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쯤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소장파 젊은 철학 교수가 쓴 ‘육탈의 근대성’ 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의 요지는 “근대라는 시대에서 인류는 주체, 그러니까 자신을 찾는 일에 몰두해 왔는데 결국 빈껍대기 영혼없는 자신만을 이야기 했을 뿐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말해 “Cogito ergo sum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외치며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려던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로 부터 시작된 모든 이성 중심의 근대 철학의 노력은 실패한 프로젝트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아는 것은 끊임없이 사고하는 이성, 들숨과 날숨의 멈춤없는 숨결, 그리고 진리를 찾아 나서는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팔다리의 보행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참 자아와 진리를 찾기에 갈급해 하던 어린 저로서는 그 소장파 철학자의 말이 어찌나 매력적이고 멋있어 보였는지 모릅니다. 애매 모호한 결론이 주는 몽환적 매력도 있었지만 자아를 찾지 못한 근대를 넘어서는 ‘보행’이라는 또 다른 모험적 희망이 젊은 가슴을 다시 뛰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철학자의 말을 따라 저는 그 보행을 쉬지 않았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사고하고, 팔다리를 쉼없이 움직이며 들숨과 날숨을 세밀하게 느끼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목적없는 보행은 중년의 높은 문턱 앞에서 소리 없이 멈추었습니다. 지친 어깨와 촛점 잃은 눈동자, 혼미해지는 이성, 그리고 약해져 가는 심장의 박동은 더 이상 저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주체적 보행으로는 나머지 인생의 길을 갈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아 차린 것입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열병을 앓은 아이처럼 낯이 뜨거웠습니다. 눈물 한방울이 주루룩 소리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존재적 슬픔입니다. 저의 모든 보행에 동행하신 듯한 분이 뜨거운 제 이마를 짚어 주십니다. 그 분의 봄바람 같은 숨결이 제 콧잔등에 느껴지고 저는 이내 그 분의 촉촉하고 진실어린 눈망울에 깊이 빠져버립니다. 아! 그 안에 제가 보입니다. 제 눈물이 보입니다. 그 분께서 저를 태고부터 동행하셨음이 직감적으로 알아집니다. “사랑한다” 하시던 끊임없는 그분의 말씀이 이제서야 들립니다. ‘아! 나는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구나! 그 분의 사랑안에만 존재하는구나! 그 분의 사랑의 눈망울 속에서만 참 나를 찾을 수 있는 것이구나!’ 그때서야 알아먹어 집니다.
< 최봉규 목사 - 토론토 드림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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