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단교’ 조건삼아 백신 제공에 미국 맞대응

외국에 제공키로 한 8천만 회 분 “중남미 우선 공급”

 

19일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의 한 대학 교정에 설치된 코로나19 백신 간이 접종시설에서 마스크를 쓴 노인이 러시아산 스투트니크 백신을 맞고 있다. 테구시파갈/EPA 연합뉴스

 

오는 24일로 예정된 제74차 세계보건총회(WHA) 개막을 앞두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과 미국의 ‘백신 외교’ 경쟁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한 백신 공급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0일 미 고위 당국자의 말을 따 “(지난 17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외국에 제공하기로 한 코로나19 백신 8천만회분의 최우선 공급 지역은 라틴아메리카 국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지역 대만 수교국이 중국산 백신을 공급받기 위해 대만과 단교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상황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현재 대만의 수교국은 모두 15개국으로, 이 가운데 9개국이 카리브해 연안과 중남미에 몰려 있다. 1회분 이상 접종자가 인구의 48.5%에 이르는 등 중남미에서 가장 접종률이 높은 칠레를 비롯해 중남미 각국이 중국산 백신을 활용하고 있지만, 대만 수교국에는 공급되지 않고 있다. 신문은 “중국은 이미 1억4400만회분에 이르는 백신을 중남미 10대 인구 대국에 공급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6년 차이잉원 대만 총통 당선 이후 중국은 경제력을 앞세워 라틴아메리카 각국에 대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17년 파나마를 시작으로 이듬해 엘살바도르와 도미니카공화국 등이 대만과 외교적 관계를 끊었다. 이들 3개국은 중국산 코로나19 백신 지원 속에 1회분 이상 접종자가 인구의 13.3~21.4%에 이른다. 반면 대만 수교국인 온두라스(1.1%)·과테말라(1.8%)·파라과이(2.9%) 등은 중남미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온두라스 정부가 최근 대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에 무역대표부를 개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신문은 온두라스 정부 고위 인사의 말을 따 “대만과 유지해온 오랜 친선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백신 수급이 무엇보다 긴급한 상황”이라며 “중국은 우방국을 지원하는데 우리의 우방국은 왜 우리를 지원하지 않는지 국민들이 묻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도 ‘무대책’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신문은 대표적 대중국 강경론자인 마리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의 말을 따 “중국이 코로나19 상황을 악용해 취약한 국가을 몰아세우고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17일 코로나19 백신 총 8천만회분을 외국에 제공하겠다고 밝히면서, “러시아와 중국이 백신을 이용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말이 나오지만, 미국은 미국식 가치관으로 세계를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튿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백신 제공 약속을 조속히 이행해 개발도상국의 방역에 보템이 된다면, 중국은 이를 환영할 것”이라며 “백신 얘기를 꺼낼 때마다 중국을 거론하는 것은 역겨운 일이며, 미국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