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해안 갯벌 4곳 묶어…최초로 '반려' 권고를 두 단계 올려 등재

한국 세계유산 15건…'제주 화산섬' 이어 두 번째 자연유산

 

순천 갯벌 [문화재청 제공]

 

멸종위기종 철새를 비롯해 생물 2천150종이 살아가는 진귀한 생물종의 보고인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6일 중국 푸저우(福州)에서 온라인과 병행해 진행 중인 제44차 회의에서 한국의 갯벌을 만장일치로 세계유산 중 자연유산(Natural Heritage)으로 등재했다.

 

지난 5월 세계자연유산 자문·심사기구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으로부터 네 단계 평가 체계 중 세 번째인 '반려'(Defer) 권고를 받은 한국의 갯벌은 이번에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두 단계를 올려 등재에 성공했다.

 

우리나라가 반려 판정을 받은 유산을 철회하지 않고 한 번에 등재하기는 처음이다. 세계유산 평가 체계는 등재, 보류, 반려, 등재 불가로 나뉜다.

 

한국의 갯벌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이어 한국이 14년 만에 두 번째로 등재한 자연유산이다.

 

한국의 갯벌은 충남 서천, 전북 고창, 전남 신안, 전남 보성·순천 등 4곳에 있는 갯벌을 묶은 유산이다. 신안 갯벌이 1천100㎢로 가장 넓고, 나머지 갯벌 면적은 각각 60㎢ 안팎이다. 모두 습지보호지역이고, 일부가 람사르 습지이다.

 

서천 갯벌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 등재추진단에 따르면 한국의 갯벌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물새 22종과 해양 무척추동물 5종이 서식하며, 범게를 포함해 고유종 47종이 있다. 대표적 멸종위기종은 검은머리물떼새, 황새, 흑두루미, 작은 돌고래인 상괭이 등이다. 또 한국의 갯벌은 동아시아와 대양주 철새 이동로에서 핵심 기착지이기도 하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지구 생물 다양성의 보존을 위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식지 중 하나이며, 멸종위기 철새의 기착지로서 가치가 크므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세계유산 등재 기준은 모두 10개이며, 이 가운데 4개를 자연유산에 적용한다. 그중 하나만 부합해도 세계유산이 되는데, 한국의 갯벌은 '보편적 가치가 탁월하고 현재 멸종위기에 처한 종을 포함한 생물학적 다양성의 현장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큰 자연 서식지를 포괄한다'를 충족했다.

 

앞서 IUCN은 한국의 갯벌이 잠재적으로 지닌 세계유산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신안 갯벌 외에는 대규모 지형학적·생태학적 과정을 나타낼 수 있을 만큼 범위가 넓지 못하고,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핵심 지역을 포함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반려' 권고를 했다. 또 세계유산을 둘러싼 완충지역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21개 위원국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설득 작업에 나섰다. 한국의 갯벌이 세계유산 등재 기준을 충족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향후 유산 구역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동아시아 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과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 등 국제기구, NGO도 세계유산 등재를 지지했다.

 

다만 세계유산위원회는 2025년까지 유산 구역 확대, 추가로 등재할 지역을 포함해 각 갯벌의 통합관리체계 구축, 추가 개발 관리, 중국 '황해 보하이만 철새 서식지'와 협력 강화를 주문했다.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위원국을 대상으로 갯벌의 가치를 부각하며 적극적으로 설득한 전략이 이뤄낸 쾌거"라며 "세계에서 인정한 갯벌의 가치를 지키고 홍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고창 갯벌

 

한국의 갯벌 등재 성공으로 한국이 보유한 세계유산은 15건으로 늘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보유한 세계유산은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창덕궁', '수원 화성',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조선왕릉',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 '남한산성', '백제역사유적지구',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한국의 서원'이다.

 

북한에 있는 고구려 고분군과 개성역사유적지구, 중국 동북지방 일대 고대 고구려 왕국 수도와 묘지를 합치면 한민족 관련 세계유산은 18건에 달하게 됐다.

 

내년에는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합천 옥전, 고령 지산동, 고성 송학동,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창녕 교동과 송현동 등 가야 고분 7곳을 묶은 '가야고분군'(Gaya Tumuli)이 세계유산 등재 심사를 받는다.

 

숱한 위기·'반려' 권고에도 뒤집기 성공한 '한국의 갯벌'

등재 과정서 지역 변경…신청서는 '지도 문제'로 한 차례 반려

      코로나19로 1년 미뤄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실

 

신안 갯벌

 

한반도 서남해안 갯벌 일부를 묶은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은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2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한국의 갯벌은 2010년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당시 대상 지역은 전남 순천·보성·무안·신안, 전북 고창·부안이었다. 이번에 등재된 지역과 비교하면 무안·부안이 빠지고 충남 서천이 포함됐다. 지역 주민 반대와 유산의 완전성 등을 고려한 결과였다.

 

문화재청은 잠정목록 중에서 우선 등재목록을 정하고, 그중에 하나를 최종 등재 신청 대상으로 정한다. 한국의 갯벌은 2017년 11월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한민국의 세계유산 등재 대상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2018년 1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한 한국의 갯벌 등재 신청서는 지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반려됐다.

 

한국 정부가 자문기구 평가 결과가 좋지 않아 세계유산 신청을 자진 철회한 사례는 몇 차례 있었으나, 신청서 요건 미비로 반려되기는 처음이었다. 세계유산센터는 지도 축척이 작아 세계유산 신청 구역을 명확히 알기 어렵고, 보존관리 주체가 기술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세계유산센터가 문제 삼은 부분을 보완해 2019년 1월 등재 신청서를 다시 제출했고, 자연유산 자문·심사기구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그해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현장 실사와 탁상 검토 등을 했다.

 

세계유산 심사를 앞두고 찾아온 또 다른 위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작년 여름에 열릴 예정이던 세계유산위원회(WHC)가 1년 연기됐고, IUCN이 한국의 갯벌을 평가한 결과도 지난봄에야 알려졌다.

 

IUCN은 한국의 갯벌이 철새들이 오가는 중요한 기착지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유산 구역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반려'(Defer) 권고를 했다. 등재 기준을 충족할 잠재적 가치는 있지만, 설정된 지역이 좁고 한정돼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유산 자문기구 평가 체계는 등재 권고, 보류, 반려, 등재 불가로 나뉜다. 반려는 사실상 불합격에 가까운 점수였다.

 

순천 갯벌

 

정부는 등재 신청을 철회하는 대신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막판 뒤집기를 시도하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이에 정부는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을 상대로 한국의 갯벌이 지닌 가치를 설명하면서 향후 유산 구역을 확장하겠다고 설득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위원국 민간 전문가에게 갯벌을 개발의 유혹으로부터 막아내려면 등재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러한 '투 트랙' 전략 덕분에 한국의 갯벌은 대한민국의 열다섯 번째 세계유산이자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이은 두 번째 세계자연유산이 됐다.

 

문경오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사무국장은 "갯벌과 철새를 보호하려면 세계유산 등재가 최선이라는 점을 알렸다"며 "한국의 갯벌 등재는 장기적으로 갯벌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안 갯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