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정치학 - 비극을 이용하는 극우의 선동
언론 장악 시도와 비상사태 선포 가능성까지
좌파 척결 선포와 '안티파' 테러단체 지정 시도
국경을 넘는 극우 연대와 국제적 반동의 흐름
저항 구심점이 되기 힘든 미국 민주당의 문제
놀라운 유사성 보이는 윤석열과 트럼프 행보

최근 벌어진 찰리 커크 암살 사건의 범인으로 붙잡힌 타일러 로빈슨의 정치적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방 수사 당국은 로빈슨과 좌파 단체와의 연계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고, 불분명하고 어지러운 정보들 속에서 '정치적 반대자라기보다는 개인적 불만에 따른 독자적 행동으로 보인다'는 평가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처럼 진실은 아직 저 너머에 있지만, 이미 거대한 정치적 폭풍이 미국을 휩쓸기 시작했다. 트럼프와 미국 극우 세력은 진실이 규명되기도 전에 '급진 좌파의 테러'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들에게 증거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서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급진 좌파의 증오에 찬 수사가 결국 이런 끔찍한 테러를 낳았다"고 선언하며, 이 비극을 정치적 무기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극우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들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좌파'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극우 선동가 스티브 배넌은 "이 악마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국외로 몰아내는 것이지 중간 지점은 없다"고 선언했다. 억만장자 극우 인사인 일론 머스크는 "선택은 싸우거나 죽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커크의 죽음은 슬퍼할 비극이 아니라,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공고히 할 절호의 기회가 됐다. 영국 <가디언>은 이 상황을 "우리 시대의 제국의회 방화 사건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이라고 경고한다. 1933년 독일 제국의회 방화 사건이 히틀러와 나치에게 정적을 탄압하고 독재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지금의 반응과 대응은 수년간 미국의 극우 진영이 공들여 구축해 온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그들은 사회적 갈등이나 비극이 발생할 때마다,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하고 정적을 악마화하는 데 활용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의 선동에 올라타서, 지금 상황을 '미국을 파괴하는 좌파 세력과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전면적 탄압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는 "이 잔혹한 행위에 이바지한 모든 이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조직까지 하나하나 찾아내겠다"고 공언했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하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트럼프 재집권 전에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주도해 준비한 '프로젝트 2025'의 본격적 실행을 위한 완벽한 명분이 되었다.
'프로젝트 2025'는 단순히 공화당 행정부의 정책 제안서가 아니었다. 대통령에게 연방 정부의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고, 독립적인 사법부와 행정기관을 무력화하며, 비판적인 언론을 통제하고 말살하려는 치밀하게 설계된 권위주의적 전체주의 체제를 위한 청사진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첫 번째 칼날은 언론을 향하고 있다.
ABC 방송의 심야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멀이 커크의 죽음에 대한 트럼프의 잘못된 대응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해당 방송이 무기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트럼프는 "나에게 나쁜 보도만 하는 방송사들의 면허를 취소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고, 이는 단순한 협박이 아니다. '프로젝트 2025'에는 연방통신위원회(FCC)를 장악하여 비판적인 언론사에 대한 보복과 장악을 실현할 구체적인 계획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공화당은 의회에서 '찰리 커크 추모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그의 기일을 '미국 애국자의 날'이라는 국경일로 지정했다. 이는 커크를 국가적 순교자로 신격화하고, 그에 대한 모든 비판을 '반애국적 행위'로 규정하려는 시도다. 백악관에서는 앞으로 상황 전개에 따라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가능성까지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행정부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여 의회의 견제 없이 군대를 동원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조치다. 이것은 행정부를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이들로만 채워서 법무부, FBI 등 권력 기관들을 완전히 사유화하려는 계획과도 연결돼 있다. 또한, 국내 법 집행에 군대 동원을 가능하게 하는 '반란법'의 적극적인 활용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트럼프는 재집권 이후부터 이민자 단속, 시위 진압 등의 명분으로 경찰력뿐 아니라 군대까지 동원해왔다. 지난 8월부터 LA와 워싱턴 DC에 1만 명 이상의 주방위군을 투입해 '이민자와 범죄 단속' 명분으로 사용했다. 멤피스와 시카고에서도 "거리의 군사화"가 진행 중이다. 연방 판사는 이것이 "국내 법 집행에 군 사용 금지 원칙 위반"이라고 판결했으나, 트럼프는 아랑곳이 없다.
커크 암살 사건을 계기로 '좌파 척결'이라는 명분 아래, 이러한 군사력의 국내 투입이 더욱 노골화되고 정당화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안티파(Antifa)'를 테러단체로 지정하려는 시도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찰리 커트 암살과 '안티파'가 연결돼 있다는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고 있지만, 트럼프에게는 그것도 역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사실 '안티파'는 명확한 조직이나 지도부 없이, 파시즘에 반대하는 다양한 개인과 그룹을 아우르는 추상적 개념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그러한 추상성과 모호함을 이용해서 반대파 전체를 폭력 집단으로 매도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모든 활동을 '테러'로 규정하여 탄압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더구나 찰리 커크 암살 사건의 파장은 미국 국경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극우 세력에게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위한 강력한 근거를 제공하며, 국제적 결집과 연대의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
헝가리의 극우 독재자 빅토르 오르반, 영국의 극우 인종주의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 프랑스의 신나치 마린 르펜 등 유럽의 극우 지도자들은 찰리 커크를 애도하면서 '서구 문명을 위협하는 좌파의 폭력성'을 규탄했다. 이는 각국에서 이민자, 소수자, 급진좌파 등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계산된 행동이다.
실제로 영국 런던에서는 최근 사상 최대 규모인 10만 명 이상의 극우 시위대가 결집해서 행진하며 경찰과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국제적 극우의 결집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윤어게인', '스탑 더 스틸'을 외치며 재기를 노리던 한국 극우 세력은 트럼프의 방식을 모방하여 찰리 커크를 추모하면서 반격과 결집의 기회로 삼고 있다.
결국 커크 암살 사건은 미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문제는 갈수록 극우적 반동의 길로 치닫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를 막아 세울 힘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미국 민주당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저항의 구심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에 대한 호감도는 34%에 불과했다.
무당층의 지지율은 27%까지 떨어졌다. 민주당이 미국 시민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당 지도부는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폭주에 대해 원론적 비판을 내놓고 있지만, 대중의 분노를 조직하고 실질적 저항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들의 대응은 종종 법적 절차와 의회 내 협상을 강조하는 데 그친다.

이것은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려는 트럼프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하고, 민주당이 기득권 엘리트 정당이라는 이미지만 강화하며,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 특히 젊은 층과의 괴리를 심화시키고 있다. 사실 이민자 추방은 민주당 정부에서도 진행됐던 일이고, NAFTA 같은 자유무역협정은 미국 노동자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앞장서 도운 것은 트럼프 행정부 이전에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작됐던 일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트럼프 비판은 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민주당과 월가의 엘리트들이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을 통해서 망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포퓰리즘적 선동으로 그 빈틈을 파고든다.
이러한 공백 속에서, 반트럼프 저항 운동의 실질적 동력은 민주당 안팎의 왼쪽에서 더 잘 찾아볼 수 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하원의원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트럼프와 그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급진적인 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언론 인터뷰, 소셜 미디어, 대중 집회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를 끊임없이 폭로하고 비판하며 노동자, 청년, 이민자, 소수자 등 기존 정치에서 소외되었던 계층을 조직하며 저항의 에너지를 결집시키고 있다. 지미 키멀의 방송 중단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낸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은 민주당 주류가 제시하지 못하는 명확하고 날카로운 반대 논리와 대안을 제시하며, 트럼프 시대의 암울한 현실에 절망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민주당의 무기력함은 역설적으로 민주당 안팎의 저항 세력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미국 정치의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사회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미국인이 42%에 달했으며,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그 비율이 74%까지 치솟았다. 이는 냉전 시대의 유물인 '사회주의=악'이라는 낡은 등식을 넘어, 불평등과 기업의 탐욕에 지친 많은 미국인이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 속에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도 있는데, 그 가장 상징적인 인물은 바로 다가오는 11월 뉴욕 시장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뉴욕주 하원의원 조란 맘다니다. 우간다 출신 이민자의 아들인 33세의 맘다니는 '집세는 너무 비싸고, 봉급은 너무 적다'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메시지로 뉴욕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뉴욕의 거리 곳곳을 누비며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치솟는 임대료와 부족한 보육 시설 문제를 지적하고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캠페인은 트럼프의 증오와 분열의 정치에 맞서, 연대와 희망의 정치가 승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와 극우 세력의 집중적 공격도 받고 있다.
현재 2위 후보를 20% 이상의 격차로 따돌리고 있는 조란 맘다니가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 시장으로 당선된다면, 이는 반트럼프 저항 운동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반동적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민주당 주류의 어설픈 중도 노선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급진적 변화의 약속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지금 보이는 모습들 - 정적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 언론 장악 시도, 법치주의의 무력화, 군과 경찰을 동원한 공포 분위기 조성 - 은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걸어갔던 길과 너무나 유사하다. 이 두 사람은 민주적 절차에 대한 경멸, 비판 세력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통치 방식을 공유한다.
윤석열은 집권 이후 비판적인 언론을 '가짜뉴스'로 매도하며 압수수색과 고발을 남발했고, 방송통신위원회를 동원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 시도했고, 노동조합을 '건폭'으로 규정하고, 시민단체를 '이권 카르텔'로 몰아세우며 사회 곳곳의 반대 목소리를 짓밟았다. 윤석열 12.3 쿠데타 이전에 4년 전 미국에서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가 있었다.
윤석열이 '종북 반국가 세력'을 들먹였듯이 트럼프는 '안티파'를 테러단체로 지정하려 한다. 이처럼 두 사람의 통치 방향은 국경을 넘어 놀랍도록 닮았다. 이것은 만약 트럼프의 시도가 성공할 경우, 한국 사회가 마주할 미래를 암시하는 불길한 전조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성공은 '윤어게인'을 외치는 한국의 극우 세력에게 엄청난 용기를 줄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는 지금 한국에 '25%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감수하거나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내놓으라'는 날강도 같은 깡패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앞에서 한국은 언제든지 희생양이 될 수 있다. 결국, 트럼프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단순한 한 나라의 정치적 혼란이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의 미래가 걸린 시험대이다.
한국에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와 윤석열의 쿠데타에 맞서며 민주주의를 지켜낸 '빛의 혁명'의 경험은 미국 시민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우리는 국경을 넘어서 서로의 경험을 배우고, 서로의 투쟁을 지지할 수 있다. 우리의 싸움은 연결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연대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전지구적 투쟁에서 우리는 언제나 함께해야 한다. < 전지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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