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포사회 일각에서 이른바 ‘건국절’ 제정론이 갑자기 돌출해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광복 70주년이라는 역사적 시점에 뭔가 ‘애국 이벤트’를 선보이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조국과 민족 사랑의 발로라는 점 하나만은 가상한 일이로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공연한 부회뇌동의 돌출행동으로 보여져, 그렇잖아도 모국의 갈등이 전파된 동포사회에 괜한 분란과 혼란을 낳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모국에서 이른바 뉴라이트 그룹이 이명박 정권 시절 크게 외쳐대다가 ‘미수’에 그친 사안이니, 비유하자면 낡아빠진 레코드판을 돌리는 일에 다름 아니요, 뜬금없이 이 시점에 들고 나온 것은 그들의 경거망동에 뒤늦게 편승하여, 관심이 적고 내용을 잘 모르는 동포들을 오도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당시 뉴 라이트 중심의 건국절 거론 요지는, 광복절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 같아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8월15일이 중요시되고 건국일인 1948년 8월15일의 의미는 축소되어 왔기에 개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건국일이 1948년 8월15일이니 그 날이 대한민국 생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건국’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국부로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그러면 왜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꾼다면 정부가 수여한 독립유공자 훈장을 반납하겠다고 까지 격앙했을까. 애국지사 우당 이회영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이상하게도 이런 주장을 하는 주동자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개 친일파에 속해 있거나 그 선조들이 친일파로 일제에게 빌붙어 많은 공적(?)을 세운 자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그런 DNA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일까?”라고 어찌하여 호되게 비판한 것일까?

그 이유는 ‘건국절’ 주장의 근저에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잘못된 역사인식과 모순, 그리고 자신들의 과오를 덧칠하고 합리화하려는 꼼수가 숨어있다는 게 중론이니,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먼저 대한만국이 언제 건국 되었는지는 국체(國體)를 규정한 헌법을 살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1948년에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했다.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이제(1948년)는 “민족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것이다.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 하여 독립정신과 민주정신이 대한민국의 토대임을 분명히 하면서 1919년 3.1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포하고 대한민국을 창건했으며, 일제치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함을 천명하고 있다.
1948년 5월10일 총선 후 국회가 개원되었을 때 국회의장 이승만은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1919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의 임시정부의 계승에서 이날이 29년만에 민국의 부활일 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民國)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라고 했다. 이승만 뿐만 아니라 이 당시 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대한민국이 1919년에 기인했음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그 해 8월15일 수립된 정부가 9월1일에 간행한 관보 1호는 「민국 30년 9월1일」이라고 명기했다. 따라서 건국은 1919년이요 1948년 8월15일은 ‘건국일’이 아니고 ‘정부수립일’인 것이다.

그런데도 건국절 논자들이 ‘1948년 건국’론을 고집한다는 것은 결국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연결된다고 분석한다. 그들은 ‘일제의 한국 근대화’를 통해 해방이후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우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는, 임시정부로부터 시작하여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한 독립투사나 일제에 항거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이 아니라, 한낱 일제 근대화의 시혜로 건국에 이르렀으니 이승만과 그를 따르며 정부수립에 참여한 인물들에게 그 공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승만 대통령 조차 대한민국이 3.1 독립만세운동을 통해 건국되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던 것에 비추어보면 참으로 모순되고 비굴한 역사관이 아닐 수 없다. 이승만은 당시 “만약 대한민국이 해방 후 1948년에 건국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연합국의 승리에 의한 것으로, 우리 힘이 아닌 외세에 의해 이뤄진 것이며 수치스런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계 원로인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숙대 명예교수)은 “건국절 논란은 결국 대한민국의 건국을 독립운동의 전통 위에 둘 것인가, 친일의 전통 위에 둘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승만을 추종하는 자들이 이승만 수준의 역사의식에도 미치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라고 개탄했다.

건국절 주창자들이 대부분 친일과 보수성향을 가진 인사들이라는 것이 그래서 뚜렷해진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이전 역사와 완전 단절된 신생독립국으로 만들어 과거 자신의 선조들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덮고, 신생국을 건설한 업적을 부각시키려는 저의 아래, 자신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고 영속화하려는 속셈으로 ‘건국절’이라는 그럴 듯한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덧씌우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와 애국선열들을 기리겠다고 뜻을 모은 애국지사 기념사업은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언제로 알고 활동해야 할지가 극히 자명해진다. 안창호·윤봉길·이봉창 등 독립열사들은 1919년에 건립된 대한민국의 법통인 임시정부의 적자(嫡子)들임이 틀림없다.

덧붙여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섬겨야한다는 주장 또한, 모순이며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몇가지만 인용해 보자.
이승만은 미국의 환심을 사 군정청의 후원으로 정권을 잡고 자유 민주주의 정부를 세운 초대 대통령이며, 국무회의를 기도로 시작하는 등 한국의 기독교국가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정교분리 헌법규정을 무시하는 등, 공 보다는 과오가 너무 많은 인물이다. 상해 임시정부를 와해 위기에 빠뜨려 배척당했고, 반민특위를 강압 격파해 친일파 청산을 무산시켰다. 김구와 조봉암 등 라이벌을 암살하고 법살(法殺) 시킨 잔혹 술수에,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로 민주주의를 짓밟은 장기독재자였다. 6.25가 터지자 국민을 속이고 가장 먼저 도주한 뒤 한강다리를 폭파해 수많은 시민을 죽게 했다. 전란 중 보도연맹 사건을 빌미로 20만명에 달한다는 무고한 자국민을 학살했다. 임시정부 당시 국제연맹에 ‘조선의 위임통치’를 청원했던 그는 한국전쟁에 맨 먼저 도망간 것도 부족해 일본에 망명정부를 요청한 것으로 최근 KBS가 보도해 알려졌다. 4.19혁명에 발포명령으로 2백여명의 시민이 죽고 6천여명이 다치는 피해를 입힌 뒤 권좌에서 쫓겨났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나 프랑스의 드골, 터키의 케말 파샤 처럼 국부로 추앙받는 이들이 그런 만행과 그 정도의 실정에도 면책 받고 존숭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 김종천 편집인 >