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속 주입하는 확인 칩
생체·금융 등 정보내장
GPS연계 위치 추적도
감시·정보누출 위험 불안
최근 미국이나 영국에서 사람의 몸속에 ‘베리칩(Verichip)’이라는 전자칩을 심는 일이 크게 늘어나면서 논쟁이 일고 있다. 기독교계에선 말세의 적그리스도 짐승표, ‘666’ 등으로 해석해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그동안 애완용 동물이나 가축들의 관리를 위해 전자 인식표로 사용되던 이 칩을 이제 인간의 몸속에도 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0년 3월 미국의회에서 건강보험제도를 추진하기 위해 전 국민에게 베리칩을 강제 이식하게 하는 ‘건강보험개혁법’을 통과시키며 2013년까지 베리칩 이식 준비기간을 갖고 2016년까지 유예기간을 걸쳐 2017년 1월 1일부터 전면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베리칩에 대한 찬반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베리칩의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베리칩은 ‘확인용 칩(verification chip)’의 약어로 무선주파수 발생기인 RFID 칩의 일종이다. 쌀알 크기 정도로 주사기를 통해 간단하게 인체에 주입할 수 있으며, 별도의 제거 수술을 받지 않는 한 몸속에 영원히 남게 된다. 이 칩에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전자 정보, 또는 고유 번호가 저장돼 있다.
이 칩은 무선으로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 개인 정보가 저장된 외부의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는 순간 개인의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베리칩 하나면 개인의 신분에 관한 신상정보뿐 아니라 계좌 등 금융거래 정보, 유전자와 같은 생체 정보, 질환 및 진료 기록과 같은 의료 정보 등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GPS와 연결되면 언제 어디서든 개인의 위치 추적도 가능하다. 이런 연유로 이 칩은 인간의 몸에 이식돼 개인의 신분확인, 건강관리, 자산관리 등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가령 미 CIA에 근무하는 김 씨는 보안지역을 통과할 때 더 이상 신분증이나 지문, 홍체 인식 없이도 자연스럽게 통과할 수 있다. 보안지역에 설치된 스캐너가 김 씨의 몸속에 있는 베리칩으로부터 무선 전자신호를 받아 자동으로 김 씨의 신분을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서 쇼핑하기를 좋아하면서 줄서기는 몹시 귀찮아하던 박 씨는 더 이상 계산대 앞에 길게 줄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됐다. 계산대 옆 출구를 나서는 순간 그곳에 설치된 스캐너가 박 씨의 신분을 확인함과 동시에 박 씨가 구매한 물품들에 심어진 RFID칩으로부터 같은 방식으로 물품 정보를 확인해 곧바로 자동 전자결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 혈압과 심장질환으로 병원 출입이 잦은 노인 이 씨는 진료를 받기 위해 거쳐야 할 복잡한 등록 절차 없이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씨 몸에 내장된 베리칩을 스캔하면 유전정보를 포함한 생체정보와 그동안의 진료 기록들을 즉각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상 술자리가 많은 중견기업의 CEO인 최 씨는 최근 모 클럽의 VIP고객으로 등록했다. 그 클럽의 VIP고객은 입장에서부터 제공 서비스 계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몸속의 베리칩을 통해 자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생활의 편의성 때문에 이 칩을 이식받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동전의 양면 중 한 면이다. 동전의 다른 면에서 본다면 이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전자 감시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우선 개인의 고유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누구든 타인의 몸속에 심어있는 베리칩을 동의 없이 몰래 스캔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개인의 중요한 모든 정보가 쉽게 유출될 수 있다. 이렇게 유출된 정보는 개인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 차별을 강요하는 등 인간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 가령 개인의 건강이나 병력 기록을 포함한 신상 정보의 유출은 개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다.
개인의 사생활 역시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 RFID칩은 본질적으로 식별장치이지만 GPS와 연결되는 경우 추적도 가능하다. 이럴 경우 이 장치를 인식할 수 있는 리더기 또는 스캐너가 설치된 곳을 지날 때면, 개인의 행적은 소리 없이 추적되고 기록으로 남는다. 이러한 정보들이 어떤 이유로든 특정 집단의 서버로 모이게 된다면 ‘빅 브라더’의 등장과 함께 개인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도 가능해 질 것이다. 베리칩을 몸속에 이식한 사람이 누구든 언제 어디에 있었고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개인 정보를 수집해 감시할 수 있다.
베리칩 이식은 현재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언젠가 정부나 기업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강제로 추진할 수도 있다. 가령 기업의 경우 생산성 향상과 생산관리의 효율성 증대를 목적으로 자료 조사 차원에서 근로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이 칩을 통해 수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베리칩이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줄 것도 사실이고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명분이든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 수집과 일상적인 감시는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중원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
'● 토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단과 냉전체제가 ‘식민청산’ 막아 (0) | 2013.08.18 |
---|---|
식물은 ‘소통의 달인’‥ 새에게도 “도와줘요” (0) | 2013.08.12 |
전자레인지 작동중 들여다 보면 안돼 (0) | 2013.07.23 |
스마트폰 중독 (0) | 2013.04.07 |
한국 호랑이 찾아라‥ ‘블러디 메리’ 5대째 쫓다 (0) | 2013.03.08 |
70년대 ‘3대 저항가수’ 양병집… 그의 삶과 음악 (0) | 2013.03.01 |
지우고 싶은 기억만 지울 수 없을까? (0) | 2012.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