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불린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이들을 기리고 그 은혜를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현충일이 6월에 있음도 그 때문이리라.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현충일은 극우보수 진영의 궐기대회 날이 되어버렸다. 야당과 민족화해 세력을 싸잡아 종북세력이자 김정일·김정은 비호세력으로 단정해버리는 극렬 보수 인사들은 이번 현충일에도 진보진영과 야권을 비난하는 데 열중했다. 무상급식을 주장해도 빨갱이이고 4대강을 반대해도 친북이며 반값 등록금을 외쳐도 종북세력이다. 순국영령과 호국열사의 뜻을 독점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누가 그들에게 부여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떤 근거로 민주주의와 민족화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반체제 친북이라는 레테르를 붙이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현충일의 참뜻이 일부 수구진영에 의해 이념적 공격과 색깔 공세로 덧씌워져 버린 셈이다.
6월의 현충일이 민주진보 진영에 대한 정치적 공격의 계기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외부의 침략과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것이 현충일의 정신이라면, 남북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통해 미래의 대한민국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6.15의 의미이다. 건국과 호국의 역사와 노력이 소중하고 귀한 것처럼 민족화해와 통일한국을 위한 노력 역시 소중하고 절실하다. 건국과 호국이 북한과의 대결과 경쟁을 통해 가능했다면, 미래의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고 북한의 변화를 이뤄냄으로써 통일의 완성이 가능하다. 6.15의 대북 접근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우리 주도의 평화통일을 이뤄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북정책인 것이다.
따라서 건국과 호국의 정신이 6.15의 정신과 배치되고 대립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왜곡된 역사인식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역사적 퇴행으로 안내하는 과거지향적 편가르기의 전형이다. 결국 건국과 호국의 성과를 바탕으로 6.15의 정신이 결합함으로써 미래의 대한민국은 온전한 통일국가로 완성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6.15의 역사적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나 올해 6.15는 그 어느 때보다 초라하고 침체된 분위기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가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대규모 방북단이나 남북 공동행사는 이제 가능치도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민족화해와 남북관계 개선 대신에 민족대결과 남북관계 파탄의 현실을 맞고 있는 현 시기 6.15의 힘은 그만큼 약해진 것이다. 오히려 지난해 이명박 정부는 6.25 발발 60주년을 전국가적 차원의 대대적 행사로 치러내고 각종 기념사업을 정부 예산으로 거행했다. 동시에 1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의 6.15는 6.25의 그늘에 밀려 볼품없는 민간 차원의 행사로만 치러졌다.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내고 전쟁에서 사수해낸 6.25는 분명 호국과 순국의 핵심이자 토대이다. 6.25의 비극과 교훈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놓고 북을 비난하고 규탄하는 것만으로 6.25가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전쟁의 참혹함과 민족상잔의 안타까움을 재확인하고 미래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고 평화체제를 구축해냄으로써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6.25는 발전해야 한다. 결국 6.25의 미래지향적 극복은 6.15의 정신과 접목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고수한 ‘반6.15’의 접근, 즉 남북관계 중단을 통해 대북 제재와 압박으로 북을 굴복시키고 변화시키겠다는 희망적 사고는 완벽하게 실패했음이 이미 드러났다. 북은 괴로워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았고 북한의 도발은 오히려 증가했으며 평화는 더더욱 위협받았고 북핵문제는 해결난망의 최악으로 치달았다. 6.25식 접근방법에 올인하는 이 정부의 대북정책이 백전백패의 총체적 실패로 귀결되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건국과 호국을 넘어 대한민국을 완성하고, 6.25의 되새김을 넘어 6.25의 아픔을 온전히 극복하기 위한 일관되고 합리적인 전략이 곧 6.15의 시대정신임을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6.15의 힘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국 올바른 정치세력을 선택하고 정치권력을 교체하는 길 외에 현실적 대안이 없음 또한 실감하고 있다. 민주화의 결정적 계기였던 6.10의 정신이야말로 우리에게 6.15의 정신을 되돌려주는 지름길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김근식 - 경남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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