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도쿄 38개 도서관 장서… 인종범죄 관련 주목

누가, 왜 그랬을까?
최근 일본 도쿄도의 여러 공립도서관에서 잇따라 발생한 사건이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유대인 박해가 이뤄지던 나치 독일 치하의 고통스런 삶을 소녀의 시선에서 그린 안네 프랑크(1929~1945)의 <안네의 일기> 및 이와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시내 여러 공립도서관에서 흉측하게 찢긴 채로 발견돼서다.
<아사히신문>은 경시청이 24일 이 사건을 기물파손 사건으로 분류해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용의자 검거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경시청 수사1과의 말에 따르면 피해가 발생한 도서관은 신주쿠구를 비롯한 도쿄도의 북동부 5개 구와 그 외곽 3개 시에 자리한 38개 도서관이다. 피해를 본 책이 305권에 이른다.
가장 먼저 피해가 발견된 지역은 지난해 2월 도시마구의 도서관이지만, 스기나미구 등에선 이달 초순께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도서관 쪽에서는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도서관 직원들이 책의 피해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약 5㎝ 두께의 책의 아랫부분을 100쪽 넘게 예리하게 찢어내서다. 3개 도서관에서 40권의 책에 피해를 입은 후지마키 고타로 신주쿠 중앙도서관장은 “강한 동기와 계획성이 있는 범죄”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사건이 최근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모임(이하 재특회) 등이 주도하는 ‘혐한 시위’(일본에선 ‘헤이트 스피치’라 부름)와 같은 일본 사회의 병적인 우경화 현상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일본 우익은 재일조선인 학생들이 다니는 조선학교 주변에서 혐한 시위를 벌이거나 아이들한테 폭력을 휘두르는 인종 범죄(헤이트 크라임) 등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교토에서 조선학교를 표적으로 한 혐한 시위는 인종차별이라는 판단 아래 재특회 회원들이 피해자한테 1226만엔(약 1억3000만원)에 이르는 고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교토 지방재판소가 판결했지만, 혐한 시위 등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 안네 프랑크의 사촌으로 안네 프랑크 재단 회장인 버디 엘리아스(88)는 “큰 충격을 받았다. 사태의 진상을 빨리 확인하고 싶다”는 의견을 일본 홀로코스트기념관에 알려왔다고 <마이니치>가 전했다.
< 도쿄=길윤형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