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당선 이후 폭력적 마약 단속으로 수천명 사망

피해자 가족들  “몇년 동안 정의 실현 기다렸는데…”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권력 연장을 위해 내년 대선에서 부통령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지난 7월26일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케손시티/로이터 연합뉴스

 

폭력적인 마약 단속으로 국내외의 비판을 받고 있는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부통령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해, 희생자 가족들과 인권 단체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대통령 6년 단임제 규정을 피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년 5월9일 실시되는 대선에서 부통령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그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어, 출마할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마약을 뿌리뽑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2016년 당선된 두테르테 대통령은 경찰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마약 관련 혐의자를 사살하라고 공개 명령하는 등 극단적인 단속 정책을 밀어붙였다. 경찰은 2016년 7월 이후 지금까지 20만 번의 마약 단속 작전을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숨진 사람이 공식 집계로도 6천명 이상이다. 인권 단체들은 희생자가 최대 몇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인권 단체들은 이런 마약 단속 정책이 반인권 범죄라고 비판해왔고, 국제형사재판소(ICC)도 지난 6월 이에 대한 공식 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두테르테는 지난달 “내 나라를 파괴하는 이들을 나는 살해할 것이라는 점을 국제형사재판소가 기록해도 그만이다”라고 말하는 등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고교생이었던 자신의 조카가 2017년 마약 단속 경찰에게 살해당한 랜디 델로스 산토스는 <로이터>에 “지난 4년동안 우리는 두려움 속에 살면서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다렸다”며 두테르테가 부통령이 되면 단속 경찰 등에 대한 처벌은 요원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약 단속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크리스티나 콘티 변호사도 그가 부통령에 당선되면 마약 유통 혐의자들에 대한 살해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칼로 노그랄레스 내각부 장관도 두테르테가 부통령이 될 경우 ‘마약과의 전쟁’ 등 기존 정부 방침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말해, 이런 우려를 뒷받침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국내외에서 강압적인 통치로 비판을 받지만, 여전히 대중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최근의 여론조사 추세를 볼 때 그가 다바오시 시장인 자신의 딸 사라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출마하면 당선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딸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아버지가 측근인 크리스토퍼 고 상원의원과 함께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신기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