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우려 약화 이후 유가 급등
“배럴 당 100달러 넘길 것” 전망도
미, 유가상승→조기긴축→금리인상
타국 주가 하락 이어지는 현상 우려
오미크론 확산 우려로 한때 뒷걸음질을 하던 국제유가가 다시 치솟고 있다. 18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2월 결제 선물값이 장중 배럴당 86달러대에 거래됐다. 예멘 후티 반군이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를 드론으로 폭격했다는 소식에 공급 차질 우려가 고조됐다. 유가는 19일에도 1.79% 올라, 2014년 10월8일 이후 7년 만의 최고치인 배럴당 86.9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9월부터 한단계 뛰어오른 서부텍사스산 원유값은 10월16일 84.57달러까지 오르고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바 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확인된 11월 하순 들어 급락해 12월1일 65.57달러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그 뒤 천천히 올라 새해 들어 전고점을 돌파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물가상승률을 더욱 끌어올리고, 연방준비제도의 통화 긴축, 금리 인상을 더욱 재촉할 것이라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골드만삭스 “배럴당 100달러 넘을 것”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23일 시장에 석유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전략비축유(SPR) 방출을 명령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5천만배럴을 방출할 예정이다. 전략비축유 방출에는 한국과 중국, 인도, 일본, 영국도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효과는 그다지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오미크론 확산의 부정적인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전망이 퍼지자 유가는 다시 오르고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에밀리 혼 대변인은 유가가 급등한 18일 “산유국, 소비국과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가격 상승에 대응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9일 발표한 1월 석유시장 보고서에서 지난해 세계 석유 수요가 전년 대비 548만배럴 늘어난 하루 9638만배럴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또 올해 수요는 작년보다 333만배럴 늘어난 하루 9971만배럴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전망했던 것보다 하루 20만배럴가량 늘려 잡은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의 예측대로 하면 올해 석유 수요는 2019년의 하루 9955만배럴을 넘기게 된다. 물론 국제에너지기구는 올해 원유 공급량도 작년보다 하루 620만배럴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미국의 증산, 주요 산유국의 감산 축소로 1분기에는 공급이 수요를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그리되면 다행이지만, 최근 시장 분위기는 이와 다르다.
지난해 11월 여러 전문기관이 내놓은 올해 유가 전망은 대부분 배럴당 80달러대였다. 그런데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유가가 급등할 것이라고 본다. 3분기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고, 상승세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18일 내놨다. 수요는 탄탄한 데 비해 공급이 놀라울 정도로 부족하고, 에너지 투자가 재생 가능 에너지로 향하면서 석유에 대한 투자 욕구가 감소하고 있어 선진국의 원유 재고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골드만삭스는 유가 상승 전망 이유를 밝혔다.
월 평균값으로 보면 서부텍사스산 원유값은 11월 78.65달러에서 12월 71.69달러로 9%가량 내렸다. 이런 가격 하락은 지난해 12월 미국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국 노동부는 12일 발표한 ‘12월 소비자물가’ 자료에서 12월 휘발유 가격이 전달보다 0.5% 떨어지고, 전체 에너지 물가는 0.4%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전체 소비자물가는 전달보다 0.5% 오르며, 전년동월 대비 7%나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1982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값은 1월 들어 18일까지 평균값이 80달러를 넘었다. 전달보다 벌써 12%가량 상승했다. 미국 소비자 물가지수에서 에너지의 가중치는 100 가운데 7.294로 지수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 12월에 전달보다 1% 오른 신차, 3.5%나 오른 중고차와 트럭이 물가 상승을 이끌었는데, 1월에는 여기에 기름값이 그야말로 기름을 부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연준이 1월6일 공개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록에는 ‘거의 모든 참석자들이 첫번째 금리 인상 이후 어느 시점이 되면 연준이 시중에 푼 돈을 회수(보유채권 축소)하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쓰여 있었다. 12월 회의가 끝난 뒤 연준은 ‘내년에 금리를 많게는 3차례 인상할 수 있다’는 위원들의 전망을 공표했지만 ‘보유채권 축소’ 언급은 처음이어서, 시장은 연준의 긴축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 가운데 국제유가 상승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조기 긴축 우려를 더욱 키우고, 이는 국채 금리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10년 만기 미국 재무부 채권 금리는 올해 들어 연 1.6%대로 올라서고, 현지시각으로 19일 장중 1.89%까지 뛰어올랐다. 지난해 12월 0.6%대에 머물던 2년 만기 국채 금리도 1%대로 올라섰다. 금리 급등은 미국 주가를 떨어뜨리고, 미국 주가 하락은 다른 나라 주식시장으로 번지는 불안의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당분간은 이런 연쇄고리의 맨 앞에 놓여 있는 유가 동향부터 챙겨야 할 것 같다.
한국은행은 미국 연준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 악영향에 대처해 낮췄던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되돌리고 있다. 지난해 8월과 1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0.25%씩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1월14일 금통위에서 또 한번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이로써 기준금리가 연 1.25%로 코로나 대유행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국내선 기준금리 추가 인상 예고돼
시장에서는 한은이 1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올릴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금융투자협회가 1월 첫주에 채권 보유·운용 관련 종사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보니 응답자 100명 중 57명(57%)이 1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한은은 몇차례 암시했던 대로 금리 인상을 밀어붙였다. 이주열 총재는 금통위가 끝난 뒤 연 기자간담회에서 “현 기준금리 수준은 실물경제 상황에 견줘 여전히 완화적인 수준”이라며,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에 영향을 받아 국고채 금리, 주택담보대출 금리 등 시장금리가 오르고, 자산 투자자들은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다음 금통위는 2월24일에 열린다. 그 이후엔 4월14일에 다시 열린다. 금통위가 3차례 회의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을 피한다면 추가 기준금리 인상은 4월 이후에 하게 된다. 미국 연준은 1월25∼2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연다. 방향은 정해졌고, 다만 속도가 관심인 국면에 확실히 접어들었다.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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