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감아 올가미 만든 뒤 꿈틀거리며 위로 이동

 

매끄러운 금속 원통을 기어오르는 갈색나무뱀. 몸을 한 바퀴 감아 올가미를 만든 뒤 그 마찰력과 몸의 꿈틀거림으로 기어오른다. 줄리 새비지 외 (2021) ‘커런트 바이올로지제공

 

뱀은 사막 모래 위를 헤엄치듯 옆걸음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나무에서 나무로 활공하듯 건너뛰기도 한다.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뱀의 이동법이 발견됐다.

몸을 한 바퀴 돌려 올가미를 만든 뒤 그 마찰력을 이용해 매끄러운 수직 원통을 타고 오르는 올가미 이동이 그것이다. 새로운 이동법의 주인공은 갈색나무뱀으로 괌에 침입해 토종 새를 대부분 사라지게 하고 주민들에 큰 피해를 주는 악명 높은 외래종이다.

갈색나무뱀은 괌에 유입된 뒤 토종 새 10종을 멸종으로 몰아넣었다. 나머지 2종의 보전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 뱀의 색다른 이동 방식이 발견됐다. 비외른 라르드너, 미국 지질조사국.

호주와 파푸아뉴기니 등에 서식하던 이 뱀은 1940년대 말1950년대 초 미군 화물 비행기를 타고 괌에 유입된 것으로 알려진다. 1960년대 급증한 이 뱀은 괌에만 살던 토종 조류 10종을 멸종으로 몰아넣는가 하면 길이 2.3m 무게 2에 이르는 몸집으로 집에 침투해 강아지와 새장 속 새를 노리기도 해 큰 사회문제가 됐다.

무엇보다 전선을 타고 이동하다가 종종 정전을 일으켜 재산피해가 커지자 당국은 전용 탐색견을 동원하는가 하면 독약을 넣은 쥐를 숲에 살포하는 등 퇴치에 나서기도 했다.

전봇대에 오른 괌의 갈색나무뱀. 전선을 따라 이동하다 수시로 정전사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줄리 새비지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명예교수는 극소수가 살아남은 괌 고유종인 미크로네시아 찌르레기를 갈색나무뱀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연구를 하던 과정에서 예상치 않게 이 뱀의 독특한 이동 방식을 발견했다.

새 둥지를 뱀이 오르지 못하도록 매끈한 금속 원통 막대 위에 설치했는데 갈색나무뱀은 이를 너끈히 타고 올랐다. 비디오 영상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이제까지 뱀에게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이동 방식임이 드러났다.

새비지 교수 등 연구자들은 12일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원통을 타고 오르는 뱀의 새로운 이동을 보고하고 이를 올가미 이동이라 이름 지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새로운 이동 방법이 침입종의 번성과 피해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갈색나무뱀은 나무 타는 선수이다. 작은 돌기라도 있으면 기어오르고 매끈한 수직 줄기도 타고 오른다. 비외른 라르드너, 미국 지질조사국 제공.

뱀이 나무를 타는 방법은 2가지이다. 보통은 줄기의 옹이나 돌출한 부위를 강한 배 근육으로 타고 오른다. 매끈한 나무라면 나무를 위와 아래 두 곳에서 감은 뒤 차례로 풀면서 위로 이동한다.

이 방법의 한계는 나무를 2번 감기 위해서는 나무가 가늘거나 몸이 충분히 길어야 한다는 점이다. 너무 큰 매끈한 나무라면 그 위에 아무리 새 둥지가 있어도 접근이 불가능하다.

연구자들은 이번에 발견된 올가미 이동은 나무를 한 번만 감고 위로 오르는 방식으로 기존에 알려진 나무 오르기의 변형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밝혔다. 갈색나무뱀이 금속으로 만든 원통을 기어오르는 방법은 원통을 한 바퀴 감아 꼬리로 올가미를 만든 뒤 올가미 안에서 파동처럼 몸을 구부리면서 꿈틀거리며 오르는 것이다.

올가미 이동 방식은 쉽지 않다. 연구자들은 오르는 속도가 1초에 4로 아주 느렸고 수시로 미끄러져 내렸으며 자주 쉬었고 호흡도 가빴다고 금속 원통을 오르는 뱀을 묘사했다. 공동 저자인 브루스 제인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오를 수는 있었지만 뱀은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갈색나무뱀이 세계적인 침입종으로 유명해진 데는 못 가는 곳이 없는 탁월한 이동 능력 덕분이다. 제인 교수는 이 뱀은 표면에 아무리 작은 돌기가 있어도 수직으로 타고오르며, 숲지붕 사이의 거리가 멀어도 뛰어 넘고, 몸 길이의 3분의 2 이상을 꼿꼿이 세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