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쪽 반박에 재판 중 “구두로 고치겠다” 자가부정
수사·기소 내용 스스로 뒤집어... 정치- 표적수사 드러내

 
 
     대전지검 전경. 최예린 기자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 의혹 사건’ 재판에서 검찰이 “공소장 내용을 통계 ‘조작’이 아니라 ‘수정’으로 고치겠다”며 자신들의 한 수사와 기소 내용을 스스로 뒤집었다. 재판에서 감사원이 부동산원 직원들에게 ‘월성원전 사건’을 사례로 들며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감사기간 끝나고도 불러 재조사할 테니 두고 보아라’고 압박한 정황도 드러났다.

 

16일 대전지법 형사12부(재판장 김병만) 심리로 열린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의 김수현·김상조 전 정책실장과 윤성원 전 국토교통부 차관 등의 통계법 위반·직권남용 등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은 ‘통계 조작’이란 용어와 관련해 “애당초 이 사건 공소 사실은 피고인들이 통계 업무 종사자들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지, 조작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과는 무관하다. 이 재판에서 ‘조작’을 놓고 더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 쪽 변호인이 검찰 공소장의 ‘범죄일람표’ 항목에 ‘변동률 조작 전·후’라고 적힌 것을 지적하며 반박하자 곧바로 검찰은 “그러면 지금 구두로 ‘조작’을 ‘수정’이라고 (공소장 내용을) 고치겠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의 이런 태도는 자신들의 지난 수사와 기소 내용을 스스로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대전지검은 지난해 3월14일 ‘국가통계 조작 사건 수사결과’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면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국토부 인사들이) 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해 국민의 삶과 직결된 국가통계를 조직적으로 ‘조작·왜곡’했다”고 명시한 바 있다.

 

이 보도자료에서 검찰은 “(문재인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의 김수현·김상조 전 정책실장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 효과로 집값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기 위한 목적 등으로 주택통계인 한국부동산원 산정 ‘주간 주택가격 변동률’을 125차례에 걸쳐 ‘조작’했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수치가 마음에 안 들면 부동산원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상시적으로 주택통계를 ‘조작’했다. 특히 부동산 대책 전후로 그 효과가 나타난 것처럼 보이게 하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과 2020년 총선 무렵 ‘조작’이 집중됐다”고 밝혔다.

 

당시 이례적으로 검찰청사로 기자들을 불러 진행한 브리핑에서도 서정식 당시 대전지검 차장검사는 이 사안이 ‘통계 조작 사건’임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재판에서 처음으로 ‘감사원의 압박·조작 감사’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드러나자, 기소 뒤 1년4개월이 지난 지금 갑자기 검찰이 ‘애초 통계조작 사건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태세 전환을 한 셈이다. 이런 검찰의 태도에 이날 재판정에선 “갑자기 ‘조작 사건’ 자체가 실종된 거냐”는 피고인 쪽의 한탄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3월14일 대전지검이 발표한 ‘국가통계 조작 사건 수사결과’란 제목의 보도자료의 첫머리. 최예린 기자

 

이날 재판에서는 감사원의 압박 감사를 의심할 만한 증거도 추가로 확인됐다. 증인 신문 과정에서 증거로 제시된 녹취록에서 부동산원 주택통계부 직원 ㄴ씨는 “감사원 감사관이 ‘(부동산원) 감사실장이 한수원·산자부 얘기 안 해요?’라고 물으면서 ‘이거 확답은 못 하지만, 월성원전 사태 때도 한국수력원자력 뭐라 한 사람 있냐? 산업통상자원부만 했지. 이 얘기를 감사실장한테 했는데 왜 부동산원 직원들은 말을 이해 못 해 먹냐’며 ‘지금 내가 알기론 다른 부동산원 직원인 ㄱ·ㄷ·ㄹ씨가 룰루랄라 하고 있고, 특히 ㄹ씨(전 주택통계부 팀장)는 감사받을 때 태도가 기분 나쁘고, 괘씸하다. 그런 분들은 우리가 감사 기간 끝나고 다 감사원으로 불러서 재조사할 거다. 그때도 그럴지 두고 보아라’라고 하더라’’고 다른 직원에게 말했다.

 

이 녹취록은 검찰이 압수한 ㄴ씨 휴대전화에 있던 수십개의 녹취를 속기사를 통해 ‘녹취록’으로 만든 뒤 재판에 증거로 등록한 것이다. 녹취록에 언급된 부동산원의 감사실장은 감사원 출신으로 파악됐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월성원전’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자유한국당의 감사 요구를 계기로 시작된 사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감사원은 ‘산자부 지시로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이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한 경제성을 조작했다’고 결론 냈으나 검찰(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은 한수원에선 전직 사장을 뺀 누구도 기소하지 않았다. 즉 녹취록 내용은 감사에 협조를 잘하면 ‘월성’ 때 한수원처럼 부동산원 직원들은 책임을 피하게 해주겠다는 회유·압박성 발언으로 풀이된다.

 

실제 감사원은 ㄱ씨와 ㄹ씨를 감사실시 기간(2022년 9월26일∼2023년 3월31일)이 끝난 뒤에도 서울 감사원으로 여러차례 불러 조사했다. 감사실시 기간 뒤 ㄱ씨는 15차례, ㄹ씨는 8차례 출석 조사받았다. ㄹ씨는 감사 초기(2022년 9월28일) 문답에선 “(부동산원 본원이 주택통계를 올렸다 내렸다 수정하는 것이) 조작은 아니다. 케이비(KB)부동산 통계와 부동산원의 통계 수치가 다르면, 그중 무엇이 맞다·틀리다 할 수 있나, 그것을 판단할 기준이 있나?”라고 진술하다가 감사가 이어지면서 답변이 달라졌는데, 감사관이 “왜 지난 조사와 달리 진술을 번복하냐?”고 묻자 “회사 방침이 감사원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라고 부동산원 감사실에서 들었기 때문이고, 그 전과 생각이 달라진 건 아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부동산원 직원 ㄱ씨는 “부동산원 직원들이 감사실시 기간보다 종료 뒤인 4월부터 더 많은 조사를 받은 것은 맞다”며 “감사 초기 부동산원 직원들 분위기는 감사원의 주장과 달랐던 것도 맞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 다음 재판은 오는 8월13일 대전지법 230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최예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