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서 유명한 기독교 신학자 C. S. 루이스는 8세 때 어머니를 잃고 절대로 엄마 생각도 하지않고 울지 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는 슬픔이 찾아올 때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했습니다. 60세가 넘도록 루이스는 철저히 감정의 벽을 쌓은 채 학문에만 전념해서 그야말로 사랑도 눈물도 모르는 냉철한 이성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루이스가 60세가 넘었을 때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이 여성은 그 유명한 루이스에게 “당신은 왜 그 모양으로 사십니까? 당신은 사랑이 뭔지나 압니까?” 라고 당돌한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자기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처음이었기에 루이스는 놀라서 반문했습니다. “그래요.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사랑을 모릅니다. 혹시 당신이 사랑에 대해 안다면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이런 인연으로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결혼 당시 그녀는 골수암으로 1년 밖에 못산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 3년 2개월을 살았습니다.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나중에 루이스는 “내 평생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그녀와 산 3년 2개월이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루이스가 행복했던 시절이 겨우 3년 2개월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으니 얼마나 불행한 인생입니까? 인생의 수많은 날들을 불행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3년 2개월 동안 진정한 사랑을 알았기에 지난 불행했던 모든 날들을 더 이상 불행한 인생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행복한 기억만이 그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아픈 아내를 위한 삶은 평안한 삶은 아니었습니다. 골수암으로 죽어가던 여인과 함께 살았던 그 기간이 행복한 시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왜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픔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한 여인을 위한 기도와 수고로움이 있었기에 행복했던 것입니다. 사랑에는 희생과 아픔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합니다. 슬픔을 겪습니다. 손해를 보게 됩니다. 가슴에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왜 좋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받는 것 때문에 좋다고 할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쾌락적인 사랑 때문에 좋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내가 상처를 받거나 고통을 당할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아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 사랑의 능력입니다. 그 고통을 행복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평생 사는 동안에 얼마나 이러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지금 세상은 사랑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헛된 사랑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짜 사랑 때문에, 짝퉁 사랑 때문에 또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 참 사랑,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과 같은 사랑을 보여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킨 그 사랑과 같은 사랑을 줄 수 있을 때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할 수 있는 참 사랑,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내가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 때 그 참 사랑의 행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강성철 목사 - 우리 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