 7월 22일에는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는 결정문을, 2023년 9월 14일에는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또다시 채택했다.
사도광산에 대한 입장 바꾼 한국 정부

▲2024년 7월 25일 윤덕민(왼쪽) 주일 한국대사가 이임 인사차 도쿄 총리관저를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주일 한국대사관
이처럼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한국의 입장에 섰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을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렇게 된 데는 비슷한 사안인 사도광산 문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강제징용 현장인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작년 7월 27일이다. 사도광산에 관한 한국 정부의 애초 입장은 당연히 비판적이었다. 2021년 12월 28일,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군함도에 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일본이 또 다른 강제징용 현장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매우 개탄스러우며 이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표명했다.
그랬던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바뀌고 있다는 보도가 작년 5월 일본에서 나왔다. 그달 11일 자 <산케이신문>은 "2022년 5월 한일관계 개선에 전향적인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면서 한국 측 태도에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산케이신문>은 윤덕민 당시 주일한국대사의 발언을 근거로 제시했다. "절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역사를 표시할 수 있는 형태로 할 필요가 있다"는 등등의 발언이었다.
그달 24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윤덕민 대사는 그 전달에 사도광산 지역을 찾아가 "상세한 안내가 없다"라며 "예전에 했던 걸 이어서 하면 된다"는 알쏭달쏭한 발언을 했다. 안내문을 언급하면서 나온 윤 대사의 발언을 일본 언론은 '군함도 사례를 참고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주일한국대사관 측은 부인했지만, 일본 측은 군함도 때 했던 대로 하면 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사도광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 변화는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를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일본이 자신감 있게 밀어붙인 것은 주일대사를 통한 한국 정부의 이상야릇한 입장 표명들이 일종의 지지 표시로 이해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광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비슷한 사안인 군함도 문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사도광산 문제에서 일본을 편들면, 제3국들은 한국 정부가 군함도 문제에 대해서도 그런 입장을 갖게 됐으리라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강제징용 현장에 대한 기존 입장을 견고하게 유지했다면,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들이 일본 편을 드는 초유의 사태는 벌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한일 역사전쟁에 관한 한국 외교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노출시켰다. 중립적인 제3자들이 피해국이 아닌 가해국을 편든 것은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부에도 문제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 김종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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