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시민군을 ‘삼청교육대’ 보낸 문건 나왔다

● COREA 2021. 5. 18. 04:1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광주경찰서·전남합수단 통신문
당시 시위 43명을 폭력배로 몰아
청송 감호소까지 끌려간 시민도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인권침해 사건으로 꼽히는 삼청교육대 인권유린 현장.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5·18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폭력배로 둔갑시켜 삼청교육대로 보낸 정황이 담긴 문건이 나왔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5·18 유공자 가운데 일부는 청송감호소까지 끌려가기도 했다. 신군부 세력이 5·18 유공자들을 조직적으로 삼청교육대에 입소시켰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한겨레> 취재 결과, 1980년 5·18 항쟁 뒤 광주·전남지역 5·18 유공자 43명이 삼청교육대에 입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5·18 수사를 담당하던 전남합동수사단과 경찰은 5·18 유공자들을 총기소지자로 몰거나 폭력행위와 무리하게 연루시켜 삼청교육대 순화교육 대상자에 포함했다. 이런 내용은 <한겨레>가 확보한 광주경찰서(현 광주동부경찰서)와 전남합수단이 주고받은 전언통신문에 나와 있다.

광주경찰서(현 광주동부경찰서)와 전남합수단이 주고받은 전언통신문에 5·18 유공자들을 삼청교육대 교육 대상자로 판정한 기록이 나와 있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1980년 8월 불량배 소탕을 명분으로 ‘삼청계획 5호’를 실시해 3만9742명을 삼청교육대에 입소시켰다. 입소 대상자 중에는 ‘전두환 비방자 또는 허위사실 유포자’나 ‘5·18 유언비어 유포자’도 포함됐다. A등급은 감옥으로 보내고, D등급은 훈방했다. 그러나 B, C등급을 받은 사람은 전국 25개 부대에 나눠 수용돼 4주 동안 순화교육을 받았다.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5·18 유공자 중 일부는 순화교육 뒤 재범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다시 경북 청송 보호감호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광주의 기아무개(1959년생)씨도 5·18 시위 참여자라는 이유로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80년 5월22일 시위에 참여해 계엄군에게 맞아 다쳤던 그는 그해 8월 서울에 갔다가 마포경찰서 형사들에게 불심검문을 받았다. 형사들은 “광주에서 도망 온 놈”이라며 기씨를 닷새간 구금했고 “총은 어디에다 숨겼느냐”며 구타했다.

 

기씨는 8월12일께 경기도 연천에 있는 삼청교육대로 넘겨져 4주간 유격훈련 교육을 받았다. 그 뒤 삼청근로봉사대로 끌려가 6개월간 정부 공사 등에 강제투입됐다. 81년 12월2일 경북 청송 제1보호감호소로 이송돼 구금됐던 기씨는 82년 11월16일 출감한 뒤 정신질환을 앓았다.

 

서아무개(1959년생·담양군)씨는 80년 8월 광주동부경찰서에 체포돼 보안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서씨를 ‘광주소요 나주방면 책임자로, 총기 등 휴대하고 입영을 기피한 자’로 분류한 뒤 9월18일 5·18을 수사하던 전남합수단에서 ‘훈방 조치하고 삼청계획에 회부’ 결정을 내렸다. 서씨는 9월30일께 경기도 포천의 군부대로 끌려간 뒤 지옥 같은 삼청교육대 생활을 했다. 서씨는 그해 10월 말께 경기도의 한 부대로 옮겨져 벙커시설 작업 등을 하다가 81년 10월 말께 출소, 귀가했다.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5·18 유공자들을 ‘폭도’로 몰았던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5·18 이후 5·18 유공자나 시위 참가자들을 삼청교육대로 끌고 갔던 인권유린 사안에 대해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2018년 12월 대법원은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삼청교육대의 설치·운영 근거가 됐던 계엄포고 13호가 발령 절차와 내용에서 모두 위헌·위법해 무효라는 결정을 내렸다. 정대하 김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