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논설-한마당] 편집인 칼럼

다시 우울한 새해, 그러나 반딧불 열망들이 모이면, 빛의 세상 되리

 

 

신년 카운트다운과 함께 시작된 폭죽의 화려한 불꽃이 사그러든 밤하늘은 검고 우중충하기만 했다. 몰려든 사람들의 함성은 메아리 없이 허공을 맴돈다. 둔중하게 울리던 서울의 보신각 종소리도 도심의 소음에 묻혀 이내 사그라든다. 희망을 발견하려 모여든 사람들 얼굴에는 왠지 허전하고 자조적인 기색들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뉴욕도, 토론토도, 서울도, 모두들 기쁨으로 맞이할 새해가 왔는데, 새 아침의 축제마당 뒤안길에 드리워진 불안과 어둠의 그림자가 지구촌을 짓누르는 까닭이다. 아니나 다를까. 새해 벽두 한국의 야당 당수가 충격적인 백색테러를 당했다. 불길과 불행의 전조인가, 기적적으로 생명은 건졌으니 소위 ‘액땜’의 희망적 조짐일까. 

팬데믹으로 전 지구적 홍역을 치른 이후 빠른 원상 회복의 기대와는 달리 해가 바뀌어도 우리가 직면한 세상은 어둡고 우울하기만 하다. 참혹한 전쟁의 충격파는 광범위하고, 경제는 여전히 휘청댄다. 고유가와 고물가·고금리가 올해는 완화될지, 전망이 엇갈린다. 기후위기로 인한 가뭄과 홍수 등 재난과 지진·화산·산불 등의 천재지변이 혹독해지면서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가 속출한다. 여전히 코로나 변이종들과 독감 바이러스는 신종 괴질들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 생명을 위협한다. 기후변화 때문에 아마도 더 심각한 제2 제3의 COVID 사태가 발생하리라는 경고도 있다. 혹시라도 태평양에 쏟아붓고 있는 일본의 원전 핵폐수에 물고기는 물론 사람들도 이미 오염의 독소를 삼켰을지 모른다. 2023년이 지난 174년 만에 가장 더운 해였다는 과학자들은 어쩌면 ‘가장 기온이 낮고 재난이 적었던 해’로 기록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 “지구 온난화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다”는 암울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국제사회 정치와 이념의 대결상도 위태롭다. 미-중의 패권싸움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화로 미국의 동맹들과 중-러 및 그 동조국들 간의 동-서 진영대립으로 번져 ‘신냉전 시대’가 됐다. 거기에 제3세계의 중견 결집체가 된 브릭스(BRICS)의 부상, 그리고 이스라엘 전쟁까지 겹치며 최강 미국의 역량과 신뢰가 눈에 띄게 기울었다. 힘의 균형추가 요동치자 복잡해진 와중에 너도나도 자국 이기와 실리에 매달리는 각축으로 언제 어느 곳에서 파열음을 빚을지 모를 국제역학의 위기국면도 짙어지고 있다.

정치분석가들과 미래학자들은 이같은 글로벌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리더십의 등장만이 해답이라고 제시한다. 격동적이고 종말적인 상황에서 이기적이고 대결적인 지도자들은 위기를 키울 뿐이지만, 미래 비전을 가진 포용적 리더십의 정치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면 인류와 지구의 위기를 줄이고 파멸을 막을 수 있다는 처방이다.

올해는 ‘슈퍼 선거의 해’라고 한다. 전세계 76개국에서 대선·총선 등을 치르는데, 인류의 2분의 1인 42억명이 투표를 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선거에서 유능하고 지혜로운 지도자들이 과연 몇 명이나 뽑힐 것인가. 낙관보다는 비관적 전망이 압도하는 것은, 역시 국제사회의 심화된 이념과 가치대립의 혼란상에서 유추된다. 유럽 각국에서 배타적이고 역사 퇴행적인 극우정당이 득세하고 남미와 아시아·아프리카 등 각처에서 잇달아 국수적 보수인사들이 등장하는 현상을 보면 수긍하게 된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등장 할 기세인 것도 그 대표적 사례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그가 내놓은 메시지는 반대자들을 향해 “지옥에 떨어져 썩어라! (Rot in Hell)”는 막말이었다. “분노에 가득찬 정신상태요 극도의 현실 부정적 인격장애를 드러낸 것”이라는 언론의 지적에도, 미국민 다수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 현실이 미국과, 나아가 국제사회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만약 트럼프가 등장하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큰 형님’ 바이든을 맹종하여 오로지 ‘한-미-일 동맹’에 올인하고 북한을 ‘박살낼 주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적대 진영으로 만든 윤석열 정부는 ‘닭 쫒던 개’나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윤 정권의 대북 증오심을 조롱한 김정은은 “남북은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교전국 관계로, 통일이 아닌 영토 평정의 대상”이라고 매몰차게 규정했다. 9.19 군사합의도 무효화 했으니, 언제 충돌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음을 보여준다.

동족간의 분열이 깊어진 것 뿐인가. 미-일 편중적·굴종적인 외교는 민족대결 첨예화 뿐만 아니라, 자존심도 먹칠했다. 일제 강제징용·동원 피해자들의 사죄와 배상요구를 묵살했고, 핵폐수 방류를 국가예산을 들여 홍보해 주었다. 홍범도를 비롯한 독립투사들을 폄훼하고, 동해를 일본해로 용인하더니, 국방부는 독도를 분쟁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중-러 와의 관계악화로 윤 정권은 막대한 무역적자와 외교적 고립을 자초했다. 정상회담 거부에다, 부산엑스포 유치 참패에도 중국의 방해외교가 작용했다니, 반감이 얼마나 컸으면 그러겠는가.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을 단돈 14만원에 팔고 철수했다 한다. 무역수지 악화에 경제난 심화로 기업과 가계의 고통은 가중되는데, 부자들 감세혜택에 집착하다 세수가 줄자 재정 삭감과 각종 복지마저 칼질하고 있다.

윤 정권이 잘한 단 한가지는 검찰개혁 필요성을 입증해준 것이라 한다. 검찰을 정권유지의 앞잡이 삼아 ‘압수수색 정권’ ‘검사왕국’소리를 듣는 탓이다. ‘일가 범죄’에는 눈감고 ‘영부인 특검법’은 즉각 거부를 외친 뻔뻔함과 내로남불의 몰양심. 각종 참사에는 매정하면서도 야당대표와 세계적 배우 죽이기에는 불독에 버금간다. 정치혐오를 부채질한 적개심과 악마화가 끝내 정치테러를 부른 꼴이 되고 말았다. 언론장악 집착은 군사정권보다 더하다는 세계적 망신을 사고 있다.

문제는 안팎으로 총체적인 추락만 있을 뿐 회복과 도약의 비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점수를 주고 싶어도. 도무지 철학 하나없는 무지·무능·무도·무책임의 ‘우매한 리더십’ 밖에는 달리 묘사할 길이 없다. ‘세계 최고’를 좋아하는 한국이 지구촌의 위기와 퇴행 부문에도 동키호테 리더십으로 선두가 되고 싶은 것인지, 도대체 민망하고 가슴은 더 답답해진다.

그렇다고 다시 찾아온 새해도 흑암과 카오스에 눈 질끈 감고 속을 끓이다 말 것인가. 통탄의 한숨에 우리의 꿈을 흘려 보내야 하나?. 아니다. 때 마침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축제가 심판과 혁파의 희망을 싣고 깜깜한 어둠의 문을 두드린다. 추락한 국격과 거꾸로 가는 역사를 바로 세워 민족정기와 자존감을 청룡처럼 날아오르게 할 천재일우의 기회가 우리를 깨우고 있다. 밤이 깊을 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희망의 불씨에 정성껏 마음을 모으면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땀과 눈물이 고이고 모이면 강물이 될 수 있다. 외침들이 어우러지면 세상을 흔드는 함성이 된다. 깨어있는 반딧불 열정들이 세상의 미래를 밝힐 빛의 바다를 이루는 승리의 꿈을 꾸어보자!.

티끌모아 태산의 지혜다. 각자 양심과 정의의 촛불을 켜고, 뜻이 모여 어둠을 밝힐 때 파사현정의 횃불을 이루리니, 터널 끝을 향해 함께 달려 나가면 눈부신 빛의 장관을 볼지라!. 물방울들이 바위를 뚫듯,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끈기와 힘을 모으면 흑암에 활개치는 사악한 불의는 무너지리라!.

우리는 연대와 협력으로 전 지구적 팬데믹을 이겨낸 바 있다. 엄청난 글로벌 재난과 천재지변도 서로 돕고 힘을 모아 극복해 왔다. 행동하는 작은 양심들이 함께하면 기후변화로 죽어가는 지구에 생기가 돌 것이다. 너도 나도 세계 시민의 힘을 모으면 전쟁광들의 발호를 물리칠 수 없겠는가. 비록 작지만 나 한사람부터 기꺼이 나서 마음과 손길을 보태면, 올 한해 온 세상이 어둠이 아닌 빛의 누리가 되리라는 믿음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