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변호사는 조상도 없나” 힐난
일제에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첫 변론 기일이 열린 2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소송을 낸 당사자들이 재판이 끝난 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가족 등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내 대형 로펌들이 이들 전범기업의 대리인으로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는 28일 강제노역 피해자 송아무개씨 등 85명이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86억원 손해배상청구 소송 첫 변론 기일을 열었다. 이 소송은 2015년 5월 제기됐으나, 일본 기업들이 법원 서류를 수령하지 않는 등 소송에 응하지 않으면서 지연돼 왔다. 이에 법원은 지난 3월 공시송달(서류가 상대방에게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 절차를 밟았고, 일본 기업들은 4월 말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에 나서면서 소 제기 6년 만에 첫 재판이 열리게 됐다.
이날 일본 기업 16곳 가운데 15곳의 법률대리는 국내 매출 기준 ‘톱3’ 로펌인 김앤장, 태평양, 광장이 수임해 눈길을 끌었다. 김앤장은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0곳을 대리하고 태평양은 야마구치고도가스 1곳, 광장은 스미세키중공업 등 4곳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미츠비시흥업은 법무법인 두레를 선임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앤장은 앞선 강제노역 소송에서도 일본제철을 대리하며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유착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은 2015~2016년 한상호 김앤장 변호사와 최소 3차례 독대하며 강제노역 사건을 논의하는 등 ‘재판 거래’를 한 혐의를 받는다.
한 변호사의 법정 증언내용에 따르면, 당시 두 사람은 강제노역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에 회부하는 것 등을 논의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노역 사건을 전합에 회부해, ‘전범기업의 피해자 배상책임을 인정한다’고 판결한 기존의 대법원 판결을 뒤집으려 했다고 보고 있다. 김앤장은 이 사건 외에도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사건’을 비롯한 다수의 일제 전범기업 관련 사건에서 일본 기업을 대리한 바 있다.
일본 기업 쪽 변호사들은 이날 재판부가 “이미 두 차례 대법원의 판단을 받았던 사건으로 법리가 다 정리됐다”며 다음달 10일 선고하겠다고 밝히자, 추가 변론 기일 지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정에 나온 피해자들은 이들 변호사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변호사들은 조상도 없는가”라고 외쳤다.
재판을 마친 뒤 장덕환 일제강제노역피해자 정의구현 전국연합회 회장은 “재판이 6년 동안 이어지면서 원고 중 10여 명이 세상을 떠났다”며 “그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던 피고 쪽이 갑자기 선고를 연기해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 전합은 2018년 10월, 일제강점기 일본제철에서 강제노역한 이춘식씨 등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파기환송 후 원심을 확정했다. 전합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 불법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라며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이 사건 재판부도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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