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탈원전 부수기’에 올인할까?

● COREA 2021. 7. 7. 12:50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5일 서울대 공학관 앞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도해 온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면담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월성 1호기 폐쇄 관련 수사에 압력이 들어와 총장직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정남구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2011년 3월11일 일본 동북지방 앞바다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 여파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모든 냉각장치가 망가져 핵분열을 통제할 수 없게 됐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최악의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외국인들이 일본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때 도쿄특파원으로 일하던 나는 사람들의 무거운 침묵 위로 흐르던 공포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금 우리가 아는 정도에서 사고가 멈춘 것은 ‘천운’이었다. 간 나오토 당시 총리는 “일본 국토의 절반이 날아갈 뻔했다”고 회고했다.

 

딱 10년이 흘렀다. 일본인들은 지금 원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전국 2311명에게 답을 받아 그 결과를 3월2일 보도했다. 앞으로 국내 원전을 ‘줄여야 한다’고 대답한 국민이 50%로 가장 많았다. ‘현상 유지’ 24%, ‘전면 폐지’ 17%, ‘늘려야 한다’ 3%였다.

 

사고 이후 일본은 전력 생산의 25%를 차지하던 핵발전소 가동을 모두 멈췄다. 가정용 전기요금이 2010년 1㎾h에 20.4엔(약 249원)에서 2015년 25.5엔으로 25% 올랐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력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부담금도 매겼다. 월 260㎾h를 쓰는 가구라면 올해는 연간 약 10만7천원을 내야 한다. 이를 감수하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엔에이치케이>가 다시 물었다. “멈춰 세운 원전을 재가동해야 할까요?” 16%만 찬성하고, 39%는 반대했다. 44%는 모르겠다고 했다. 일본인들은 원전 사고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은 게 분명하다.

 

전력회사들에 원전 재가동은 곧 돈이다. 여러 이권 집단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전력회사들은 오래전부터 정치자금과 광고로 정치권과 언론에 자기편을 만들어왔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후쿠시마 사고 직후부터 핵발전소를 1기라도 더 가동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써왔다. 그동안 9기를 재가동하는 데 성공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는 것도 전면적인 원전 재가동으로 가기 위해서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0월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재개하되 나머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은 백지화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금지하고,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확정했다. 60년에 걸친 ‘단계적 탈원전’ 계획이었다.

 

탈원전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눈앞의 이익을 다소 포기하는 결단이다. 핵발전에 큰 이권이 걸린 소수는 수단과 방법을 다해 이를 깨뜨리려 한다. 반면, 다수 국민은 안전의 중요성을 잊고 무관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전기요금만 올라도 흔들린다. 우려했던 대로 정권 말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탈원전 부수기’ 깃발 아래 ‘꾼’들이 다 모여들고 있다. 그들은 에너지 전환 로드맵이 국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총공격하고 있다.

 

감사원은 2019년 9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의결로 에너지 전환 로드맵에 대한 감사를 벌여, 정부가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낮게 평가했다고 결론지었다. 감사원은 그 뒤 별도 감사에서 ‘위법하거나 절차에 하자는 없었다’고 했지만, 국민의힘 고발에 따라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에 개입했다며,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결국 재판에 넘겼다.

 

그런데, 감사원 지적을 반영해 재평가해도 월성 1호기의 수익성은 2015년 6월 박근혜 정부가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폐쇄 결정한 고리 1호기만 못하다. ‘조기 폐쇄를 위해 평가를 낮춰 조작했다’는 논리가 옹색하다. 게다가 고리 1호기 폐쇄도 경제성만이 아니라, 안전성과 국민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었다. 검찰 수사와 기소는 다짜고짜 달려들어 때리면서 ‘나쁜 놈’이라고 소리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보수언론은 ‘탈원전 청구서가 날아온다’고 가계의 불안을 부추긴다. 중장기적으로 전기요금은 오르겠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전력 생산에서 원전 비중을 보면, 2018년 23.1%에서 지난해 28.8%까지 높아졌다. 올해는 더 오른다. 탈원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허깨비까지 세워 놓고 왜 이렇게 공격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다. 그들에겐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자신에게 돌아올 돈과 이권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

다시 더러운 세상이 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