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For The Good Times

● 칼럼 2011. 6. 26. 16:22 Posted by Zig
며칠 전에 십 년 동안 인터넷을 모뎀을 쓰다가 하이 스피드로 바꾸었다. 나는 컴퓨터를 글을 쓰는 일과 이 메일을 보내고 받는데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어쩌다 친구가 보내온 노래를 들으려 하거나 사진을 다운로드 받을 때 너무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나는 노래를 잃어버리고 산 셈이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유 튜브였다. 노래를 제목만 두들겨도 나온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나도 몰래 두들긴 첫 제목이 ‘For The Good Times’였다. 한 때 내가 꽤나 좋아하던 노래였다. 특히 이민 초기에 그 노래를 좋아했는데. 아마 이 삭막한 이국 땅도 살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좋은 시절이 온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을지 몰랐다. 처음에 부닥친 문제는 이 노래를 한 두 명이 부른 것이 아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목소리는 분명 아니고, Johnny Cash, Perry Como를 듣다가 Ray Price(처음 듣는 이름이다.)가 부른 것이 나의 기억에 가장 가까운 것처럼 들렸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생각해보니 벌써 40년 전의 일이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그냥 뛰쳐나와 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마주친 극장 간판에서 서부의 사나이가 총을 들고 서있는 것을 보았다. 왠지 답답할 때여서 신나는 총 싸움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들어갔는데, 총 한 방 쏘았는지 안 쏘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의외로 조용하고 차분한 영화였다. 당시 서부영화가 그러하듯 주인공이 악당들을 모두 물리치고 말 타고 떠나는 영화가 아니라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차례로 잃어버리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간판에 속았다는 사실에 당연히 분노해야 했을 텐데, 나도 모르게 영화에 빨려 들어가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마 영화 전체에 깔리는 차분한 음악 때문이었을지 않을까 싶다. 그 노래가 ‘For The Good Times’이었다. 

 “Don’t looks so sad, I know it’s over.
   But life’s go on and this world keep on turning......,
   For the good times.”

한국말로 번역하면 ‘좋은 시절을 위하여’ 또는 ‘좋은 날을 위하여’라고 생각했었다.
 “모든 일이 틀어져도 실망하지 않으리라, 언젠가 반드시 좋은 시절이 오리라.”는 말이 영화 속의 대사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십 년 만에 듣는 노래가 너무 좋아서 나는 듣고 또 듣는데, 뜻밖에 가사의 정확한 뜻은 그 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반대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언젠가 와야 할 ‘좋은 시절’이 아니라 오히려 내일이나 영원을 말하지 말고, 헤어져야 하는 연인에게 지금 좋은 시간을 가지자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데도 나는 그 옛날 총소리 울리지 않는 서부영화를 보았을 때처럼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제는 가사보다 차분히 가라앉는 멜로디를 들으며, 모든 것이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실에다 제 멋대로 뜻과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 감상에 빠진 나의 착각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오랜 착각에서 깨어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좋은 시절이 온다고, 와야만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까?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살아가지만 오늘 속에 더 나은 내일이 오리라는 기대가 있어 오늘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나에게 벌써 왔어야 할 좋은 시절은 보이지 않지만, 아니 언제 올지 막연하고 차라리 점점 멀어져 가며 영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젠가는…….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