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어렵게 한 루이지애나 법에 5 4로 폐기 의견

보수성향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선례이유로 동참

대법원, 앞서 성소수자와 불법 체류 청소년 보호 판결

             

보수 우위로 이뤄진 미국 연방대법원이 29일 여성의 낙태 권리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놨다. 최근 성 소수자의 직장 내 고용 차별을 금지하고,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제도(DACA·다카) 폐지 추진에도 제동을 건 데 이어 대법원이 잇따라 진보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이날 주 안에 낙태 클리닉 숫자와 낙태 시술 의사 수에 제한을 두도록 한 루이지애나주의 낙태의료시설법이 헌법이 보장한 여성의 낙태 권리를 침해한다고 결정했다. 이 법은 약 30마일(48) 이내에 두 개 이상의 낙태 클리닉을 두지 못 하게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루이지애나주에 낙태 클리닉은 단 한 곳 뿐이다. 또한 이 법은 낙태 시술도 환자 입원 특권을 가진 의사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9명의 대법관이 논쟁한 끝에 5 4로 이 법 폐기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루이지애나 법은 낙태 시술 제공자의 수와 지리적 분포를 급격히 감소시켜 많은 여성이 주 안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를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다수 의견인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이 법이 낙태를 하려는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장애물이며, 헌법상의 낙태권에 지나친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눈에 띄는 것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다수 의견에 동참한 점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지명된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만 루이지애나 법이 위헌이라고 본 게 아니라, 기존 대법원 판례를 존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에 대법원은 이번 루이지애나 법과 거의 똑같은 텍사스주의 법을 폐기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당시 로버츠 대법원장은 그 결정에 반대했었다. 하지만 당시 다수 의견으로 텍사스주 법을 무효화한 만큼, ‘선례 구속의 원칙에 따라 루이지애나 법도 무효화해야 한다고 봤다는 것이다.

반면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등 4명의 대법관은 루이지애나 법이 낙태를 원하는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특권을 인정받은 의사만 시술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의사들의 능숙함을 보장하는 것을 도와준다며 이 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이번 판결이 근거 없는 낙태 법리를 영구화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 백악관은 유감스러운 판결이라고 밝혔다. 케일리 매커내니 대변인은 성명을 내어 대법원이 루이지애나의 정책을 파괴해 산모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을 모두 평가절하했다선출직이 아닌 대법관들이 근본적인 민주주의 원칙의 가치를 소중히 하지 않고, 자신의 정책 선호에 따라 낙태에 찬성해 주 정부의 자주적인 특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최근 두 차례 이어진 진보적 결정을 잇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대법원은 지난 15민권법은 고용자가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근거해 직원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판결해, 연방정부의 직장 내 작업자 보호 조처가 전국의 성소수자(LGBT,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직원까지 확대돼야 한다는 첫 판결을 내렸다. 이 때는 로버츠 대법원장과 고서치 대법관 등 보수 대법관들도 찬성해 6 3 판결이 났다. 대법원은 또 18일에는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제도(DACA·다카) 폐지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때도 다수 의견에 동참했다. 낙태와 성 소수자 권리, 이민 문제는 미국 내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는 문제로,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