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구진, 회복환자의 혈장 항체구조 현미경 촬영

돌기단백질의 세포 결합영역을 이불처럼 덮어버려

 

                                 코로나19 바이러스 돌기단백질의 RBD 영역(회색)을 덮고 있는 중화항체(녹색). 칼텍 제공

    

바이러스를 비롯한 병원체가 인체에 침투하면 우리 몸 안에서는 이들 병원체와 면역 시스템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이 싸움 과정에서 우리 몸에서는 병원체에 대항하는 특수 단백질, 즉 항체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인체 면역 시스템은 병원체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다양한 유형의 항체를 만든다. 축구 경기에서 상대편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 것과 같다. 그 중 어떤 것은 잘 먹히지만 어떤 것은 병원체 차단에 실패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병원체를 무력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한 항체를 중화항체라고 부른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연구진이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회복한 환자의 혈액에 형성된 중화항체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고해상도 현미경으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논문 제1저자인 박사후연구원 크리스토퍼 반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의 인간 혈액에서 병원체와 엉켜 있는 항체를 정제해 촬영한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표면 곳곳에서 뽀족하게 솟아 있는 돌기 단백질을 도구로 삼아 인체 세포에 침투해 들어간다. 따라서 이 돌기단백질을 막아내면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걸 차단할 수 있다. 그런데 항체가 어떤 부위에 달라붙느냐에 따라 돌기단백질의 감염력에 큰 차이가 난다. 연구진은 이를 독이 든 뱀 앞에 선 경우에 비유해 설명했다. 이때 뱀의 꼬리를 잡느냐, 머리 부분을 잡느냐에 따라 물릴 가능성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구조도.

연구진은 항체가 반응하는 주요 표적 부위를 알아내기 위해, 코로나19 돌기단백질과 결합해 있는 상태의 항체 사진을 고해상도로 촬영했다. 이 사진을 들여다 본 결과, 연구진은 환자의 항체가 돌기단백질의 2개 영역에 결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중 하나는 숙주 세포와 바이러스를 연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이른바 수용체결합영역(RBD)이다.

연구진은 특히 강력한 바이러스 중화능력을 보여준 하나의 항체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돌기단백질과 엉켜 있는 이 항체 복합체를 분리한 뒤 단입자 극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을 이용해 이를 촬영했다. 물질을 원자 수준까지 들여다보는 극저온 전자현미경은 예컨대 모래사장의 수많은 모래 알갱이를 하나하나씩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정도의 높은 해상도를 구현해준다.

칼텍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주도한 반스 연구원과의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와 코로나19 연구를 함께 상징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작했다.

돌기단백질의 수용체결합영역(RBD) 영역은 위와 아래, 두 가지 방향으로 나 있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로 난 RBD 영역에 결합된 중화항체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포착했다.

연구진은 현미경 사진을 분석한 결과, 중화항체가 숙주 세포에 빗장을 거는 역할을 하는 돌기단백질의 RBD 영역을 위에서 감싸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결국 바이러스 표면의 돌기단백질이 세포에 결합하는 부위를 이불처럼 위에서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한다는 얘기다.

이번 연구를 이끈 파멜라 비요크만 교수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중화항체의 구조로 볼 때, 항체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단백질에 최적결합 상태로 진화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이는 백신으로 이런 유형의 항체를 유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좀더 효과가 좋은 백신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과학학술지 ’ 623일치 온라인판에 실렸다. < 곽노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