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지나도록 가해자 조사도 안해 체육출신 여성 차관 역할해달라

국회는 상임위 차원 청문회 추진, 경찰청 특별수사단 꾸려 비리 단속

     

문재인 대통령이 7일 고 최숙현 선수 사건에 관해 불행한 사건의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며 폭력, 가혹 행위를 포함한 체육계 비리를 뿌리 뽑으라고 지시했다. 국회는 상임위원회 차원의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선수에 대한 가혹 행위와 폭행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구시대의 유산이라며 체육계의 각종 부조리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빠르게 적극적으로 바로잡아 국민께 확실히 신뢰를 심어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그는 최 선수가 지도자와 선배에게 가혹 행위를 당한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는 매우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메달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고, 성적이 선수의 행복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문체부의 늑장 대처에 대해선 질타했다. 문 대통령은 체육계의 폭행과 성폭행 사건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 선수들인 점을 들며 여성 체육인 출신 차관(최윤희 2차관)이 더 큰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 닷새 전 같은 지시를 했는데도 문체부 특별조사단이 여태 가해자인 감독과 트레이너, 선배 선수를 조사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지난해 1월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 사건이 경종을 울렸는데도 가혹 행위가 반복해 벌어진 상황에 유감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청문회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했다. 도종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야당 간사와 논의해 청문회 일정을 잡아야겠다고 여당 간사에게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특별수사단을 꾸려 체육계 비리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경찰청은 체육계 불법행위 특별수사단을 운영해 불법이 확인되면 엄정하게 수사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9일부터 88일까지는 체육계 폭행, 갈취 등에 대한 특별 신고 기간도 운영한다. < 성연철 채윤태 기자 >

영국도 선수 폭행 파문코치에 맞고 단식 강요

두 여성 체조 선수 올림픽 못가고 상담치료

영국 체조계가 폭행 스캔들에 휩싸였다.

케서린 라이온스(20)와 리사 메이슨(38) 등 두 영국 전직 체조 선수는 지난 6일 영국 <ITV>와 인터뷰에서 코치에게 맞고 단식을 강요받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라이온스는 유럽선수권 대회 주니어 챔피언 출신이고, 메이슨은 영연방 국가 체육대회인 커먼웰스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들 외에 폭행과 괴롭힘을 당한 전·현직 체조 선수가 수십 명에 이르지만, 내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등의 이유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이번 폭로는 지난달 24일 미국 체조계의 성추행 스캔들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애슬리트 A)가 공개된 데 이어 이뤄졌다.

라이온스는 항상 올림픽 출전을 꿈꿨지만,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그가 간 곳은 병원이었다. 코치에게 당한 괴롭힘 때문에 몸은 물론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어, 1년 반 동안 상담을 받아야 했다. 라이온스는 어려서부터 코치에게 자주 맞아 늘 멍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7~8살 때 울거나 소리치면 진정할 때까지 식당 찬장에 갇혀 있어야 했고, 다쳐도 훈련을 받아야 했다. 훈련 캠프에서는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며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해, 집에 돌아와서도 정상적인 식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학대로 그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판정을 받았다.

메이슨도 10살이 되기 전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코치가 손바닥이 벗겨지고 피가 날 때까지 철봉에 매달려 있게 했다며 이후 소독용 알코올을 손에 들이부었다고 말했다. 메이슨은 체중을 줄여야 한다며 속옷 차림으로 훈련단 앞을 걸어야 했고, 방에 갇힌 채 단식을 강요당했다고도 했다. 또 발목이 삐고 정강이 피로 골절에 시달렸지만 진통제를 먹고 훈련을 해야 했다. 메이슨은 현재 체육계 엘리트 선수들도 침묵 속에서 비슷한 학대를 당하고 있다며 몇몇 선수가 내게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말했지만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2017년 체육계 복지 파문 때 비슷한 폭로가 있었지만, 이렇게 피해자들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 폭로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비슷한 폭로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체조계는 이날 성명을 통해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우리는 선수들에게 해를 끼치는 어떤 행동도 비난하며 이는 우리의 훈련 기준과 반대된다고 밝혔다. 다큐멘터리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는 미국에서 대학 체조팀과 체조대표팀 주치의였던 래리 나사르가 수십년 동안 100명이 넘는 여자 선수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내용을 담았다. 나사르는 체조 선수들의 미투 선언이 이어지며 2018년 결국 징역 175년형을 선고받았다. < 최현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