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조성 빌미 30만평 강제수용…대법원, 농민·유족 38명에 배상 선고

 

 

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 조성 과정에서 농지를 강제로 빼앗긴 농민과 유족들이 국가로부터 518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받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농민 ㄱ씨 등 38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이 사건의 시작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민 ㄱ씨 등은 해방 이후 구로구 일대 토지 일부를 서울시로부터 분배 받아 1950년부터 1952년까지 상환곡을 납부했다. 상환곡은 당시 농지개혁법에 따라 농지를 분배받은 농민이 땅값으로 정부에 상환하던 곡식을 말한다.

그런데 국방부가 이 땅이 서류상 군용지였다며 1953년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고, 국가는 ㄱ씨 등이 낸 상환곡을 받지 않았다. 이후 정부는 1961년 구로공단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ㄱ씨 등의 토지를 포함해 약 30만평을 강제로 수용하고 퇴거시켰다.

 

이에 농민들은 “1950년 농지개혁법에 따라 서울시로부터 적법하게 분배받은 땅”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 1, 2심에서 승소했지만 대법원은 1966년 패소 취지로 이를 파기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1968년 3월 재차 농민들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은 그해 7월 재상고심에서 국가의 손을 들어주며 사건을 또 파기했다.

결국 서울고법은 1971년 농민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은 1973년 이 판결을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소송에 참여한 농민들이 농지 분배를 위해 서류를 조작했다며 사기 혐의를 적용해 형사재판에 넘겼고, 농민들은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 사건이 전환점을 맞은 것은 노무현 정부 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이 사건을 “국가가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소송에 개입해 공권력을 부당하게 남용했다”며 재심사유가 인정된다고 결정했다. 이에 농민들은 재심을 청구해 형사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정부의 불법행위나 법원의 판결로 ㄱ씨 등의 토지 소유권이 상실된 것이 아니다”라며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심은 “농민들은 농지를 적법하게 분배받았는데도 정부는 상환곡 수령을 일방적으로 거절하고 구로공단을 조성했다”며 “분배 농지의 권리를 포기하게 할 목적으로 수사기관을 동원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2심은 또한 ‘소멸시효가 지나 무효’라는 정부 쪽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국가는 ㄱ씨 등에게 518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이를 확정했다.

 

앞서 대법원은 2017년과 2019년에도 구로공단 농지강탈 사건과 관련해 또다른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각각 1165억원과 66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법무부가 2017년 추산한 구로공단 농지강탈 사건 관련 국가배상금 총액은 9181억원에 이른다. 손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